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기술로 반도체 공정 혁신… 소부장 신화 재현 꿈꾼다

조선희 기자

입력 2024-08-12 03:00 수정 2024-08-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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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ck&Biz] 주성엔지니어링㈜
소비전력-발열 줄이고 속도 높이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
R&D에 1조 원 투자해 3130건 특허 성과… 24개는 세계 최초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광 등 ‘삼각편대’로 매출 5조 원 도전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에서 1세대 반도체 장비 회사 주성엔지니어링의 파격적 혁신 행보가 화두다. 기업을 분할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변화의 핵심은 세계 최초의 기술로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업무 효율을 혁신하고 동시에 글로벌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인적·물적 분할’과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광 장비 사업 분리’다.

이런 변화의 한가운데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이 있다. 그는 “반도체 시장을 크게 뒤흔들 신기술을 개발했지만 성과에 비하면 저평가받고 있다”며 “5년 안에 연 매출 5조 원 규모로 회사를 키울 것”이라고 했다.


국가대표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장비 기업

차세대 반도체 R&D Zone. 주성엔지니어링 제공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주성엔지니어링 R&D센터에 들어서면 1층 벽면에 붙어 있는 거대한 태극기가 방문객을 먼저 맞이한다. 가로 10.5m, 세로 7.2m 크기의 이 상징물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반도체 장비 기업’이라는 주성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건물 각 층의 회의실과 사무실 벽면에는 황철주 회장이 강조하는 혁신의 문구들이 가득하다. △목표, 방향, 우선순위가 업무 실적을 좌우한다! △혁신, 1등, 성공은 먼저 더 잘한 결과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 기술은, 가장 좋은 물리적 환경에서 가장 좋은 화학적 반응의 결과이다! 등이다. 황 회장과 직원들은 이 구호들을 매일 되새기며 ‘세계 최초, 온리원’ 제품을 만드는 데 몰입하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에는 두 번의 아침이 있다. 출근 후 오전 7시와 오후 2시다. 이 회사의 점심시간은 낮잠을 자는 시간을 포함해 두 시간이다. 구내식당 바로 옆에는 직원들이 식사 후 숙면을 하도록 배려한 패브릭 소파 약 100개가 놓여 있다. 아침을 두 번 맞으라는 의미다. 이곳에 근무하는 400명 주성엔지니어링 ‘선수’(주성은 직원을 선수라고 부름)들은 이런 근무 환경 아래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혁신 기술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창업 이후 30년의 역사를 지나왔지만 주성엔지니어링이 신생 스타트업보다 더 혁신적이고 민첩한 기업으로 수성(守成)한 이유다.

1993년 설립된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핵심 전(前) 공정 장비 분야에서 최초와 최고의 지위를 지켜왔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신성과 민첩성 덕분이다.

31년 동안 주성엔지니어링이 개발한 세계 최초 특허 기술은 24개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특허 건수는 무려 3130건(2024년 1분기 기준)에 이른다. 모두 황 회장과 주성엔지니어링 임직원이 시도한 혁신의 결과물이다.

주성은 전체 임직원 약 600명 중 R&D(연구개발) 부문 인력이 약 400명으로 67%에 달한다. 매년 매출액의 15∼20%를 끊임없이 혁신에 투자해 세계 최초·유일의 기술을 쏟아냈다. 지나온 31년간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만 약 1조 원이 넘는다.


세계화를 겨냥한 쇄신 전략은 ‘원 모어 싱’

차세대 디스플레이 R&D Zone. 주성엔지니어링 제공
세계 최초, 온리원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창사 이래 꾸준히 혁신을 시도해 온 주성엔지니어링이 올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꾀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붐으로 세계 반도체 기술이 빠르게 고도화하는 가운데 기업을 분할해 전문성을 높이고 글로벌 무역 환경의 리스크를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주성엔지니어링 경영진은 최근 반도체 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하고 디스플레이·태양광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성 측은 사업 부문의 전문화와 기업 가치 증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주력인 반도체 장비 사업과 이에 비해 실적이 비교적 떨어지는 태양광·디스플레이 장비 사업을 같이 두는 것이 회사가 저평가받는 요인이라는 분석에서다.

주성은 지난해 매출의 75.4%를 반도체 장비 사업에서 얻었고 태양광(17.7%), 디스플레이(6.9%) 비중은 이보다 현저히 작았다.

황 회장은 “반도체, 태양광, 디스플레이 3가지 사업에서 33%씩 매출을 올리는 게 궁극적 목표”라며 “앞으로 반도체만큼의 호황이 올 것으로 기대되는 태양광과 디스플레이 사업에서도 유일무이한 기술력으로 신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변화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체질을 쇄신하는 과정에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반도체 장비 사업을 보고 투자한 일부 투자자의 반발 여론도 있었다.

황 회장은 이에 대해 “사업 부문마다 성장 속도와 사업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일괄적인 경영 방식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며 “기업 분할은 글로벌 경영 리스크를 분산하는 목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금은 세계가 한미일 유럽 권역과 중국 러시아 북한 권역으로 나뉘어졌다. 원자재를 가져올 수 있는 곳이 절반으로 줄었고 판매처를 고르는 것은 두 배가 어려워졌다. 결국 사업 환경이 4배로 나빠진 것이다. 미·중 갈등 탓에 이쪽에서는 저쪽으로 팔지 말라 하니 3가지 사업 중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모두가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 혹은 중국 정부가 제재를 가할 경우 반도체와 태양광, 디스플레이가 같은 회사 안에 있으면 모든 수출이 막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어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하나가 잘못되더라도 둘은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나?”

주성엔지니어링은 분할에 앞서 지난달 18일 주주 가치 제고 목적으로 370억7768만 원 규모의 자기주식 980만891주를 소각하기로 공시했다. 이는 발행주식 총수의 2.03% 규모다. 사실상 자기 지배력을 낮추면서도 소액 주주 보호에 나설 정도로 이번 기업 분할 행보엔 황 회장의 ‘진심’이 담겼다.


파괴적 혁신으로 세계 최초 기술 24개 보유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발전설비 R&D Zone. 주성엔지니어링 제공
주성엔지니어링은 정보기술(IT) 1세대 장비 제조 기업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와 태양광 셀을 생산하는 전공정 장비를 만든다. 원자층 박막 성장 장비(ALG), 화학적 기상 증착(CVD)용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태양광 사업에 필요한 장비들이 그것이다.

신개념 플라스마 기술인 LSP(로컬 스페이스 플라스마), 공간 분할 시스템 SDP(스페이스 디바이디드 플라스마), TSD(타임 스페이스 디바이디드) 기술이 적용된 가이던스 시리즈 등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제품만 24개에 달한다. 이를 통해 지난 1분기 매출액 566억 원, 당기순이익 161억 원을 기록했다.

황 회장은 “디스플레이, 태양광 사업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수주가 시작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사업에서 반도체만큼의 호황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최근 ‘대한민국 IT 구루(권위자)’에 선정된 황 회장은 혁신의 용광로다. 31년간 단 한순간도 놓지 않은 화두가 ‘혁신’이다. 사업이 잘 풀려도 늘 칼끝에 서 있는 심정으로 혁신해왔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황 회장은 “대부분 한국의 기업들이 초기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고 ‘모방’을 통해 국산화를 이룬 뒤 세컨드 벤더(보조 공급사)에 머물러 왔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래’에서 벗어나 혁신으로 온리원 제품을 만들었고 초기 시장을 개척해 여기까지 왔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직원 채용에 있어서도 독특한 방식을 적용한다. 그는 “학력이나 근속 연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혁신의 결과를 만드는 인재를 더 선호한다”며 “스펙에 따라 인사를 하고 이에 맞춰 일하면 혁신은 언제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3-5족 화합물’ 반도체 양산 기술 세계 첫 개발

지난 30년 동안 다른 기업이 가지 않는 길을 걸었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온 황 회장은 반도체 분야에서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채비를 마쳤다.

최근 주성은 주기율표상 4족 화합물인 실리콘 대신 3족과 5족 원소를 결합한 ‘3-5족 화합물’ 반도체 양산 기술을 세계에서 처음 개발했다.

반도체의 주원료인 실리콘(Si)을 질화갈륨(GaN), 비소화갈륨(GaAs)으로 대체할 수 있는 원자층 박막 성장(ALG·웨이퍼에 원자층 박막을 여러 차례 특수 물질로 균일하게 성장) 장비가 그것이다. 공정을 초미세화하지 않고도 전자 이동 속도를 높이고 전력 사용량과 발열량은 줄일 수 있으며 동시에 반도체 구조와 회로를 단순화시킬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 공정 기술이다.

황 회장은 “섭씨 1000도 이상에서는 사파이어 기판 위에서만 가능했던 3-5족 반도체 공정을 400도 이하에서 하부 기판의 종류와 관계없이 성장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며 “이 같은 접근법을 활용할 수 있는 차세대 ALG를 개발해 반도체 양산 공정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회사들은 현재 8·12인치 같은 실리콘 웨이퍼(기판)에 더 많은 칩을 넣기 위해 경쟁하는 추세다. 이를 위해 회로의 선폭을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까지 초미세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술적 난도가 높아지고 속도가 느려지는 등 기술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주성은 실리콘 없는 반도체 양산 기술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고 이를 통해 반도체 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기존 3-5족 화합물 반도체는 1000도 이상 고온 공정에서 하부 구조와 재료의 품질이 뒷받침돼야 구현할 수 있었다. 탄소 함량이 높아 결정 결함이 많고 박막이 두꺼웠기 때문이다.

주성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낮은 온도에서 하부 재료의 종류와 무관하게 결정 결함 없이 박막 성장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 기판에 상관없이 위로 쌓을 수 있어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원가 혁신을 꾀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는 실리콘보다 더 뛰어난 반도체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미세화를 하지 않아도 고성능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3-5족 화합물을 겹겹이 성장할 수 있는 ALG 기술이 양산화되면 네덜란드 ASML만이 가지고 있는 초고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기존 실리콘 웨이퍼가 아닌 다양한 기판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황 회장은 “좁은 공간에 더 많은 미세 회로를 그려 넣기 위해 발전한 노광 기술이 극자외선인데 장비가 워낙 고가”라며 “3-5족 화합물을 ALG 장비로 여러 차례 박막을 성장시키고 반복적으로 노광을 거쳐 위로 쌓을 수 있기에 EUV를 사용할 때보다 10배 이상 원가를 절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3-5족 물질 ALG 박막 성장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과 태양광 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어 향후 전 세계 시장을 크게 뒤흔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황 회장은 “탄소 함량이 없어 10㎚ 이하 두께에서도 유리 기판에 저온으로 박막 성장이 가능해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태양광 분야로 확장이 가능하다”며 “현재 글로벌 기업들이 이 같은 혁신 기술에 큰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협업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3-5족 화합물 반도체를 활용하면 태양광발전 효율을 45%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며 고성능의 태양전지를 필요로 하는 우주선, 인공위성 등 우주항공 기술에서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존 우주항공 산업에서 사용하는 고온 공정 기반의 3-5족 화합물은 생산 단가가 너무 높아 상용화가 불가능했다. 주성은 이 같은 기술적 한계를 혁신 기술을 통해 극복했다. 이를 통해 양산 가격을 기존의 30분의 1까지 낮출 수 있게 됐으며 동시에 35% 이상 발전 전환 효율을 구현해 전 세계 에너지원의 30% 이상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시장 창출이 주성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황 회장은 “향후 AMAT, 도쿄일렉트론(TEL), 램리서치만큼 회사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3-5족 화합물’ 반도체 혁신 기술… 학계 “게임체인저 될 것”


주성이 개발한 3-5족 화합물 반도체 혁신 기술은 기존 제조 공정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게 관련 학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는 “최근 주성에서 개발에 성공한 3-5족 화합물 반도체 양산 기술은 3차원 적층 소자 제작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자 기존의 관련 소재 및 공정 분야의 상식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황 교수는 이어 “이는 450도 이하 공정 온도에서 후속 열 공정 없이 실리콘 기판뿐 아니라 비정질 기판상에서도 성공적으로 박막 성장이 가능해 향후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 소자의 스케일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를 제공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도 이번에 선보인 반도체 기술은 선단 DRAM 및 논리 소자, 마이크로 LED의 집적도 및 제조 공정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게임체인저’로 활약할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해당 기술은 차세대 디스플레이까지 확장 가능해 마이크로-LED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활약이 기대된다”면서 “특히 마이크로-LED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면 트랜지스터의 성능을 높이는 것은 물론 기존 전사 방식이 가진 높은 생산 비용을 개선할 수 있어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의 개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준신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전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장, 전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장)는 주성이 개발한 3-5족 화합물 반도체 기술은 고효율, 고출력 발전원을 저가에 대량 양산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평가했다.

이 교수는 “향후 초고효율 태양전지 양산에 적용될 경우 세계적 기술 변혁을 이룩할 수 있는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며 “특히 이 기술이 태양전지 양산에 적용될 경우 실리콘 기판은 물론 유리나 세라믹 등 저가 기판을 이용한 에피택셜(같은 결정체로 두 개의 층을 만드는 것) 성장을 구현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조선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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