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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보다 채소 : 채소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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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의외의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바로 마트의 신선 식품 코너다. (2021.06.04)

illust by 배현선, 자그마치북스 제공

한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의외의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바로 마트의 신선 식품 코너다. 가까이만 가도 살갗이 서늘해진다. 냉기가 가득하지만 그 느낌이 결코 싫지 않은 곳이다. 가지런히 놓인 우유와 버터, 치즈코너를 지나 ‘채소’코너에 다다랐다. 새하얀 수증기 사이로 각양각색의 채소들

이 가지런히 누워 싱싱함을 뽐내고 있었다. 푸릇푸릇한 상추, 쑥갓, 치커리, 청경채, 양상추, 아스파라거스 등의 다양한 잎줄기채소들은 밭에서 갓 따온 듯했다. 가득 쌓여 있는 당근과 감자와 무에서는 건조한 흙냄새가 났다.


illust by 배현선, 자그마치북스 제공

장바구니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샐러드용 어린잎 채소, 방울토마토, 미니양배추를 각각 한 팩씩 집어 들었다. 샐러드는 종류를 불문하고 가리는 것 없이 다 좋아하는 편이다. 냉장고에 항상 샐러드 재료가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다. 그리고 대파 한 단과 양파 두 알까지. 특히 대파, 양파는 장을 볼 때마다 꼭 사는 채소들이다. 수많은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쓰임새와 저렴한 가격,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은 물론이고 생김새까지도 마음에 든다. 장바구니 밖으로 비죽이 튀어나오는 기다랗게 쭉 뻗은 대파를 사 들고 집으로 갈 때와 대파를 깨끗이 씻은 뒤 송송 썰어 용기에 담을 때에는 일종의 쾌감까지 느낀다. 기름을 두르고 볶으면 퍼져 나오는 파의 매콤하고 고소한 향이 특히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껍질을 벗겨내면 모습을 드러내는 단단하고 옹골찬 모습의 양파도 결코 파에 밀리지 않는다. 잘게 썰어 토마토와 함께 마리네이드를 만드는데 넣기도 하고, 카레를 만들거나 볶음밥을 할 때에도, 가늘고 길게 썰어 샌드위치 속을 만들 때에도 필요하다. 이것은 극히 일부일 뿐 익히 알다시피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요리법이 있다.


illust by 배현선, 자그마치북스 제공

채소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편식하는 대상에 가장 많이 손꼽히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어린 아이들은 채소를 쏙쏙 골라내 먹고, 성인이 되어서도 채소를 가리는 사람은 정말 많다. 물론 나도 오래전에는 콩밥이라면 인상부터 찌푸려지고, 가지를 왜 먹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샐러리 특유의 향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고기가 있어야만 채소를 먹었다. 과일은 향도 좋고, 달고 새콤하고 맛있는데 채소는 왜 저런 걸까 싶었다. 워낙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채소의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 건강을 위해 의식적으로 몸에 나쁜 음식을 먹는 횟수를 점차 줄여나갔고, 채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도 마음도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우선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거나 평소 가장 익숙하게 잘 먹던 채소부터 시도해보기로 했다. 오이나 토마토와 같은 바로 먹을 수 있는 열매채소는 물론이고, 감자나 고구마 등의 뿌리채소도 원래 좋아하던 것들이기에 어렵지 않게 적응해 갔다. 조금씩 자주 사서 다양한 조리법, 요리법을 참고해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입맛이 180도 바뀌어 있었다. 스스로도 놀라웠다. 냉장고에는 늘 샐러드용 채소를 구비해 두게 되었고, 샐러리에 마요네즈를 찍어 먹거나 가지 구이를 만든다거나 풋콩을 삶아 맥주 안주로 먹기도 했다. 원래 가지나 샐러리, 콩은 전혀 가까이하지 않던 식재료였다. 채식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당장은 될 수도 없겠지만, 채소를 전보다 더 많이 섭취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갖은 채소를 볶거나 데치거나 굽거나 쪄서, 혹은 날것 자체로 즐기기도 했다. 채소에서 퍼져 나오는 은은한 단맛과 다채로운 식감을 음미하게 되었다. 신선함과 싱그러움도 하나의 맛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식사를 한 뒤에 속이 편안하다는 점도 또 하나의 장점 중 하나였다. 특히 제철 채소는 어딘가 숭고함마저 지니고 있다.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것이란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이제는 과일보다 채소가 더 좋다. 매일 매일 채소를 먹는다. 좋아하는 먹거리의 지평을 넓혀간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닫고 있다. 알고 싶은 채소와 그 요리가 무궁무진하게 많다. 아삭아삭하고 부드럽고, 사르르 녹기도 하는 채소의 맛이란!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배현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어딘가 어설프지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좋아합니다.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휴가』, 『우엉이와 오니기리의 말랑한 하루』 저자

인스타그램 @baehyunseon @3monthsshop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배현선 저
자그마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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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배현선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배현선> 저11,700원(10% 5%)

일상 속 조그만 사치를 누릴 수 있어 삶은 또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무언가를 소비하며 얻는 작고 빛나는 전환점들’ 하루의 끝에서 돌이켜보면 오늘도 많은 것들을 소비하며 보냈구나 싶다. 필요해서 산 크고 작은 물건들, 맛있는 식사를 위한 재료,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 『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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