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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요정 이야기>, 너희 중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
웹툰 <요정 이야기>
충분한 교육과 안전한 환경을 제공받으며 살아온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정 이야기>는 개인의 어리석음이나 의지박약으로 취급되는 문제들이 어떤 구조를 통해 생겨나고 대책 없이 곪아가는지 차근차근 드러내는 작품이다. (2021.02.01)
스무 살, 대학교 1학년인 요정은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여덟 살 연상의 남자친구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자며 ‘선택권’을 준다. 요정은 간신히 학기를 마친 뒤 아기를 낳는데, 아기는 분만 과정에서 뇌 손상을 입어 장애를 얻는다. 요정의 엄마는 “이게 다 너와 내 죄 때문”이라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기도하자고 말한다. 죄책감에 휩싸인 요정 역시 아이의 장애를 부정하며 치료를 거부하고 종교에 깊이 빠져든다. 세상에 이런 엄마가 어디 있냐고? 인스타그램(@yojeong100)과 딜리헙, 포스타입에 연재 중인 웹툰 <요정 이야기>는 요정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본 이야기는 트리거 요소가 있습니다. 학교폭력, 성폭력, 종교, 정신병 등의 소재가 등장합니다. 관련 소재에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은 구독을 자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전개가 느리거나 사건이 금세 해결되지 않는 ‘고구마’ 상황을 싫어하는 독자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요정 이야기>에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국면은 없다. 첩첩 고구마뿐이다. 계획 없이 첫째를 낳은 요정은 1년도 지나지 않아 둘째를 임신한다. 예정에 없던 둘째까지 낳은 뒤 복학하려던 요정은 막연히 자연피임을 기대하다 또 셋째를 임신한다. 설마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러냐고? 안타깝게도 한국은 OECD 국가 중 콘돔 사용률이 최하위인 나라인 데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피임법으로도 인정하지 않는 질외사정이 가장 널리 쓰이는 ‘피임’ 방식이다. 콘돔 사용을 거부했던 남편이 정관수술 또한 꺼리는 바람에 요정은 임신중지 후 미레나 시술을 받는다. 임신 중에도 출산 직후에도 남편은 줄곧 그를 성욕 해소의 도구처럼 대하고, 요정은 잘못된 선택을 거듭한다. 이쯤 되면 자신의 인생을 함부로 하는 그도 문제처럼 보인다. 그런데, 요정의 삶이 엉망이 된 것은 단지 그가 어리석기 때문만일까?
“나는 알았다. 내가 남들보다 꽤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가난과 부모의 방임 속에 자란 요정은 중학생 때부터 채팅에서 알게 된 남자들과 중독적으로 무의미한 만남을 갖는다. 개척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종교를 통한 구원에 매달리던 엄마는 자기파괴적으로 살아가는 딸도,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아들도 돌보지 못한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알게 된 성인 남성의 물질적 지원과 집요한 구애를 ‘사랑’이라 믿고 싶었던 요정은 자신의 마음도 모르는 채 성관계부터 갖고 그가 ‘신이 보낸 사람’이라며 합리화한다. 요정이 그와 결혼해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사이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던 남동생은 조현병에 걸려 망상과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다. 요정과 가족들은 괴로운 현실의 도피처를 찾아 종말론에 심취한다.
충분한 교육과 안전한 환경을 제공받으며 살아온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정 이야기>는 개인의 어리석음이나 의지박약으로 취급되는 문제들이 어떤 구조를 통해 생겨나고 대책 없이 곪아가는지 차근차근 드러내는 작품이다. 요정을 이중으로 억압하는 것은 가부장제와 기독교 신앙이다. 가족을 광신의 길로 이끌고 딸을 순결 이데올로기에 가두었던 엄마 또한 자신의 의지에 반해 이루어진 결혼의 피해자다. 무능하고 폭력적이며 불성실한 남편이었던 아버지는 목사라는 권위를 이용해 신도에게 성폭력을 저지른다. 그 피해자 역시 요정이 그랬듯 양육자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 놓여 있던 인물이다. 결핍과 방임이 만들어내는 비극은 대를 잇고, 미성년 여성은 늘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다.
이처럼 직면하기 괴로운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작가가 택한 방식은 블랙코미디다. 첫 임신으로부터 14년이 지난 2020년,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꺼내놓기 시작한 그는 관찰자적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본다. 주변인은 물론 자신의 어리석음, 비겁함, 추악함을 가차 없이 끄집어내 냉소하는 위악적 태도는 생존을 위해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방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누가 봐줄까 고민하면서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라고 고백했던 작가는 이것이 긴 이야기가 될 거라고 말했다. 독자는 작가가 그 지독한 불행으로부터, 적어도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기를 바라는 긴장감을 품고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계는 터져버릴 것이다”라는 뮤리엘 루카이저의 시행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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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웹 매거진 <매거진t>,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