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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ing:
Archive Warning:
Category:
Fandom:
Relationship:
Language:
한국어
Series:
Part 2 of 퍼시픽림 au
Stats:
Published:
2013-08-04
Words:
833
Chapters:
1/1
Kudos:
3
Hits:
201

스타트레픽림 2

Work Text:

슬몃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체콥은 그저 그 공간 자체가 신경쓰였다. 저녁은 식당에 와서 먹어,라고. 술루가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설령 지나가는 빈말이었다 하더라도 체콥은 차마 그냥 넘길 수 없었고, 그래서 결국에는 멍하니 수조들을 바라보다가 식당까지 오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체콥은 이것이 낯설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지 불쾌하지 않은 것이 놀랐다. 아니, 놀라기 이전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는 것이어서.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라도 된 양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에는 그의 말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길들임. 체콥은 단어를 발음해 보았다. 단어가 주는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에는 그 단어로 귀결되는 제 마음이 여전히 낯설다.
떨리는 손으로 식판 위에 음식을 담았다. 배급제를 따르지 않는 시스템은 많은 직원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어려운 시기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죽음의 앞에 있고 무엇보다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는 이들에게 음식 정도로 호의를 표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싸게 먹히는 거래일 것이다. 체콥은 잠시 고민하다가 오렌지 주스를 하나 올렸다. 반지르하게 기름기가 도는 크로와상이 또 하나. 조금 고민하다가 사과를 두 개. 충분할지 아닐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체콥은 규칙적으로 식사를 챙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저 두뇌에 당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면, 배고픔에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움직임이 어려울 정도가 아니면 되었다. 그래서 아무거나 손에 닿는 대로 잘 먹었다. 맛은, 그런 것은 잘 모른다. 상한 음식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서 미각은 언제나 둔했다. 얇은 오브라이트지를 입천장에 붙이고 혀에 감은 듯, 그렇게 일상으로 존재하는 둔탁한 느낌 속에 느릿느릿 무디게 미감이 스미는 것은 스스로도 달갑지 않아하는 자극이다. 체콥은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 초콜릿 바를 하나 더 식판에 올렸다. 다른 이들의 식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무게가 느껴지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데 식판 위로 요거트가 하나 내려앉았다.

“오랜만이네?”

생기 넘치는 푸른 눈이 싱글거린다. 체콥은 입술을 깨물었다.

“인사는?”

짓궂다 싶을 정도로, 그는 끈질기다. 체콥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까닥였다. 그가 웃었다. 잔물결처럼, 공기가 흔들려 주변을 달구었다. 시선이 하나, 둘. 그는 언제나 시선의 가운데 있었고, 그것을 즐기고,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체콥과는 정 반대의 남자. 체콥은 그래서 그가 어려웠다.

“한참 클 나이인데, 그거 가지고 괜찮겠어?”

음식이 그득 담긴 자신의 식판을 보여주고는 커크가 트레이 위를 살폈다. 아차, 하는 사이에 감자 샐러드, 정체를 알 수 없는 튀김, 얇은 샌드위치, 미트볼, 롤 케이크가 올라왔다. 그리고 잊었다는 듯 조금 늦게 우유가 하나. 체콥의 귓가가 붉어졌다.

“가자.”
“네?”
“밥 먹어야지.”

제멋대로 먼저 걸음을 옮기다가 돌아본다. 식판은 이제 한 손으로 들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체콥은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식판을 받쳤다.

“빨리 와.”

그가 재촉한다. 목소리가 크다. 체콥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귓등이 뜨거웠다. 체콥은 아랑곳 않고 커크가 몇 번이나 돌아보며 걸음을 옮겼다. 몇 개인가의 테이블을 지나 조금 한가한 곳을 찾아 앉은 그가 제 앞자리를 가르키며 다시 한 번 웃었다.

“저녁 먹으러 올지도 모른다고 그랬는데.”
“네?”
“실험실에서 밥 먹는거, 기분 나쁘지 않아?”

커크가 입 안 가득 빵을 밀어넣었다. 솜씨 좋게 우물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적당히 씹어 삼키는 입술이 단정하다. 보는 것 만으로도 배부르게, 라는 표현을 그대로 체화시킨 것 같은 테이블 매너. 체콥은 포크로 미트볼을 잘랐다. 커크의 포크가 감자를 가득 찍어올린다. 대부분의 파일럿은 식성이 좋다. 그들의 능력은 체력과 직결되는 것으로 언제나 체력훈련을 받고 있다보니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커크의 앞머리가 조금 젖어있다. 오늘도 변함 없는 스케줄로 트레이닝을 마치고 씻고 나온 참일 터다. 체콥은 그제야 커크의 앞에 놓인 식판이 두 개임을 알아차렸다.

“나쁘지는 않아요.”
“정말?”
“한번도, 불편하다고 생각 한 적은 없는데.......”
“그럼 지금은?”
“네?”

체콥이 눈을 깜박였다. 커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옆 식판에 놓인 샐러드에서 이파리 몇 장을 찍어다 입에 넣었다.

“지금은 불편해?”

입에 넣었던 미트볼의 맛이 희미하다. 체콥은 다시 한 번 포크로 미트볼을 눌렀다. 반 정도 남아있던 큼지막한 고깃덩어리가 으스러진다. 커크의 시선을 외면했다. 제 입안에 있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모양새. 다만 이것은 물리적인 힘으로 부수어진 것이고 제 입에 있는 것은 아밀라아제와 기타 효소와 혀의 구동으로...

“내 샐러드!”

끼어든 목소리가 제 세계로 파고들던 상념을 깼다. 체콥은 미트볼을 누르던 포크에서 반사적으로 힘을 뺐다.

“내거 먹지 말랬잖아요.”

술루가 투덜거리며 커크의 옆자리에 앉았다. 식판을 끌어당기고는 헤집어진 샐러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마구 드레싱을 뿌린다.

“늦게 와서 그렇잖아.”
“먹고 싶으면 하나 더 가져오면 될 것을.”
“원래 남의 것이 더 맛있어보이는 법이야. 그렇지 체콥?”
“벌 받을 소리. 언젠가 그러다가 밤길에 뒷통수 맞을거야. 안 그래도 에밀이 엄청 벼르고 있던데.”
“에밀?”
“누군지 모르는게 당연하죠. 캐시는 기억해요?”
“아아.”
“아아..? 정말 편리한 해답이라니까. 그렇지 체콥?”

둘의 눈동자가 동시에 체콥을 향했다. 멍하니 둘을 바라보던 체콥이 파다닥 놀라 포크를 떨어트렸다.

“너 때문에 애가 놀랐잖아.”
“또 멍청한 소리.”

술루가 마치 준비했다는 듯 새 포크를 건넸다.

“근데, 진짜 밥 먹으러 왔네.”
“아까.......”
“응, 혹시 안 올까봐 걱정되서 커크한테 먼저 가 보라고 한건데-”

슬적 제 식판으로 향하는 포크를 솜씨 좋게 막으며 술루가 웃었다.

“별로 식사하는데 도움은 안 되는 것 같다. 그치?”

체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커크가 짐짓 불만스럽게 제 몫의 샐러드를 포크로 찍어들었다. 드레싱 튜브를 건네며 술루가 짜증을 낸다.

“그거 봐. 어차피 자기 거랑 똑같이 담았으면서!”
“남의 것이 더 맛있다니까?”
“시끄러워요.”

티격태격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생각났다는 듯 술루가 체콥의 식판 위에 당근케이크를 올렸다.

“너 그거 다 먹어야 일어나는거야.”

입안 가득 국수를 밀어넣은 커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체콥은 제 식판 위를 바라보았다. 제 하루치 식사라고 해도 충분할 양의 음식에 당혹감이 밀려온다. 두 사람은 절대 밀려나지 않을 기세로 체콥을 바라보았다. 체콥은 어째서 근무처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보이는 둘이 같이 다니는 것인지 이제는 한 점 의심 없이 알 수 있었다. 결국은, 같은 부류인 것이다. 제 앞의 음식을 비워가면서 서로를 성토하는 틈틈히 어서 먹으라 재촉해대는 두 사람에 미트볼을 열심히 씹으며 체콥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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