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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아담한 저택 같은 분위기다. | |
이른 새벽, 대운하에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면 베네치아는 신비로움에 잠긴다. 토마스 만의 원작을 영화화한 루키노 비스콘티의 < 베네치아의 죽음 >처럼 말러의 장엄한 교향곡이 울려 퍼질 것만 같다. 대운하를 따라 늘어선 거대한 팔라초들이 미명 속에서 나타난다. 곤돌라 깊숙이 몸을 파묻고 바닷바람을 즐기는 연인들, 이른 아침 수상버스에 몸을 싣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그 안에서 페기 구겐하임의 환영과 만날 것만 같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곤돌라가 전부지만, 페기 구겐하임은 베네치아에서 마지막으로 곤돌라를 자가용으로 이용한 인물이었다. 곤돌라 제작의 명장 카사다가 최후로 만든 작품이 페기의 소유였다. 수상버스가 느릿느릿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날 때면, 페기의 유선형 곤돌라가 안개를 뚫고 대운하로 나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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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를 따라서 곤돌라들이 줄을 서 있다. | |
베네치아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도시를 볼 때와 배를 타고 운하에서 바라볼 때의 모습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골목 안에서는 팔라초 안쪽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 작품들이 있는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배를 타고 운하 쪽을 내려가다 보면 청동으로 만든 조각상 하나가 보인다. 말 위에 탄 남자가 발가벗은 채로 팔을 활짝 벌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누드 일광욕을 즐겼다는 페기 구겐하임 본인의 즐거움과 만나는 것 같다. 운하에 면한 미술관 후문을 장식하고 있는 마리오 마리니의 조각 「도시의 천사」이다.
1930년대에 새뮤얼 베켓의 연인이기도 했던 페기는 1940년대에는 막스 에른스트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비행기 티켓까지 구해주면서 여러 예술가들의 미국행을 주선했다. 그녀 자신도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유럽에 머무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뉴욕으로 돌아온 페기는 1942년 금세기 예술 갤러리(Art of This Century Gallery)를 열었다. 과거의 미술관과 달리 컬렉터의 수집품을 자랑하려고 지은 건물이 아니었다. 관람객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작품을 관람하고, 상호작용을 체험하면서 총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었다. 키리코를 비롯한 유럽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을 전시하는가 하면, 마르크 샤갈과 이브 탕기처럼 유럽에서 피난 온 미술가들과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같은 떠오르는 미국 미술가들이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의 예술은 이렇게 만났고, 추상표현주의의 발전을 통해 뉴욕이 파리를 제치고 미술 중심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금세기 예술 갤러리는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면서 지나간 시대와 다가오는 시대를 연결시키는 교량 역할을 했던 것이다. 5년 동안 금세기 미술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예술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지만, 페기는 지쳐 있었다. 예술의 중심에서 그녀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 있었다.
1946년 페기는 친구들과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그녀는 기차 안에서 베네치아로 완전히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사위인 장 엘리옹은 전기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페기는 베네치아에서 여왕이 될 수 있었지요. 뉴욕이나 파리에서는 베네치아처럼 현대미술을 보여줄 수 있는 제일인자가 될 수 없었으니까요.” 어떤 욕망이었을까. 2인자가 될 수는 없다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마침 24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는 페기가 가진 소장품들을 출품해 달라는 제안을 했다. 금세기 예술 갤러리에서 상설 전시를 했던 페기의 걸작들이 전시관에 걸렸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베네치아는 페기가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도시였다.
페기는 자기 맘에 드는 팔라초를 구입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호텔 생활과 여행을 즐기면서 매물로 나온 팔라초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오늘날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변모한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Venier dei Leoni)였다. 두 명의 공화정 총독이 나올 정도로 유서 깊은 가문의 저택이었다. 정원에서는 사자를 길렀다고 한다. 이 정원은 페기가 사랑했던 강아지들을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페기와 강아지들 모두 같은 자리에 묻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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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과 강아지들의 묘지 | |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는 한 층만 완성된 채 대운하 옆에 세워져 있었다. 벽이 전부 담쟁이로 덮인 나지막한 대리석 건물이었다. 페기는 이곳에 자신의 소장품들을 다 모아들였고, 수많은 예술가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열기도 했다. 화가 마르크 샤갈, 소설가 트루먼 캐포티 같은 저명인사들이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를 찾았다. 페기는 자신의 마지막 삶은 사랑하는 강아지들과 함께 베네치아에서 보냈다. 1979년 그녀가 죽자마자 팔라초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관리 하에 미술관으로 변모 작업을 시작했다. 화장된 그녀의 재는 강아지 무덤 옆에 묻혔다. 예술사의 어떤 흐름보다는 페기 구겐하임이 좋아서 모았던 작품들이 여전히 미술관을 지키고 있다. 페기 구겐하임은 죽었지만, 그의 취향은 고스란히 남아서 여전히 대운하의 잔물결 옆에서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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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에서 바라본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 |
페기 구겐하임은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인물이다. 대부호인 구겐하임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소녀 시절 아버지를 타이타닉 호 침몰 사건으로 잃은 트라우마가 있었다. 일찍이 스스로 예술적 방랑의 길을 택했으며, 수많은 예술가들의 뮤즈이자 연인이었으며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녀의 개척자적인 정신과 더불어 매체의 가십거리가 됐던 것은 그런 복잡한 남자 관계 때문이다. 그녀가 베네치아에서 안식을 취했던 곳, 이제는 죽어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던 저택이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 되었다. 여자는 현대 미술을 컬렉팅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던 시기에 페기 구겐하임은 선구자였다. 그녀를 통해서 20세기 현대 미술의 발전사를 느낄 수가 있다. 뉴욕도, 파리도 아닌 베네치아에서. 그녀는 진정으로 베네치아를 사랑했다. 뉴욕에서의 삶을 버리고 베네치아를 자신의 고향으로 삼은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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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나오는 관람객들 | |
1. 조르조 데 키리코의 「붉은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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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데 키리코, 「붉은 탑」(Red Tower), 1913, 73.5 x 100.5 | |
1943년 가을 금세기 미술 갤러리에서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888~1978) 의 초기 명작전이 열렸다. 이 그림도 같은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키리코의 그림을 볼 때마다 모호함과 막연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텅 빈 광장, 가운데 위압감을 주면서 우뚝 서 있는 탑. 광장을 향해 쏟아지는 햇살, 길게 늘어진 기마상의 그림자. 꿈을 꾸다가 잘 모르는 공간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 그런데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데자뷰 적인 이미지. 어디서 봤을까. 프로이트의 책에서 만났던 것 같은 그런 공간. 조르조 데 키리코의 광장에서 무의식의 세계를 느끼곤 한다.
2. 파울 클레의 「마법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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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 「마법의 정원」(Magic Garden), 1926, 52.1 x 42.2 | |
이 그림은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멀리서 볼 때는 그림 전체 이미지 속에 세부들이 파묻혀 있지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면 클레(Paul Klee, 1879 ~1940)의 동화 같은 이미지와 만나게 된다. 몇 년 전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대규모의 회고전을 할 때 클레의 다양한 느낌들을 보면서 괜찮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분홍빛이 주조를 이루는 작은 그림 속에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들이 뒤섞여 있다. 기분 좋은 꿈 속에 빠져드는 느낌, 모험소설의 일부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다.
3. 살바도르 달리의 「유동적인 욕망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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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유동적인 욕망의 탄생」(Birth of Liquid Desires), 1931~32, 96.1 x 112.3 | |
중학교 때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 1904~1989)의 그림을 처음 보면서 정신병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볼수록 정신병자 이상이지 이하는 아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대상들과 기묘한 인간들이 서로 얽혀있다. 그들은 태초 이전의 신화적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의 행동에서 굳이 어떤 의도를 찾으려는 것은 달리가 던진 끝없는 수수께끼의 세계에 빠지는 것과 같다. 의도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그냥 공허한 질문일 수도 있는 것. 하지만 그것은 초현실의 세계이며, 무의식적 기억의 세계이며, 악몽의 세계이기도 하다. 달리는 달리다울 뿐이다.
4. 파블로 피카소의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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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바다에서」(On the Beach), 1937, 129.1 x 194 | |
가끔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의 그림을 보면 귀여워서 즐거울 때가 있다. 「바다에서」 같은 그림이 그렇다. 색깔은 평범하고 유치한 단색. ET 같은 존재들이 바닷가에서 놀고 있다. 배를 만들어서 놀고 있는 두 명은 아마도 여인들일 터. 그러면 수평선 너머에서 몰래 훔쳐보는 존재는 남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우린 아직 인간을 닮았으나, 인간이 아닐 수도 있는 존재의 성별까지 파악할 능력은 없을는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상과학 영화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다.
5. 잭슨 폴록의 「달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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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 「달의 여인」(The Moon Woman), 1942. 175.2 x 109.3 | |
페기 구겐하임에게 있어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그녀 자신이 발견한 ‘미국의 가장 위대한 화가’였다. 잭슨 폴록은 페기 구겐하임에게 이용당한 것처럼 회고했지만, 폴록만큼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픽업된 미국 예술가는 없었다. 대공황기의 마지막 시절에 페기는 매달 150달러를 주면서 화가에 대해서 신뢰를 보여주었고, 폴록이 마음대로 그릴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었다. 폴록의 친구인 화가 제롬 캄로우스키는 폴록의 계약이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친 것과 같았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폴록의 다른 그림에 비하면 「달의 여인」에는 구상적인 형태들이 있다. 폴록 예술의 변화 속에서 어떤 심상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는지 이 그림을 보면 조금?나마 이해할 수가 있다.
6.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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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Empire of Light), 1953~54, 195.4 x 131.2 | |
마그리트(Ren?Magritte, 1898~1967)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꿈을 꾸게 된다. 그 꿈이 악몽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같은 그림인데도 공포가 될 수도 있고, 환희가 될 수도 있다. 그곳은 밤도 낮도 아니다. 모호한 초현실의 세계이다. 배경은 낮이고, 전경은 밤이다. 그 공간은 두 개의 공간 모두를 담고 있는가. 햇살 아래 밝게 빛나는 가로등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존재를 한 폭의 그림에서 만나게 된다. 그게 마그리트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페기 구겐하임은 편지에
“마그리트의 멋있는 그림으로, 대낮에 램프를 켜서 집을 밝히는 내용입니다.”라고 적어 보내기도 했다.
7. 프랜시스 베이컨의 「침팬지를 위한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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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 「침팬지를 위한 습작」(Study for Chimpanzee), 1957, 152.4 x 117 | |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초딩 시절 봤던 연극 < 빨간 피터의 고백 >이 생각난다. 침팬지가 아니라 배경이 빨간 거지만.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봤던 영화 < 혹성 탈출 >도 떠오른다. 빨간 벽을 배경으로 침팬지 한 마리뿐이지만,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1)의 주는 온갖 괴기스러운 기억들과 버무려져서 그 존재감을 강하게 만들어주곤 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들이 언제나 강렬하고 번쩍이는 느낌을 선사하듯이. 페기 구겐하임은 이 그림을 사서 팔라초의 침실을 장식하기 위해 걸어두었다고 한다. 베이컨의 그림치고는 조금 코믹한 느낌까지 주어서 그랬던 것일까. 궁금하다.
8.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걷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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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 「걷는 여인」(Woman Walking), 1932, 높이 150cm | |
페기 구겐하임에는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의 조각이 세 점 있는데, 내부에 있는 「걷는 여인」은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미술관은 내부 전체가 촬영 금지다. 하지만 자코메티의 조각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몰래 살짝…찍고 말았다. 우연히. 길고 길쭉한 여인이 왼발을 살짝 내밀고 있다. 오른쪽이 약간 올라간 어깨. 미묘한 균형과 미묘한 긴장감. 자코메티의 조각은 이렇게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아련한 떨림이 있다. 잘못 건드리면 무너질 듯한 불안감과 더불어. 그런 미묘한 순간을 포착하는 자코메티의 시선이 좋다.
9. 마리오 마리니의 「도시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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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마리니, 「도시의 천사」(Angel of the City), 1948, 167.5 x 106 cm | |
원래 원작은 말 탄 기사의 음경을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축제가 있어서 수녀들이 미술관 앞을 지나갈 때면 음경을 떼어두곤 했는데, 자주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성적으로 문란한 시절을 겪기도 했고, 음경에 대한 숭배의식 같은 게 있어서 그랬던 걸까. 아무튼 음경이 자주 도난당하는 바람에 마리오 마리니(Mario Marini, 1901~1980)에게 부탁해서 아주 고정시켜 버렸다고 한다. 발가벗은 기사가 시원하게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 같다. 야하지만 코믹한 작품. 대운하에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면 팔을 쭉 뻗은 청동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10. 막스 에른스트의 「아테네의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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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에른스트, 「아테네의 거리에서」(In the Streets of Athens), 1960 | |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의 그림과 조각은 그 느낌이 너무나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던 작품이다. 「도시의 천사」가 후문을 지키고 있다면, 「아테네의 거리에서」는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사각으로 만들어진 로봇 같은 존재들이 마치 어미와 자식들이 있는 것처럼 즐겁게 서 있다. 한가한 조각 공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혹은 괴짜들로 채워진 동화 같은 세상에 떨어진 앨리스 같은 착각도 들고. 막스 에른스트와 결혼 시절에 모아둔 작품들이 몇 점 있는데, 이 조각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의 작품이다. 페기는 예술은 예술대로, 성적 욕망은 욕망대로 만끽하면서 살았다. 헤어진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전 남편의 조각으로 팔라초 정원 한 구석을 장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