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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도시 탐구] 카노푸스를 볼 수 있는 밤하늘

곽재식의 도시 탐구 (4) -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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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미래에 외계인이 한반도에 전파로 무엇인가 연락해 온다면, 그 머나먼 곳에서부터 실려 온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제주도의 과학자들과 제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2022.12.13)


곽재식 작가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도시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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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행기가 많이 다니는 길은 어디일까?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일까? 아니면 일찌감치 항공 산업이 발달하여 대형 항공사와 항공기 제작사가 많은 미국의 어느 곳일까?

이 문제의 대답도 '제주'다.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서울의 김포 공항과 제주의 제주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하늘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행기가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최고로 붐비는 하늘이다. 2019년 통계를 보면, 이 노선을 이용해서 움직인 사람들의 숫자는 무려 1,558만 명 이상이다. 이 정도면 옛날 '조선'이라는 나라의 전체 인구를 능가할 만한 숫자다. 비행기로 이루어진 비행기 왕국이 제주와 서울을 잇는 하늘길에 만들어져 있다고 상상할 만한 숫자라고도 말해 보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는 섬의 크기가 어느 정도 크고 상당히 발전된 곳이면서, 동시에 본토와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 배로 이동하기에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걸린다. 반대로 아예 제주도가 한반도 본토로부터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면, 서울과 빈번히 교류하지 않고 독립해서 자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활동이 더욱더 발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제주는 현대의 제트 엔진 여객기를 이용하면 한 시간 정도에 도달할 수 있을 만한 딱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그 덕분에 20세기 후반, 연료에 불을 붙여 폭발하는 것을 뒤로 내뿜게 하는 힘으로 움직이는 제트 엔진 여객기가 보편화되자 제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날아서 오게 되었고,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하늘을 이용해 날아드는 섬이 되었다. 옛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는 하늘을 떠다니는 천공의 섬이 나오는데, 이렇게 보면 제주야말로 하늘의 섬이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나 역시 이런저런 일로 종종 제주를 찾을 때가 있다. 처음 제주도에 간 것은 고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이었다. 친구들과 보낸 재미난 시간도 추억으로 남아 있어, 별것 아닌 농담으로 주고받은 말 몇 마디가 아직 생각나기도 한다. 그날 성산 일출봉에서 보던 아름다운 경치도 참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인 태평양으로 연결되어 있을 그 망망한 바다를 보면서, 도대체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제주도에 오게 되면 공항의 풍경이나 거리에 서 있는 돌하르방, 잠깐 스쳐 지나가면서 만나는 바다의 수평선만 보아도 고등학생 때 처음 제주에 왔던 일이 떠오른다. 그동안, 세월이 지나는 사이에 나는 뭘 하면서 산 것일까?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기대대로 된 일이 도대체 뭐가 있나? 앞으로는 어떻게 살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힘이 빠지기도 하고 그리운 마음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앞으로는 좀 더 잘 살아 봐야겠다고 매번 용기를 내게 되기도 한다.

고등학생 때 제주의 하늘에서 본 밤하늘도 생각이 난다. 밤하늘 모습은 아직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제주도는 한국에서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지구는 둥글고 동서로 돌고 있으므로, 남북으로 어느 위치에 서서 하늘을 보느냐에 따라 지구 바깥의 우주를 어느 방향으로 보게 되는지가 달라진다. 즉, 남쪽 지방에서 하늘을 볼 때의 방향과 북쪽 지방에서 하늘을 보는 방향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뜻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제주도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카노푸스'라는 밝은 별 하나를 볼 수 있다.

옛사람들은 중국 고전의 천문학을 받아들여, 지금 '카노푸스'라고 하는 별을 '남극성'이라고 불렀다. 남쪽 지역에 가야만 보이는 별이었기 때문에, 북쪽을 나타내는 북극성의 반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남극성을 보면 그 별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 오래 살게 된다는 믿음이 꽤 널리 퍼져 있었다. 현대 과학이 밝힌 카노푸스는 지구에서 300광년, 그러니까 약 3,000조 킬로 정도 떨어진 별이다. 그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별의 부피가 태양의 30만 배 이상 될 정도로 굉장히 거대하기 때문에, 밤하늘에서는 어느 별 못지않게 굉장히 밝아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멀리서 쏟아지는 강력한 빛 속에 무슨 사람을 오래 살게 해 주는 신비한 힘이 서려 있다거나 하는 증거는 없다. 혹시 내 이런 주장을 비웃기 위해, 카노푸스 근처의 행성에 사는 외계인이 지구 방향을 향해 사람을 오래 살게 해 주는 신비의 레이저를 몰래 수백 년 전부터 발사하고 있다면 모를까.

나는 좀 더 현실적인 다른 상상도 해 본다. 조선 시대에는 자연환경이 좋은 제주에 살면서 서울 관청과 벼슬자리의 음모·술수에 휘말리지 않고 지내면 저절로 오래 살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점점 사람들 사이에 "서울보다는 남극성이 보이는 제주에서 지내면 오히려 오래 산다"는 소문이 믿음을 얻었을 수도 있다.



제주도와 우주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면 KVN 이야기도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KVN은 거대한 망원경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을 확인하는 망원경은 아니며, 우주에서 지구로 내려오는 전파를 감지하는 장치다. 우주 저편 먼 곳에서 오는 전파를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커다란 안테나를 갖고 있는데, 제주도에 설치된 KVN의 안테나는 그 지름이 20미터를 넘어서 넓이를 계산해 보면 테니스 코트와 비슷한 정도의 크기다. 테니스 코트 넓이의 쇳덩어리로 우주를 지켜보면서, 무슨 신호가 우주에서 날아오지 않는지 항상 감지할 수 있는 설비가 제주도에 있다는 이야기다.

KVN 망원경은 제주 외에도 서울의 연세대학교, 울산의 울산대학교에 설치되어 있다. 세 개의 망원경을 동시에 연결해서 더 멀리 있는 물체를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이 있기에, 비슷한 망원경을 여러 군데에 만들어 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러 망원경에서 관찰한 내용을 합쳐서 분석하여 활용하는 방식은 현대 천문학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과 2022년에는 EHT 사업이라고 해서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힘을 모아서 블랙홀을 관찰하는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블랙홀의 모습을 생생하게 나타낸 사진이 공개되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KVN 망원경 역시 EHT 사업에서 관찰한 블랙홀을 분석한 적이 있다. 그러니 비록 일반인이 관람하거나 구경할 수 있는 장치는 아니지만, 제주도에 우주 먼 곳에 자리 잡은 블랙홀을 볼 수 있는 기계 눈이 설치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혹시나 미래에 외계인이 한반도에 전파로 무엇인가 연락해 온다면, 그 머나먼 곳에서부터 실려 온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제주도의 과학자들과 제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곽재식의 도시 탐구
곽재식의 도시 탐구
곽재식 저
아라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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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재식(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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