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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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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천구를 가로질러 운동하는 태양이 만드는 물체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것을 이용한 시계이다. 최초의 해시계는 이집트 시대의 녹편암으로 만든 그림자 시계로 한쪽 끝에 세운 가로대와 직선형 받침대로 구성되어 있다. BC 300년경 바빌로니아에는 베로수스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형·반원형 해시계가 있었다. 석재나 목재로 제작된 이 기구는 구멍이 파인 직6면체이고 반구의 중심에 지시침이나 바늘이 고정되어 있다. 베로수스의 해시계는 수세기 동안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기하학을 이용하여 매우 복잡한 해시계를 발명·제작했다. 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는 시간선이 새겨진 원뿔형 단면을 이용한 반원형 해시계를 개발했다. 14세기 초반 기계식 시계가 출현하자 등분시를 나타내는 해시계는 점차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천구를 가로질러 운동하는 태양이 만드는 물체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것을 이용한 시계이다(기술). 낮 시간을 나타내는 최초의 장치는 BC 3500년경에 생긴 경절형(磬折形) 해시계로 여겨진다.

해시계

해시계, 세중옛돌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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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계는 수직으로 세운 막대나 기둥 때문에 생기는 그림자의 길이로 한낮의 시간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다. BC 8세기경부터는 좀더 정밀한 장치가 사용되었다. 최초의 해시계는 이집트 시대로부터 유래된 녹편암(綠片岩)으로 만든 그림자 시계이다.

이것은 한쪽 끝에 세운 가로대와 직선형 받침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받침대는 6개의 시간대로 분할된 눈금이 새겨져 있고, 동서방향으로 놓여 있어서 가로대의 그림자가 아침에는 동쪽을 향하고 오후에는 서쪽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 받침대 위에 새기는 가로대의 그림자가 시간을 나타낸다. 이런 종류의 시계는 이집트의 미개지역에서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또다른 초기의 장치는 BC 300년경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인 베로수스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형·반원형의 해시계이다.

석재나 목재로 제작된 이 기구는 구멍이 패인 직6면체이다. 이 반구의 중심에 지시침이나 바늘이 고정되어 있다. 바늘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경로는 거의 원호를 그리게 되며 원호의 길이와 위치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적당한 개수의 원호가 반구의 내부면에 새겨져 있다. 각 원호는 12개로 동일하게 분할되어 있어서 일출에서 일몰까지를 나타내는 12개의 눈금은 동일한 간격으로 되어 있다.

계절에 따라 낮의 길이가 변하기 때문에 이 시계로 표시되는 시간 역시 계절에 따라서, 심지어는 매일 길이가 변하므로 결과적으로 일시적인 시간만을 알려주게 되었다(시).

베로수스의 해시계는 수세기 동안 널리 사용되었고 아라비아의 천문학자 알 바타니(858경~929)에 따르면 이슬람교 국가에서는 10세기에도 이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은 상당히 발전한 기하학을 이용하여 매우 복잡한 해시계를 발명·제작했다.

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BC 250경)는 시간선이 새겨진 원뿔형 단면을 이용한 반원형 해시계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이전에 개발된 것들보다 훨씬 정확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수평면에 대하여 다양한 각도로 기울어질 수 있는 평판 위에 그림자가 투사되는 장치인 아날레마를 사용했다. 이것은 그리스인들이 일시적인 시간을 알려주는 수직형·수평형·경사형 해시계가 포함된 기구를 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BC 100년 경부터 전해내려오는 아테네의 8각형으로 된 '바람의 탑'에는 8개의 해시계가 있는데, 이것은 8개의 중요한 곳을 향하고 있는 해시계가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되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로마인들도 일시적인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를 사용했다. BC 290년 로마에 설치된 최초의 해시계는 샘나이트에서 노획한 것이고, BC 164년에 이르러서야 시민들을 위한 해시계를 제작했다.

로마의 건축가이자 공학자인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BC 1세기)는 그의 〈건축십서 De architectura〉란 저서에서 여러 종류의 해시계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그중 몇 가지는 휴대용이었다. 아랍인들은 해시계의 원리와 설계를 그리스에서 들여와 열심히 연구했다. 그들은 사용가능한 해시계의 종류를 늘리고 동시에 3각법원리를 이용해 설계와 제작공정을 간소화시켰다. 13세기초 아부 알 하산은 원통형·원뿔형 등 다양한 표면에 시간선을 만드는 것에 대해 기술했고, 최소한 천문학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등분시를 보급한 것으로 여겨진다.

14세기 초반에 기계식 시계가 출현하자 등분시를 나타내는 해시계는 점차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의 해시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해시계의 유물은 1930년 경주의 성곽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해시계로, 반지름 33.4cm 정도인 화강암 재질의 원반형이다. 여기에는 자시부터 묘시까지의 부분이 남아 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체로 6~7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해시계에 대한 공식기록은 〈세종실록 世宗實錄〉 세종 19년(1437) 4월 갑술조에 처음으로 보인다. 이 때 제작된 해시계로는 앙부일구·현주일구·천평일구·정남일구와 규표가 있다. 그중 앙부일구는 반구형으로 네 발이 달리고 솥처럼 생겨 '앙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사 元史〉 천문지의 앙의에 있는 곽수경법에 의해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져 조선말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해시계로는 공중용으로 설치해놓은 것과, 작게 만들어 휴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현주일구는 시표가 시판[時盤]에 수직이 되도록 기둥에 추를 매달아 십자의 중심에 걸리도록 한 것으로, 방향을 알 수 있도록 지남침을 설치하고 당시 시제에 의한 백각의 원판을 사용했다.

천평일구는 현주일구에서 현주장치를 빼고 수평을 만들기 위한 원지를 둔 것으로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모두 휴대용이다. 정남일구는 아주 정밀한 해시계로 현주일구와 천평일구에 간의의 특징까지 합친 것이다. 정남일구는 규형으로 해그림자를 재어 정남방향을 알 수 있도록 했다. 규표는 땅에 수직막대를 세우고 그 그림자의 길이를 재서 시간과 계절을 아는 장치이다. 수직막대를 표(表)라고 하며, 표 아래 끝에 붙여서 수평으로 북쪽을 향하여 누인 자를 규(圭)라 한다. 세종 때는 8척에 이르는 규표를 만든 바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를 거치면서 많은 천문의기를 잃어버렸다. 그후 1636년(인조 14)에 이르러 명나라의 이천경이 시헌력법에 의해 만든 신법지평일구가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이 시계는 앙부일구를 평면 위에 만든 것과 같은 구조인데, 그후 휴대용으로도 응용되었으며 현재 여러 개의 유물이 남아 있다. 한편 1785년(정조 9)에는 독특한 해시계인 간평일구와 혼개일구가 제작되었다. 이 시계들에 대해서는 남병철의 〈의기집설 儀器輯說〉에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간평일구는 앙부일구를 그대로 평면에 찍어놓은 것과 같은 것으로, 서양인 웅삼발의 〈간평의설 簡平儀說〉에 의거하여 제작한 것이다. 혼개일구는 명의 이지조(李之藻)의 〈혼개통헌도설 渾蓋通憲圖說〉을 기준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이 두 시계로 13가지의 천문현상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밖에 강윤의 휴대용 평면일구가 있으며, 한말에 이르러서는 서양 신과학의 영향을 받아 시판에 아라비아 숫자를 적어놓은 해시계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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