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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도시 탐구] 청동 도끼로 알아보는 3,000년 전의 세상
곽재식의 도시 탐구 (2) - 속초
이곳의 도끼는 나무꾼이 나무하기 위해서 쓰던 도구가 아니라, 세력이 강하여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자랑하던 권위를 가진 물건이라고 봐야 한다.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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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한국에서 문명이 시작된 시기는 언제일까? 세계 곳곳에서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 문명도 같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는 세계사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대체로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청동기 시대와 겹치는 시기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흔하다. 그렇다면 역시 청동기 시대 한반도에 질서와 제도, 문화와 역사를 가진 문명이 등장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에서 처음 사람들이 등장해 문명을 이룬 청동기 시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지역은 전국 곳곳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20세기 말부터 21세기까지 청동기 시대를 연구하던 고고학자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지역을 골라 보라면 아마도 충청남도 부여가 아닐까 싶다. 부여의 송국리 일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집터와 여러 유물은 당시 한반도 남한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을 유추해 보기에 좋은 자료였다. 한국 청동기 시대를 상징하는 교과서적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라고 하는 칼도 발견되었다.
그런데 강원도 지역 곳곳에서는 이런 전형적인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유물들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라 보이는 물건이 종종 발견된다. 그중에 강원도 속초시의 조양동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유적은 상당히 알려진 편에 속한다.
조양동 유적은 지금 속초 시민들이 사는 동네 한복판에 있다. <미이라>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같은 영화를 보면 고대 유적을 찾아다닐 때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황무지나 외딴곳에 있는 잊힌 사원 같은 곳에서 발굴 작업을 벌인다. 그렇지만 속초에는 그냥 21세기의 사람들이 사는 곳 사이에 수천 년 전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유적이 있다. 지금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초가집 모양이 만들어져 동네 사이에서 자리를 지킨다. 신기하다면 신기하고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모습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속초의 살기 좋은 곳에는 수천 년 전부터 터가 좋다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긴 세월 끊임없이 살아왔구나 싶기도 하다.
속초 조양동 유적에는 고인돌이 만들어졌던 흔적이 있고, 그곳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 대개 고인돌은 먼 옛날의 실력자나 세력가가 자신의 위세를 드높이기 위해 세워 둔 기념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곳에 묻혔다가 발견된 유물도 그만큼 위세를 드높이는 데 어울릴 만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귀중한 보석이나 보석으로 장식한 모자, 높은 사람만 달 수 있는 귀금속 장신구 같은 것을 둘 만하다. 요즘 같으면 나라에서 준 훈장이나 국제 대회에서 받은 메달 등의 물건을 두는 것이 어울렸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양동 유적에서는 청동 도끼가 발견되었다.
딱히 대단한 모습은 아니다. 그냥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도끼날 모양의 유물이고 크기도 웬만한 사람 손바닥보다 작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므로, 아마도 그 시대에 만들 수 있는 도끼 중에 가장 성능이 좋고 훌륭하고 값비싼 도끼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무꾼과 산신령 이야기에는 금도끼·은도끼·쇠도끼가 나오고 쇠도끼가 가장 가치 없는 물건 취급을 받는데, 청동기 시대에는 그런 철로 만든 도끼를 만들 수 있는 기술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청동으로 만든 도끼가 묻혀 있다니, 이곳의 도끼는 나무꾼이 나무하기 위해서 쓰던 도구가 아니라, 세력이 강하여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자랑하던 권위를 가진 물건이라고 봐야 한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을 보다 보면, 용감한 기사가 자신의 상징으로 멋진 칼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무슨 왕국의 정통 후계자만이 물려받는 보검이 있다거나, 마법이 깃들어 굉장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성스러운 검이 있다는 이야기도 자주 볼 수 있다. 칼을 특이하게 쳐드는 동작을 취하며 예의를 표하거나, 칼을 내리며 어떤 자격을 주는 의식을 하는 장면도 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기사가 후배에게 예전에 물려받았던 칼을 주면서 "이제는 네가 최고의 기사니까, 최고의 기사를 상징하는 이 칼을 너에게 물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등의 장면은 친숙한 느낌이다.
칼을 중시하는 풍습은 중세 유럽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곳곳에 퍼져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 청동기 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인 비파형 동검도 이처럼 높은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속초의 조양동 유적에서는 칼이 아니라 도끼가 나왔다. 어쩌면 이 지역에는 칼 대신에 성스러운 도끼 내지는 마법 도끼를 중요한 상징으로 하는 약간 독특한 풍습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던 것이라고 봐야 할까? 충청남도 부여의 송국리 유적에서도 도끼를 만들기 위한 틀로 보이는 거푸집이 발견된 적이 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청동 도끼가 발견된다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곱게 묻힌 청동기 시대의 청동 도끼 유물이 남한 지역에서 실제로 발견된 일이 흔하지는 않다. 속초 조양동의 청동 도끼는 남한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사례였다.
과거 북한의 함경도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청동 도끼가 발견된 적은 있었다. 지금은 휴전선이 가로막혀서 강원도 속초 지역과 북한의 함경도 지역은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다. 하지만 휴전선이 없을 때는 강원도 동해안과 함경도 동해안은 동해 바닷가로 서로 통하는 지역이었다. 그렇다면 청동기 시대에 동해안에는 청동 도끼를 자랑스러운 상징으로 내세우는 전사의 무리가 지배하는 지역이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 시대는 언제쯤일까?
고대의 청동 도끼 전사들이 활약하던 시대를 알아내는 기술에 관해 설명한다면, 나는 좀 먼 곳에서부터 이야기해 보고 싶다. 지구로부터 약 2만 광년, 그러니까 20경 킬로라는 아주아주 먼 거리에 있는 별의 잔해부터 말해 보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 우주 공간의 저 머나먼 한편에서 커다란 별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냥 단순히 폭발한 것이 아니라 초신성이라고 하는 특별한 현상을 일으키며 폭발했는데, 별이 초신성으로 변하면서 폭발하면 그 폭발의 규모가 너무나 막강해서 별의 원래 밝기보다 몇억 배 혹은 몇십억 배 이상 밝게 빛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먼 곳의 별이었지만 지구에서도 무척 밝게 보일 정도로 빛을 내뿜게 되었다. 이것은 SN1604라고 하는 초신성의 사례다.
이렇게 우주 저편에서 갑자기 별이 대폭발을 일으키면 그 잔해는 맹렬한 속도로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굵직굵직한 조각이야 먼 우주에서 보면 양도 얼마 되지 않고 순조롭게 멀리까지 날아오기도 힘들다. 하지만 미세하고 가벼운 조각일수록 굉장히 멀리 튕겨 나올 수 있다. 특히 우주의 보통 물질 중에 가장 가벼운 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 수소 원자는 놀라운 속도로 우주 저편으로 튕겨 나가는 수가 있다. 이때는 대개 수소 원자가 전기를 띤 상태가 된다. 그리고 빛의 속도와 맞먹을 만큼 빠른 속도가 되어 머나먼 곳으로 튕겨 날아간다.
이런 것이 요행으로 지구에까지 도착하면, 우주에서 떨어지는 이상한 광선 같다고 해서 우주선(cosmic ray)이라 한다. 넓디넓은 우주에서 하필 지구로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우주 이곳저곳에는 폭발하거나 괴상한 현상을 일으키는 별이 많기도 많다. 그래서 이런 현상은 꾸준히 일어난다. 게다가 우주선 중에는 이것 말고 다른 종류들도 있어서, 지구의 하늘에는 언제나 이렇게 아주 가볍지만 아주 빠르게 튕겨 나온 우주선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구 안으로 들어온 우주선은 공기를 이루는 물질들과 충돌하거나 다른 반응을 일으키면서, 원래 있던 물질들을 변질시킨다. 그러면 평소에 없던 전혀 다른 물질이 생기기도 하고, 우주선과 비슷한 또 다른 물질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긴 물질들이 다시 공기와 반응하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해서 일어난다. 우주 저편 머나먼 곳에서 날아온 입자들의 영향으로 공기의 성분은 아주 미약하게 방사능을 띤다. 방사능이라고 하면 무시무시한 성질 같지만, 우주선의 영향으로 지금도 우리 주변의 모든 공기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광합성을 하며 자라는 식물들도 결국 아주 미약한 방사능을 띤다. 또한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들 역시 미약한 방사능을 띠게 된다. 아주 조금이지만 우주에서 계속 우주선이 쏟아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평범한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다. 계속 미약한 방사능이 몸에 들어온다.
그런데 만약 누가 어떤 물체를 땅속에 묻어서 더 이상 외부 공기와 섞이지 않게 하고 우주선도 닿지 않게 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우주에서 방사능이 들어오지 않으니 물체 속의 방사능은 점점 약해지기만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땅속에 오래 묻혔던 물체를 꺼내서 방사능을 측정하면 얼마나 세월이 지났는지를 추산할 수 있다. 실제 계산 방법은 조금 더 복잡하지만 기본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고고학 유물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먹고 자란 나무나 생명체의 흔적을 중시해서 보통 이산화탄소의 탄소를 측정하는데, 이런 방법을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이라고 부른다.
이 연대 측정법으로 조사한 속초 조양동 유적의 연대는 대략 기원전 9세기 이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조양동에서 발견된 청동 도끼라고 말해 볼 수 있겠다.
지금의 조양동 유적은 나무숲 사이, 어린이 놀이터 정도 되는 규모의 잔디밭 위에 짚으로 만든 작은 집 네다섯 채가량이 있는 조용한 모습이다. 그런 작은 공원을 둘러보면서 3,000년 전 배를 타고 동해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며 강원도, 함경도 지역에서 이름을 떨쳤던 도끼 전사단을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게도 현대 대한민국의 속초에서는 함경도 지역에서 건너온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순대가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3,000년 전 청동 도끼로 이어졌던 함경도와 속초의 관계가 21세기에는 순대에서 발견된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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