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네요. 벌써 계절이 두 개째 넘어가나 봅니다. 손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매주 산책을 다녀온 기분이 들어요. 가는 길에 때로는 꽃잎이 나부끼고 때로는 소나기가 퍼부었지요. 꽤 멀리까지 한참을 걸어도 본 것 같아요.
거룩한 아름다움에 대한 답신을 쓰려니까 저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영혼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네요. 그래서 첫 번째 그림은 성서에 나오는 내용으로 골라보았어요.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Diego Vel?squez, 1599-1660)가 그린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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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1618, 캔버스에 유채, 60x103.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
어느 날 그리스도가 한 자매의 집을 방문하지요. 그리스도는 최고로 귀한 손님이므로 언니인 마르타는 극진히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부엌에 들어가 분주하게 일을 했어요.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거실에 앉아 부엌에는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림 오른쪽에 마치 액자처럼 보이는 공간이 거실이에요.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발치에 앉아 그가 하시는 말씀에 폭 빠져들어 있군요.
그걸 보고 화가 난 마르타는 마리아에게 거기 있지 말고 어서 와서 좀 도와 달라고 말을 해요. 그 때 그리스도는
“마르타야, 너는 참으로 많은 일을 염려하지만, 정작 필요한 한 가지는 모르는구나.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고, 그 몫을 놓칠 이유가 없다.” 라며 은근히 동생의 편을 들어줍니다. 그림 속 마르타의 표정을 좀 보세요. 심술이 잔뜩 나 있습니다. 집안일을 돕지 않는 동생이 득을 보고 부지런한 언니가 칭찬은커녕 핀잔을 듣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예로부터 갖가지 신학적인 해석이 덧붙곤 했지요. 마르타와 마리아는 각각 일과 신앙, 혹은 물질적인 가치와 정신적인 가치를 상징한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뜻입니다. 세상의 일에 성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수행 역시, 그 못지않게 필요한, 살아가면서 놓쳐서는 안 될 몫이라는 것이지요.
신분에 따른 디코럼(decorum)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디코럼이란 등장인물이 신분과 상황에 어울리게 말하고 처신하느냐, 즉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보이는가를 평가하는 기준이에요. 문학이나 미술에서는 내용 구성보다 디코럼의 묘사가 작품의 맛을 살리는 관건이 되기도 한답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마리아와 마르타의 디코럼은 다르지요. 거실과 부엌은 벌써 급이 다른 공간이거든요. 거실은 편안하게 앉아 쉬거나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인데 반해, 부엌은 축축하고 줄곧 서서 일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마리아와 마르타는 이렇듯 처지가 다르지만 자기에게 어울리는 디코럼에 충실할 때 각각 아름다울 수 있지요. 하지만 보는 이는 마르타 쪽에 마음이 기웁니다. 특히 명절에 음식 준비를 해본 일복 많은 며느리라면 부엌에 있어 본 소외감을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어머니의 사랑을 희생적이라고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거실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부엌에 계셨다는 안쓰러움 때문일 것입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화가 안나 안처(Anna Ancher, 1859-1935)가 그린 「부엌에 있는 여인」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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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안처, 「부엌에 있는 여인」, 1883-86, 캔버스에 유채, 87.7x68.5cm, 코펜하겐 히르슈슈프룽 컬렉션 | |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창을 통해 노르스름한 빛이 기분 좋게 들어오는 잔잔한 실내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여기 이 여인이 내 모습과 닮았다기보다는 내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아마 뒷모습이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부엌에서 음식 준비로 분주하실 땐 어머니의 얼굴보다는 저렇게 약간 옆얼굴 정도만 볼 수 있었거든요. 뒤에서 매달리듯 끌어안고 화장품과 찌개가 뒤섞인 야릇한 좋은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았던 생각이 나요.
사실 제 어머니는 그림에서처럼 햇살이 남아있는 낮 무렵에 주방에 계시는 경우는 드물었답니다. 어릴 적 학교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뜻밖에도 어머니가 부엌에 서서 뭘 만들고 계시면 뛸 듯이 행복했어요. 배가 출출했다기보다는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다운 모습으로 나만을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았거든요. 부엌은 곧 어머니, 어머니는 곧 밥이라고 하는 그 뿌리 깊은 은유를 여자인 저도 깰 수가 없나 봅니다. 젖 먹던 시절부터 어머니는 내 기억 속에 밥을 주는 사람이자 장소로 각인되어 있으니까요.
아주 오래전 프랑스에서는 ‘레스토랑’이라는 단어가 먹는 장소가 아니라 음식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긴 여행 중 잠시 머물다 가는 투숙객들을 위해 민박집에서 상시 끓여놓고 있다가 한 사발씩 인심 좋게 제공했던 육수 이름이 바로 레스토랑이었어요. 레스토랑은 회복해준다는 의미의 ‘restore’라는 어원에서 파생되었는데, 15세기 무렵까지도 프랑스에서는 양고기나 쇠고기 등 각종 고기를 푹 삶아 우려낸 맑은 국물에 소금과 향료, 그리고 몸에 좋다는 약간의 보양재료를 함께 넣어 끓인 후 수시로 따끈하게 한 컵씩 부어 마셨다고 해요. 그리고 그걸 마시면 몸도 마음도 전부 회복된다는 의미에서 그 육수를 레스토랑이라고 불렀다지요.
자기만의 비법으로 만든 보양식 육수로 유명해진 숙박업소들이 곳곳에 입소문이 나고, 아예 멀리서 그 집 고유의 육수를 맛보러 사람들이 찾아오는 식으로 상황은 점차 바뀌었습니다. 민박집 주인은 본업인 숙박일은 그만 두고, 부업인 육수 판매에 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육수만으로는 뭔가 부족해서 빵도 끼워 팔고, 야채와 누들과 스테이크 등 이것저것 손님이 요구하는 대로 만들어서 팔다가 점점 수십 가지 메뉴를 개발하게 된 것이래요.
요즘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전통이 깊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보아도 메뉴판에서 본래 그 이름을 달게 만든 레스토랑이라는 육수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하네요. 음식의 이름이던 것이 그 음식을 파는 장소로 바뀌면서, 덧붙여 팔던 음식들만 살아남고 정작 주가 되던 그 음식은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기력도 회복시키고 지친 마음도 보듬어주는 음식이란 결국 여주인의 인정이었고, 인정이란 돈을 주고 사먹을 성격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레스토랑을 먹을 수 없듯, 저도 더 이상 부엌에서 밥 짓는 어머니를 찾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왜냐고요? 칠순을 넘기면서부터 제 어머니는 이제 부엌일이 딱 귀찮다고 말씀하시거든요. 하지만 ‘밥 주는 사람’이라는 의식만큼은 여전하십니다. 마감일에 쫓겨 제대로 챙겨먹을 정신이 아닐 때 꼭
“밥 든든히 먹고 다녀라.” 하고 신경을 건드는 전화를 하시지요. 멀리 떠나있을 땐
“먹는 건 잘 맞니?” 하시고, 기쁜 일이 있어 알려드리면 축하한다는 말씀대신
“돈 아끼지 말고 최고 비싸고 좋은 음식으로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어라.” 하십니다. 마음도 통 몰라주고 모든 걸 오직 먹는 것으로 귀결시키는 그분 때문에 예전엔 대화 도중에 짜증이 솟구치곤 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이상하게도
“밥 먹었냐.” 하는 말씀이 듣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서럽고 허한 날엔 맛있는 걸 배불리 먹고 나면 든든하고 행복해져요. 정신을 감싸주는 따스한 위로의 말도 좋지만, 어떤 때는 아무 말도 묻지 않는 밥이 오히려 두둑한 힘이 되어줍니다. 한 끼의 식사는 정말로 제게 거룩한 아름다움이자, 위대한 어머니랍니다.
마지막 그림은 두 사람이 산책하는 모습으로 골랐어요. 인상주의자 카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94)의 「오르막길」인데, 초가을처럼 햇살이 아주 따가운 어느 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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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프 카유보트, 「오르막길」,캔버스에 유채, 1881, 기관 소장 | |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한적한 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고 있어요. 손 선생님과 저처럼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지요.
저는 뒷모습을 그린 그림에 편안함을 느끼는 편인데, 막막히 펼쳐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그런지도 몰라요. 뒤따라가는 이라면 미리 걱정할 일이 무엇이며, 함께 가는 이라면 혼자 헤쳐 나가야 할 일이 또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껏 손 선생님께 글? 쓰는 제 기분이 그렇게 푸근했었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정겨운 뒷모습으로 남고 싶습니다. 도전적인 앞모습이나 견제해야 하는 옆모습이 아니라, 부엌에 서계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처럼 평화롭게 말이지요.
그림 속의 이 두 사람은 오르막길을 올라 언덕 너머로 점점 조그맣게 사라지겠군요. ‘이봐요’ 하고 불러 세우지도 못하면서 멀어져가는 기억만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바래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 선생님. 잊지 못할 즐거운 산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