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펨브룩

다른 표기 언어 William Marshal 1st earl of Pembroke
요약 테이블
출생 1146경
사망 1219. 5. 14, 잉글랜드 버크셔 캐버셤
국적 잉글랜드, 영국

요약 잉글랜드 군 최고사령관이며 섭정.
William the Marshal이라고도 함.

국왕의 고문이자 대행자이며 용감한 전사로 잉글랜드 왕 4명을 섬겼다. 그의 아버지 존(피츠길버트, 1165 죽음)은 스티븐 왕(1135~54 재위)을 폐위시키고 왕의 사촌인 마틸다(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5세의 미망인이며 잉글랜드의 왕 헨리 1세의 딸)를 즉위시키기 위해 싸웠으나 실패했다. 윌리엄은 전투와 마상시합에서 훌륭한 솜씨를 보여 헨리 2세(1154~89 재위)의 맏아들 헨리 왕자의 후견인이 되었다(1170).

1183년 왕자가 죽자 그는 4년 뒤 다시 헨리 2세를 섬기게 되었으며 1189년에 왕이 죽을 때까지 그를 보좌하며 프랑스에서 싸웠다. 윌리엄은 헨리 왕의 셋째 아들인 사자심왕 리처드 1세(1189~99 재위)가 즉위한 뒤 펨브룩 백작 리처드 드 클레어의 상속녀 이자벨과 결혼해 잉글랜드·노르망디·웨일스·아일랜드에 있는 방대한 영지를 갖게 되었다. 1190년 리처드 왕은 윌리엄 롱챔프에게 나라를 맡기고 십자군원정에 나섰다. 이듬해 펨브룩은 롱챔프를 추방한 반대파에 합세했고 왕이 독일에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1192~94) 왕의 동생 존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힘썼다.

1199년 리처드 1세가 죽자 그는 존이 평화적으로 왕위에 오르도록 도왔으며 정식으로 펨브룩 백작이 되었다. 1213년경에는 존 왕의 가장 가까운 고문이 되었고, 대헌장 서명에 앞장선 봉건귀족들과 분쟁이 있었을 때도 여전히 왕에게 충성했다. 그뒤 존은 귀족들이 프랑스 카페 왕조의 루이(뒤의 프랑스 왕 루이 8세)를 왕으로 불러들여 일으킨 내란의 와중에 죽었다. 펨브룩은 존 왕의 아들 헨리 3세를 위한 '왕과 왕국의 관리자'(rector regis et regni)로 임명받아 잉글랜드 귀족들과 프랑스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1217년 9월 루이와 조약을 맺어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을 사면했다. 그에 대해서는 토머스 레키 자먼(1930)과 시드니 페인터(1933)가 쓴 전기가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정치가

정치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펨브룩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