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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산책

수술실에 들어간 부모를 기다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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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오래 있어 본 사람들만 알고 있는 산책이 있다. (2019.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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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중 경과를 보호자에게 문자로 보내주나요?” 수술실 앞에서 간호사에게 묻고 흠칫 놀랐다. 이런 질문을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니. 간호사는 대기실 모니터로만 확인할 수 있다고 일러 주며 엄마가 실린 침대를 끌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 잠시 앉아 모니터를 봤다. ‘수술 대기 중’이라는 글자가 ‘수술 중’으로 바뀌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실은 입원실과 다른 건물에 있고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두 병동을 오갈 수 있으니 편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엄마가 실린 침상을 끌고 엘리베이터를 몇 번이나 갈아탔고 코너를 여러 번 돌아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점에서 멀어질수록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생겨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길이었다. 왔던 길을 자세히 봐 두었기에 들어온 문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열리지 않았다. 옆에 있던 간호사라 출구는 다른 방향이라 알려주었다.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고 나오기를 반복하며 겨우 병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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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에 들어간 부모를 기다리는 일이 몇 번째일까. 오늘은 엄마의 수술 날이고 이전에는 아빠가 오래 투병했다. 그가 처음 수술실에 들어갔던 날은 자세히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몇 번의 수술이 더 이어졌고 언젠가부터 숫자나 세세한 장면을 잊어버렸다. 기다림의 빈도가 늘 때마다 나는 침착한 사람이 되어간다. 이제는 병원에 들어서기 전, 긴 심호흡을 하는 의식을 갖는다. 검사 결과를 말하거나 회진을 도는 의사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말을 빨리하거나 코를 훌쩍거리지 않는다. 보호자로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일은 중요하지마는 몇 년이나 병원에서 지내며 울지 않는 냉정함은 어려운 거다. 혼자 변기에 앉아 있을 때, 엄마 심부름으로 탕비실의 전자레인지 앞에서 음식을 데우거나 아빠의 소변 통을 닦으면서 종종 울곤 했다. 그중 가장 울기 좋은 장소가 수술실 앞이었다. 아빠가 수술에 들어가고 “수술실 앞에 갔다 올게.” 말하면 엄마는 “수술 끝나면 문자 줄 텐데 그냥 병실에서 편히 기다리지.”라며 힘없이 말렸다. “그래도.” 병원 슬리퍼를 신고 터덜터덜 ‘수술 중’이 적힌 모니터 앞까지 걸어가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거기에는 나 말고도 우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 가족이나 의사가 없으니 마음 놓고 울 수 있었다. 화장실이나 탕비실에 비하면 덜 외롭게 울 수 있는 고마운 곳이었다.

 

“아빠, 산책하러 갈래?” 물어보면 아빠는 대답 대신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했다. 침대를 높이고 슬리퍼를 신겨 주고 휠체어까지 아빠를 옮기는 과정은 복잡했다. 혼자 한 적은 없고 늘 엄마가 도와주었다. 산책이라는 말이 밖으로 나서는 것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즈음에 알았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은 대부분 외투를 껴입기 어렵다. 휠체어로 옮겨 앉히는 과정도 어려운데 거기에 양말이나 외투, 모자를 입히는 과정은 더 곤란하다. 무엇보다 신체 기능이 약해진 이들에게 바깥 공기는 치명적일 때가 있다. 병원에서 말하는 ‘산책’은 병원 복도나 로비, 건물과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는 일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병원이 그렇게나 미로 같이 여러 동으로 만들어진 것은 병원산책자를 위한 건축가의 깊은 뜻…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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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원래 말이 많지만 산책할 때는 더 말이 많았다. 엄마와 둘이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지나다니는 간호사와 인사하거나 오래 병원에 있는 이웃 환자의 안부를 묻는 일도 잊지 않았다. 아빠는 혼자서는 있던 자리로 돌아올 줄 몰랐다. 잘 알면서도 아빠 편에 서고 싶을 때가 많았다. “아빠가 오늘도 병실을 못 찾아와서 간호사가 데려다줬지 뭐야.” 엄마가 내게 이르면 “나도 오늘 병실 오면서 또 길을 잃었지 뭐야. 병원은 왜 이렇게 미로 같은지.”라고 답을 했다. 여유가 있는 날에는 엄마도 아빠도 동시에 그 말에 웃어주었다. 그런 날에는 우리는 평소보다 가벼운 산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병원에 있던 순간을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매 순간이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어떤 날이 오더라도 사람은 경쾌하게 걷는 순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산책은 내가 이전에 알던 것과 달랐지만, 그렇게 걸으며 잠시나마 슬픔을 의심할 수 있었다.

 

조금 전에 엄마가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다. 마취가 덜 풀려서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엄마, 뭐라고?”를 몇 번 되풀이했다. 엄마는 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듯했다. 익숙한 손짓으로 뺨을 살살 때리며 “더 자면 안 돼. 엄마, 지금 일어나야 해.”를 반복해서 말했다. 어느 정도 정신을 되찾은 엄마가 “밥 먹고 와.” 하기에 시간을 보니 밥때가 한참 지나 있었다. 엄마가 쥐어준 카드를 들고 병원 식당에 와 있다. 아침보다 덜 헤맸다. 돈가스, 맛있으려나.

 

그러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리에 누웠다. 잠시 후, 얕은 한숨과 함께 플라스틱 식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몇번 주저하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식판 앞에 앉았다. "소리쳐서 미안해요, 엄마. 근데 돈까스가 바삭바삭해야 하는데 너무 눅눅하잖아." 식사를 마친 뒤엔 약을 먹었다. 종류도 크기도 가지가지인 여러가지 약이었다. 다른 환자들은 이미 화장실에 가거나 산책을 나간 듯했다. 나는 라디오를 들으려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찾아 머리맡을 더듬었다. (293쪽)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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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선아(비주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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