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들이 먼저 홍보해 주는 착한 스니커즈. 2004년 프랑스에서 창업한 운동화 브랜드 ‘베자(VEJA)’에 대한 설명입니다. 베자 스니커즈 한 켤레에는 필(必)환경, 공정 무역, 노동권 보장이라는 3가지 사회적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밑창부터 안감까지 친환경 소재만을 사용하고 공정 무역을 위해 시가보다 2배 비싼 가격에 원료를 구매하며, 직원들의 권리를 중시하는 브랜드죠.
이렇다 보니 베자의 생산 비용은 운동화 한 켤레를 만들 때 드는 비용보다 약 5배 이상 높습니다. 당연히 판매 가격도 비싸지만 시장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죠. 2021년 기준 50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연 판매량은 200만 켤레에 달합니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진출하며 연예인은 물론 스니커즈 마니아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도 베자의 리뷰 영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죠.
베자를 창업한 세바스티앙 콥과 기술랭 모릴리온은 14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였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두 사람은 은행원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콥과 모릴리온은 업무에 무료함을 느꼈고,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NGO 활동가에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두 사람이 환경 보호 비영리 단체를 설립한 계기였죠. 국가별로 대기업의 사업 분야를 조사해서 친환경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베트남, 중국, 호주, 인도 등 다양한 국가의 의류 공장을 탐방하며 충격을 받습니다. 의류 생산과정에서 과도한 환경 오염이 발생했기 때문인데요. 원료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공급자들이 많다는 점과 강도 높은 근무 환경도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패션 사업의 규율을 따르지 않고도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던 그들은 평소 좋아하던 스니커즈를 주목했습니다. 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제품이자, 일상 속에서 소비자들에게 환경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기에도 적합한 수단이었죠.
두 사람은 2004년 각각 8000 달러를 대출받아 베자를 창업했고, 1년 간 제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2005년 첫 제품을 출시하는 데 성공하는데요. 친환경 원료에 공정한 값을 매겨 올바르게 생산한 베자의 첫 스니커즈였죠.
한 켤레에 담긴 베자의 환경 사랑
출처: 베자(VEJA)
동물 가죽, 플라스틱, 화학 염색약 등 신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료들이 베자에는 없습니다. 베자의 스니커즈는 생분해될 수 있는 친환경 원료로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밑창은 아마존에서 채취한 천연 고무, 겉면과 안감은 유기농 목화 섬유와 재활용 섬유로 구성되며 색상은 과일과 식물에서 짜낸 추출물로 칠해집니다.
먼저 베자 제품에 쓰이는 고무는 아마존 야생에서 재배됩니다. 아마존은 지구상에서 다수의 천연 고무 나무가 자라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죠. 베자는 아마존의 고무 생산 협동 조합으로부터 천연 고무를 거래합니다.
베자의 신발 겉면과 안감에는 브라질과 페루의 농가에서 생산한 친환경 섬유가 활용됩니다.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한 목화에서 얻어낸 섬유죠.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섬유도 함께 쓰입니다. 이 섬유는 브라질 내에서 수거된 플라스틱을 조각 형태로 압축한 후 직물 형태로 짜낸 섬유입니다.
출처: 베자(VEJA)
실제로 베자 스니커즈 한 켤레를 만들 때 3개의 페트병이 재활용된다고 합니다. 단순히 재활용에만 의미를 둔 것은 아닙니다. 통기성, 정전기 방지 등 운동화 소재에 필요한 기능도 갖추고 있죠.
스니커즈 곳곳에 쓰이는 가죽에서도 환경을 보호하려는 베자의 의지가 돋보입니다. 베자 스니커즈에 쓰이는 모든 가죽은 가죽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기관 The Leather Working Group이 인증한 친환경 식물성 가죽입니다. 크롬, 중금속, 산 등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은 가죽으로 EU의 엄격한 화학물질 관련 법규를 통과하기도 했죠.
베자의 환경 사랑은 패키지 박스에도 이어졌습니다. 첫 제품을 출시했던 2005년부터 친환경 패키지 박스를 활용했습니다. 천연 종이 소재로 만든 골판지 상자로 잉크와 인쇄의 사용량도 최소화했다고 합니다.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방지하고자 패키지 박스의 크기도 제품 사이즈에 딱 맞게 제작했죠.
2004
베자 브랜드 창립
2005
베자 첫 제품 스니커즈 론칭
2017
패스트컴퍼니 주관 ‘2017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선정
2019
파리,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 론칭
2021
50개국 진출 연 판매량 200만 켤레 달성
베자 브랜드 창립
베자 첫 제품 스니커즈 론칭
패스트컴퍼니 주관 '2017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 선정
파리,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 론칭
50개국 진출 연 판매량 200만 켤레 달성
거래를 공정하게, 일터는 올바르게
베자 유기농 섬유에 원료인 목화 재배 과정_출처: 베자(VEJA)
대부분의 기업은 원가 절감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베자는 다릅니다. 아마존과 브라질 내 거래처로부터 고무와 섬유 등을 시가보다 2배 비싼 가격에 구매합니다. 거래처가 친환경 방식으로 꾸준히 생산하려면, 공정하게 원료 값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죠.
또한 베자는 대부분의 원료 조달 과정에서 직거래를 추구합니다. 중간 유통 과정이 발생할 경우 가격이 높아지는 것에 비해 거래처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베자가 1년 단위로 원료 구매 계약을 맺는 것도 거래처들이 1년간 예상되는 수익에 맞춰 생산 비용을 조율할 수 있게끔 돕기 위함입니다.
베자 생산 과정_출처: 베자(VEJA)
베자는 거래처만큼이나 직원들의 노동권도 중시합니다. 베자의 공장은 브라질 남부 뽀르뚜 알레그리에 있습니다. 브라질 내에서도 노동법 관련 규제가 엄격하기로 알려진 곳이죠. 실제 베자의 공장은 노동 문제를 다루는 유엔의 전문 기구 ILO의 규칙을 준수한다고 합니다.
근무 환경에 대한 베자만의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의 직원들이 이용 가능한 숙소가 있고 둘째, 직원들은 정당한 임금을 보장받으며 셋째,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죠. 예컨대 앞서 소개한 베자 공장의 경우, 직원의 40%가 공장과 가까운 데 거주하고 있으며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에게는 셔틀 버스가 지원됩니다. 또한 다른 운동화 생산 업체보다 평균 20%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죠.
유행을 타지 않는 심플한 디자인
출처: 베자(VEJA)
좋은 취지로 제작된 제품이어도 소비자들이 만족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겠죠. 베자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데에는 디자인도 한몫을 했습니다.
최대한 심플하게 만든 미니멀리즘. 베자의 디자인 철학입니다. 제품을 봐도 브랜드 로고인 V와 일부 패턴이 더해진 포인트가 전부입니다. 색상도 흰색, 베이지색, 은색 등 어떤 옷에든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색상들이 대부분이죠.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랫동안, 그리고 어떤 옷에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스니커즈입니다.
실제로 베자의 제품 대부분이 출시 후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습니다. 2010년에 출시한 Esplar 라인과 2019년 출시한 Campo 라인은 지금도 베자의 스테디셀러 제품들이죠. 베자에 따르면 주요 소비 연령층은 13~30세로, 제품에 담긴 사회적 가치를 모르는 소비자들도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베자와 마르니의 콜라보 제품_출처: 베자(VEJA)
디자인이 심플하다 보니, 여러 브랜드와 콜라보 버전을 제작하기에도 적합합니다. 2022년 3월에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마르니(Marni)’와 함께 콜라보 제품을 론칭했습니다. 베자 스니커즈에 마르니의 화려한 색감이 더해진 버전이었죠. 수작업으로 제작된 해당 제품은 베자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마르니와 준비한 제품 론칭쇼에는 패션 인플루언서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셀럽들이 참여해 이목을 끌었죠.
최근 베자는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국제 비영리 단체 ‘씨 셰퍼드(SEA SHEPHERD)’와 다소 강렬한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불법 조업을 일삼으며 돌고래 등 해양 동물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경고하는 의미를 담아 올블랙 컬러에 씨 셰퍼드의 해골 모양 로고가 각인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베자가 광고하지 않는 이유
출처: 베자(VEJA)
No Ads: 광고를 하지 않는다. 베자 홈페이지에 명시된 마케팅 전략입니다. 실제로 베자는 사업 초반부터 지금까지 TV 광고를 비롯해 이렇다 할 대형 프로모션을 펼친 적이 없습니다. 베자가 밝힌 2가지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마케팅 비용이 더해지면 제품 가격이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업계 평균보다 높은 생산 비용을 감안해 이미 고가로 포지셔닝한 만큼, 제품 가격을 더 올리는 것은 베자에게도 리스크가 크죠.
둘째, 마케팅에 투입될 비용을 차라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쓴다. 스타가 출연하는 CF보다 하나라도 더 많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는 모습이 브랜드 미션에 더 맞다는 것이 베자의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베자도 마케팅에 아예 무관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2005년 신생 브랜드로서 제품을 처음 론칭했을 때는 마케팅이 더욱 필요했죠. 베자는 최대한 저예산으로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방법들을 택했습니다.
출처: 베자(VEJA)
파워 블로거와 기자들에게 브랜드를 만든 이유와 제품을 완성하기까지의 노력을 알린 것이 첫 번째 방법이었습니다. 제품에 담긴 가치와 개발 과정을 알리기에는 짧은 분량의 광고보다는 파급력이 높은 이들에게 직접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죠.
당시 베자의 스토리에 공감한 파워블로거와 기자들이 베자를 다루기 시작했고, 엠마왓슨과 마리옹 꼬띠아르 등 유명 배우들도 베자를 신은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대중에게 베자가 알려진 결정적 계기였죠.
베자는 다양한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데도 힘을 쏟았습니다. 무역 박람회에 제품을 선보이고 프랑스 내에 편집숍 등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더 많은 대중들에게 브랜드를 알리고 많은 매장과 유통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합니다. 파워 블로거와 기자들을 공략한 것처럼 소비자들과의 주요 접점에서 브랜드의 이야기를 알린 것이죠.
15년 만에 선보인 베자의 첫 매장
베자의 파리 플래그십 스토어_출처: 베자(VEJA)
2019년 베자는 마케팅 전략에 큰 변화를 줍니다. 창립 15년 만에 파리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죠. 베자가 최초로 선보인 매장이었습니다. 당시 베자의 발표문을 보면 15년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안정화시키는 데 집중하다 보니 매장을 선보일 여유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파리 플래그십 스토어는 베자에게 의미가 남다른 매장이죠.
베자는 매장에서도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베자 다운 친환경 매장을 구현했는데요. 파리의 건축사 시구에와 함께 리모델링한 플래그십 스토어는 기존 건축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기획됐습니다. 공사 과정에서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죠. 친환경 재생지를 활용해 제품 진열대를 제작하고, 전기 에너지 협동 조합인 Enercoop와 협력해 매장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는 노력도 더해졌습니다.
플래그십 스토어에 설치된 운동화 수거함_출처: 베자(VEJA)
소비자들이 환경 보호를 실천할 수 있는 코너들을 매장에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운동화 수거함이 대표적입니다. 베자 운동화를 비롯해 타 브랜드의 운동화를 넣으면 베자가 세탁, 수리 등을 대행해 줍니다. 제품의 수명 주기를 늘림으로써 자원의 낭비를 방지하려는 베자의 노력을 보여주죠. 베자에 따르면 코너 도입 후 5개월 만에 약 1000 켤레의 운동화가 수거됐습니다.
친환경 원료만을 사용해 공정하고 올바른 과정을 거쳐 탄생한 베자는 사업 초반 소비자와의 접점에서 브랜드 가치를 알리며 팬덤을 쌓고, 최근 들어 자체 매장과 다양한 콜라보 제품을 선보이며 ‘착한 스니커즈’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제품의 완성도와 사회적 가치, 그리고 이를 알리기 위한 활동들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죠. 앞으로 베자가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과 사회적 가치를 공유할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