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사랑하는 문방구가 있죠. 바로 ‘문방사우(文房四友)’입니다. 종이와 붓과 먹과 벼루를 말하지요. 선비는 이들을 ‘벗(友)’이라 불렀습니다. 글 쓰고 그림 그릴 때 반드시 있어야 할 네 벗들인데, 거기에 하나가 빠졌어요. 연적입니다. 연적은 벼루에 따를 물을 담아두는 그릇이죠. 연적 없이는 먹을 갈 수 없잖아요. 그럼에도 연적을 왜 벗으로 치지 않았는지, 저는 늘 궁금했답니다. 종이나 붓은 그게 그거고, 먹과 벼루도 꾸밈이 다채롭지 못합니다. 연적은 온갖 모양이 있지요. 개구리, 오리, 원숭이, 복숭아에다 심지어 악기처럼 생긴 것까지, 있는 모양 다 만들어 쓴 게 연적이지요. 이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손으로 어루만지던 연적이 벗이 아니라면 선비에게 연적은 도대체 어떤 존재였을까요.
연적은 선비의 취미가 오롯이 드러납니다. 취미는 즐기려고 하는 일이자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힘이죠. 좋아하고 아끼지 않았다면 연적을 쓰다듬을 리가 없고, 미적 감상에 대한 욕구가 없다면 연적을 별나게 치장할 까닭이 있을까요. 아무튼 선비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게 좀 묘한 구석으로 흐르기도 해요. 뭐랄까, 선비의 엉큼한 감정이 숨어있다고 할까요. 실제로 연적을 놓고 관찰해 보죠. 하나는 ‘백자쌍학문연적’이고 또 하나는 ‘백자무릎연적’입니다. 묘한 취미가 어떤 것인지 또 연적이 벗이 아니면 무엇인지, 두 작품을 통해 얼추 짐작될지 모릅니다.
쌍학문 연적은 돋을새김한 학 두 마리가 튀어나오고 푸른 기가 도는 하얀 빛깔이 매우 산뜻합니다. 바탕색 좀 보세요, 얼마나 상큼한지. 어떤 분은 단팥죽 같다고 하더군요. 저게 자줏빛 광물성 안료로 멋을 낸 건데, 도자기 용어로 ‘진사채(辰砂彩)’라 합니다. 진사는 비싸서 포도나 모란꽃 문양 등이 있는 도자기 일부에 살짝 칠하고 마는데 이 연적은 된통 다 발랐습니다. 그래서 귀티가 납니다. 학이 하는 짓은 더 깜찍합니다. 한 쌍이 부리를 한껏 벌리고 키스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날개 끝을 더듬으며 이런, ‘부비 춤’까지 추는군요. 사랑의 환희가 열띱니다. 보는 사람도 덩달아 입이 딱 벌어지는 명품이긴 한데 아니, 선비가 이런 열렬한 구애 장면을 곁에 두고 공부가 되겠습니까. 요즘 눈으론 귀엽겠지만 옛 선비라면 마음이 싱숭생숭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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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쌍학문연적’, 19세기, 높이 5.4cm, 국립중앙박물관 | |
별스럽지 않은 걸로 호들갑을 떤다고요? 그렇다면 무릎연적을 보시죠. 이름 하여 ‘무릎’이라 했습니다. 만일 저 쌍학문 연적에 전부 백자 유약만 칠했다면 ‘두부연적’이란 이름이 붙습니다. 희고 네모 반듯한 꼴이 두부를 닮았기 때문이지요. 반면 이 연적은 볼록 솟은 모습이 여인의 무르팍처럼 생겨 무릎연적이 됐습니다. 옆에 부리처럼 나온 물 주둥이를 제하면 이렇다 할 단장 없이 그저 오뚝하고 매끈한 연적입니다. 그것에 굳이 여인의 신체에 견준 명칭을 붙였네요. 이 선생, 상상해보세요, 선비 방에 여인의 벗은 무릎이 있다? 무슨 애간장 녹일 일 있습니까. 저런 걸 두면 글이 더 잘 써지나요. 하기는 시나 그림의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 선비들이 이 무릎연적을 슬슬 어루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하더군요. 선비의 취미가 참 요상합니다.
저는 어느 날 무명시인의 한시를 읽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릎연적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나는 시였지요. 아, 무릎연적은 ‘무릎’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가 이렇습니다.
‘어느 해 선녀가 한쪽 젖가슴을 잃었는데/ 어쩌다 오늘 문방구점에 떨어졌네/ 나이 어린 서생들이 서로 다투어 어루만지니/ 부끄러움 참지 못해 눈물만 주룩주룩(天女何年一乳亡 偶然今日落文房 少年書生爭手撫 不勝羞愧淚滂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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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무릎연적’, 19세기, 높이 5.5cm, 국립중앙박물관 | |
이 선생, 아시겠습니까. ‘무릎’이라 둘러댔지만 속으론 딴 부위를 연상하는 선비의 의뭉스러움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연적이 여인 가슴과 흡사합니다. 볼록하다고 했지만 봉긋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네요. 연적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눈물방울로 묘사한 것도 절묘하지만, 선비의 페티시즘적인 취미가 더 기막힙니다. 그러니 연적은 벗이 아니지요. 연적은 숨겨놓은 애인입니다. 문방사우처럼 드러내놓고 아끼는 대상이 아니라 남몰래 정을 주는 애인, 연적이 그런 존재가 아닐는지요. 선비 취향에 억지 혐의를 뒤집어씌우는지 몰라도 연적에 은근한 속내를 실은 것은 어쩐지 쉬쉬하는 사랑의 구도와 닮았습니다.
취미는 재미삼아 하는 짓입니다. 그러니 남들이 콩팔칠팔할 수 없지요.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 ‘동냥자루도 제 맛에 찬다’고 할까요. 개살구도 맛들일 탓입니다. ‘악취미’란 말도 있듯이 취향은 천차만별입니다. 조선 화가 중에 기이한 취미를 가진 이가 많았어요.
지금 볼 남계우란 화가는 대표적인 마니아였죠. 그의 별명이 ‘남 나비’입니다. 나비에 미친 사람이었죠. 그는 숙종 때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란 시조로 유명한 영의정 남구만의 5대 손입니다. 남계우는 정삼품 벼슬을 지냈는데, 나비 그림에 관한 한 조선 최고였죠. 그가 채집한 나비는 수 백 종입니다. 처음 보는 나비를 발견하곤 그 놈을 잡으려고 십 리 길을 쫓아간 일도 있대요. 후대의 생물학자가 남계우의 그림을 면밀히 조사해보니 희귀한 열대종 나비까지 있더라고 했어요. 필드워크의 꼼꼼함을 갖춘 드문 화가였죠.
그의 작품 ‘화접도’를 볼까요. 원추리 꽃에 날아든 나비들이 멋집니다. 한 마리도 같은 게 없네요. 노랑나비와 흰나비가 위 아래에서 날고, 제비나비, 호랑나비, 표범나비가 꽃잎을 감쌉니다. 날개를 펴거나 접은 모습이 따로 있고, 나는 방향이 다르게 묘사됐습니다. 나비는 입 다문 봉오리는 쳐다보지 않고 만개한 꽃으로 몰려듭니다. 그림이 오래돼서 노란색 꽃실과 꽃밥이 잘 보이지 않지요. 가냘픈 꽃대와 꽃잎이 대신 선명합니다. 남계우의 서정성이 살아나 어여쁜 작품입니다. 나비 무늬가 세밀하고 정확해 옛 그림에서 저 정도면 하이퍼 리얼리즘에 버금갑니다. 침식을 잊고 관찰한 화가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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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우 남주원 합작, ‘화접도’, 19세기, 종이에 채색, 56.8 x 32.0cm, 개인 소장 | |
나비는 한자로 ‘접(蝶)’인데, 팔십 노인을 뜻하는 ‘질(?)’과 발음이 비슷하죠. 나비 그림은 오래 살라는 기원이 들어있지요. 원추리는 ‘망우초(忘憂草)’로 불렸죠. 근심을 잊게 하는 풀입니다. 또 봉오리는 사내아이의 고추처럼 생겼어요. 예부터 부인이 그 봉오리를 차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대요. 이래저래 기분 좋은 의미가 가득한 그림이네요.
흥미롭게도 이 그림은 남계우 혼자 그린 것이 아닙니다. 원래 네 폭 짜리인데, 그 중 한 폭에 남계우가 써놓은 글이 있지요.
‘내 아들이 그린 그림을 보니 나비 수가 좀 적은 듯하다. 그 그림에다 내가 두세 마리, 또는 서너 마리를 더하고 꽃도 손질해 넣었다. 합작인 셈이다.’ 그의 아들 이름은 남주원입니다. 부자가 함께 나비 그리는 일에 심취했으니 참 다복한 취미라고 할까요. 이 집안 취미는 내림인가 봅니다.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이 산문에 쓰기를
‘취미나 멋은 군것질에 지나지 않는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고 했어요. 좀 뜨악한 말인데, 아마 취미와 멋이 지나친 것을 경계하려 했겠죠. 취미가 편향된 쪽으로 굳어버린 것을 두고 ‘기벽(奇癖)’이라 하지요.
다음 그림 ‘탐매도’는 한 노인의 고약한 취미가 들어있는 예입니다. 그린 화가부터 알아볼까요. 술버릇 거칠기로 악명 높았던 김명국입니다. 그는 누구나 다 아는 ‘달마도’의 작가인데, 만취하지 않으면 아예 붓을 들지 않았지요. 조선 화가 중에서 그만큼 분방하게 붓을 휘두른 화가가 없습니다. 솜씨야 귀신같죠. 그가 그린 ‘달마도’는 일본인들이 환장하고 사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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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국, ‘탐매도’, 17세기, 종이에 담채, 54.8 x 37.0cm, 국립중앙박물관 | |
얘기의 초점은 김명국이 아니라 그림 속의 노인입니다. 눈 덮인 산속에서 노인이 매화를 구경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당나라 시인 맹호연입니다. 이 양반은 해마다 입춘 어름이 되면 좀이 쑤셔 못 견딥니다. 날이 매우 찬 데도 허겁지겁 행장을 꾸려 산속을 찾아가지요. 일찍 핀 매화를 먼저 감상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호취미라고요? 천만에요. 그 취미가 얼마나 유별난지 따라간 동자가 거의 죽을상입니다. 표정을 보세요. 귀가 시려 천으로 싸맸지만 연신 얼굴을 부비고 골이 잔뜩 났습니다. 술병까지 낀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발을 동동 굴립니다. 아무리 매화를 사랑하기로서니 혹한에 이 곤욕을 치러야 하는 동자는 무슨 죄가 있나요. 맹호연은 오불관언입니다. 과거에 낙방하자 댓바람에 낙향해 대문부터 잠근 그였습니다. 오로지 시 짓고 매화 보는 낙으로 살았지요. 운치를 넘어 그의 탐매(探梅)는 고질이 됐지요. 청년은 열정 때문에 취미를 바꾸고 노년은 습관 때문에 취미를 간직한다지요. 나이 들수록 취미가 완강해집니다.
고치기 힘든 취미를 ‘벽(癖)’이라 합니다. 옛글을 보면 이 벽을 기특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디다.
‘아름다운 옥일수록 흠집이 많고, 뛰어난 사람일수록 벽이 많다’고 해요. 중국의 문인 장대는 이런 글도 남겼더군요.
‘사람이 벽이 없으면 사귈 수 없다. 깊은 정이 없기에 그렇다. 사람이 흠이 없으면 사귈 수 없다. 참된 정이 없기에 그렇다.’ 그렇군요. 취미는 성품과 교양의 표현이되 옳다, 그르다 나누지 못합니다. 영국 속담이 변명합니다.
‘There is no accounting for tastes(취미는 설명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