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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의리는 바다도 건넌다

제목하야 『세인트 영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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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런 각개전투 크리스마스를 보낸 전우(?)들 중 한 명인, 다음 날 덕질을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를 버린 S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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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끼리끼리 어울리는 까닭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 함께 지내다 보니 비슷해지는 건지 정확한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내 친구들은 어딘지 모르게 나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는 덕질 전투를 치르느라 따로따로 바빴다. H는 세종대왕 앞 20번째 줄에서 김제동 만민공동회에 참석했고, S는 다음 날 있을 국가스텐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가기 위해 집에서 몸을 사렸으며, 나는 표창원 의원과의 프리허그, 이른바 표산타 이벤트를 위해 장장 한 시간 줄을 섰다. 오늘은 이런 각개전투 크리스마스를 보낸 전우(?)들 중 한 명인, 다음 날 덕질을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를 버린 S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S는 남산을 기준으로 우리 집에서 거의 정 반대편에 산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대구에 갈 시간이 걸려야 도착할 거리건만, 나는 대학시절부터 S의 집에 몇 번이고 찾아갔으니, S가 좋아서가 아니라 S의 책이 원인이었다. S의 서재는 나와 마찬가지로 만화가 태반인데다 취향도 비슷해 골몰했달까. 이런 S가 서른이 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바꿨다. 집 앞에 ‘북새통’이란 이름의 만화방을 차린 것. 나는 “유붕이 자원방래하면 불역낙호아”를 외치며 전철로만 산 넘고 물 건너 친구를 찾아갔다가 서재에서 만화방으로 업그레이드된 목록의 기세등등함에 잠시 주눅이 들었다. 뭘 볼까 눈치를 보니 친구가 “아니, 이걸 모른단 말이야?” 같은 표정으로 만화를 권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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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하야 『세인트 영멘』. “예수와 붓다가 밀레니엄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하계에 휴가를 온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신성모독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유머를 구사하는 이 만화 시리즈에서 특히 마음에 든 부분은, 붓다가 하계에 내려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붓다』 시리즈에 감동을 받아 만화가가 되기로 작심하는 1권 두 번째 에피소드 ‘성스러운 좌충우돌’이다. 이후, 붓다는 4컷 만화를 그려 천부의 잡지에 연재하느라 마감에 시달리는데.

 

내가 『세인트 영멘』을 보며 박장대소하자 친구는 작가의 다른 만화를 추천해줬다.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릿지』 제목이 너무 길어 일본에서는 『AUTB』라는 약자로 통하는 만화다. 『AUTB』『세인트 영멘』을 코웃음 치며 넘어서는 수준의 블랙코미디를 선보인다. 설정부터 남다르다. 『AUTB』의 주인공들은 다리 아래 아라카와 하천부지에 사는 홈리스들이다. 늘 입고 다니는 단벌 체육복에 2-3 이름표가 붙어 있어 이름이 니노상(일본어로 2-3를 읽으면 니노산이 된다)이 된 금성인 ‘니노’, 갓파 인형옷을 입고 다니며 스스로 갓파라고 주장하는 ‘촌장’, 노란 별 모양의 우레탄 소재 가면을 쓰고 다니는 자칭 록스타 ‘별’ 등 만화 속 등장인물들은 흔히 생각하는 노숙자의 이미지를 코웃음치며 상회한다.

 

알고 보니 이 두 만화 시리즈를 그린 나카무라 히카루와 나 사이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나카무라 히카루 역시 성덕, 것도 이중적 의미의 성덕(성우 덕후이자 성공한 덕후)이었던 것. 무려 『AUTB』 애니메이션 시리즈 주연 성우 카미야 히로시와 결혼해 애를 낳았다는 스캔들을 터뜨렸는데. 그런고로 나는 나카무라 히카루의 충성한 독자로 거듭나게 되었건만, 『AUTB』가 완결될 무렵 S에게 안타까운 연락이 왔다. 집 앞 만화방을 접었다는 소식.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승승장구하던 S의 서재가 이렇게 다운그레이드되면 내 덕질은 어쩌란 말인가, 어떻게든 책임을 지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세인트 영멘』 13권이 나올 무렵, S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버리는 덕후다운 반전을 선보였다. 2017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등단한 것.

 

덕분에 제주도에 간다. 원래 덕후의 의리는 바다도 건너는 법이니까 이 정도야 당연한 일이다. 그런고로, 다음 호는 난생처음 간 제주도에서 만난 덕후 이야기로 준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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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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