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11월 대상 - 일주일에 4시간, 금요일 친구가 부리는 마법
나의 특별한 친구
“오늘도 금요일 친구 만나요?” 금요일 퇴근 시간만 다가오면 옆자리 동료와 나누는 일종의 인사말이다. (2021.11.03)
“오늘도 금요일 친구 만나요?”
“크큭 또 들켰네요.”
금요일 퇴근 시간만 다가오면 옆자리 동료와 나누는 일종의 인사말이다. ‘금요일 친구’는 금요일마다 ‘불금에 뭐해요?’란 의례적인 질문을 주고받을 때 내가 매번 같은 친구를 만나는 걸 알게 된 직장 동료가 혀를 내두르며 지어준 별명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금요일마다 이 친구를 만난 지도 벌써 햇수로 4년째다.
금요일 친구와의 운명적 만남은 대학교 4학년 때부터다. 휴학하고 1년 신나게 놀다가 학교에 가니 친했던 동기들은 다 졸업했고,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후배들과 수업을 같이 들어야 했다. 그중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가 딱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지금의 ‘금요일 친구’다. 그전에는 오고 가다 인사 정도만 나눴던 사이인데 그를 발견한 순간, 예전부터 친했던 것 마냥 손을 흔들며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수업을 같이 듣고, 밥을 같이 먹고, 취업 준비를 같이했다. 대학에서 만난 많은 인연이 그렇듯 관계가 소홀해질 수 있는 방학에는 토익학원을 핑계로 쉴 틈 없이 붙어 다녔다. 졸업을 앞두고 서로를 알게 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모든 것이 잘 통했다.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가 ‘우리는 정말 쏘울메이트야’라는 낯 뜨거운 말도 서슴없이 내뱉을 정도였으니까.
대학 졸업 후 돈도 벌고 취업 준비도 할 겸, 대학교 행정팀에서 조교로 일했다. 한 달 뒤 옆자리에 공석이 났고, 같은 취업준비생인 금요일 친구를 꼬드겼다. 그렇게 우리는 1년 동안 매일 봤다. 빨리 취업에 성공해서 나가야 했지만, 둘이 붙어 다닐 수 있는 환경에 너무 만족한 나머지 계약 기간을 꽉 채우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혹독한 백수 생활을 겪고, 비슷한 시기에 나는 6호선 망원역, 친구는 6호선 태릉입구역 근처에서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진정한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만큼 쌓이는 스트레스 장르도 다양해졌다. 최소 주 1회는 만나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전철을 갈아타지 않고 만날 수 있는 보문역에서, 심적으로 부담이 적은 매주 금요일 퇴근 후에 만남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혹자는 ‘도대체 금요일마다 만나서 뭐 해?’라고 묻는다. 한 달에 4번이나 만나지만 매번 밥을 먹고 음료를 마신다. 음식이 입에 맞고,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갖춰진 곳이라면 몇 주간 그 식당만 가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 19 탓에 음료를 사 들고 공원을 몇 바퀴씩 빙빙 돌기도 한다. 음식과 장소는 곁들 뿐 편하게 대화할 장소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후 6시부터 10시, 퇴근 후 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말 그대로 서로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주는데, 단 한 번도 쓰레기통 역할을 버겁게 느껴본 적이 없다. 친구가 내게 내다 버린 감정을 잘근잘근 씹는 동안 오히려 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을 경험한다. 가족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고, 아무리 오래된 친구에게도 무턱대고 털어놓기 힘든 고민들도 금요일 친구에게는 뭐가 그렇게 쉬운지 모르겠다.
손가락질에 막말을 일삼는 상사 때문에 기가 팍 죽어 있던 때가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상사의 폭격에 여러 번 되뇌고 곱씹다가 결국 ‘맞아, 내 잘못이야’라며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금요일 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그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된통 당하고 온 나조차도 별거 아니라고 넘어간 일을 친구는 얼굴을 붉힌 채 ‘가다가 넘어져서 코나 확 깨져버려라!’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집에 와서 씻고 누우면 ‘그래, 웃기지 마! 내 잘못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땅굴을 박차고 나와 주말 동안만큼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나중에는 상사(여전히 코는 깨지지 않은)의 거친 발언이 내 귀를 때려도 ‘이것도 이번 주 금요일 이야깃거리다’ 하며 속으로 한껏 조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몇 년 동안 직장도, 직무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린 ‘금요일 친구’다. 야근으로 한 두시간 늦게 끝나는 걸 굳이 기다리거나 사랑니 2개를 빼서 퉁퉁 부은 한쪽 볼을 감싸 쥐고도 만나는 조금 유별난 금요일 만남이기도 하다. 가끔은 소중한 이 시간이 갑자기 사라질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기도 하는데, 지금은 일주일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친구에게 힘껏 감사해하기로 했다.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는 것, 그 어려운 일을 매주 해내는 금요일 친구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윤서 게으름을 다스리며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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