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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후기 및 현대 영어 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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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프역본들

飜譯이라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영어 번역 성서는 '위클리프 역'(Wyclif's Version : 1382)이다.

이것은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성서이다. 영국에 그리스도교가 들어간 지 1,000여 년 만에 번역된 것이다. 그는 일반신도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성서를 번역했다. 그를 일컬어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와 함께 번역한 사람으로는 허포드의 니콜라스가 있다. 니콜라스는 〈구약성서〉 번역을 맡았으나 후에 추방되었다. 위클리프는 1380년에 〈신약성서〉를 번역했고,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완역은 1382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인쇄된 성서가 아니고 손으로 쓴 성서이다. 후에 J. 퍼비가 '위클리프 역'을 전체적으로 개역했다(1388). 위클리프는 1384년에 죽었다. 그러나 44년 후인 1428년에 그가 성서를 번역했다는 이유로 그의 묘가 파헤쳐지고 그의 시신이 화형당했다. 위클리프가 번역한 성서는 나온 지 33년 후인 1415년에 불태워지고 말았다. 당시 교회는 신도들이 성서 읽는 것을 금했었다. '위클리프 역'의 단점으로는 그것의 번역 대본이 성서 원어인 히브리어나 그리스어가 아니라 라틴어 불가타였다는 점, 이미 낡은 번역이었다는 점, 고어투성이었다는 점, 독자를 별로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윌리엄 틴들의 역본

윌리엄 틴들은 먼저 〈신약성서〉 번역에 착수하여 1525년 쾰른에서 그것을 인쇄하여 4절판으로 출판했다.

보름스로 쫓겨간 다음 그곳에서 신약을 8절판으로 출판하여 3,000부를 몰래 영국으로 들여 보냈다. 일반신도들은 그것을 읽으려고 샀고, 워럼 대주교는 불태워버리려고 그것을 사들였다. 〈신약성서〉 번역을 마친 틴들은 곧바로 〈구약성서〉 번역에 착수하여 1530년 히브리어 성서에서 번역된 모세5경이 나온다. 그의 친구 G. 조이가 〈구약성서〉의 나머지 부분을 번역했는데, 〈시편〉에서 〈애가〉까지만 히브리어 성서에서 번역했고, 〈이사야〉는 라틴어 역에서 번역했다.

'틴들 역 교정본'이 1535년에 나왔지만 아직 〈구약성서〉는 완역되지 않았다. 드디어 1536년 10월 6일 틴들은 교살되고 화형당했다. 틴들은 7개 언어에 능통했으며 특히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문장과 문체에도 유능한 학자였다. 1611년에 나온 '제임스 왕 역본'의 80%가 틴들의 문체라고 한다. 그의 평생 목표는 평신도들에게 그들이 읽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번역된 성서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마일스 커버데일의 번역본

1535년 10월에 나온 최초로 인쇄된 영어 성서이다.

번역자 마일스 커버데일은 함부르크에서 틴들을 알게 되었다. 그의 번역은 유럽 대륙 취리히에서 인쇄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것을 헨리 8세에게 봉헌했으며, 독일어 역과 라틴어 역 성서를 번역했다. 틴들의 〈신약성서〉와 모세5경도 참고했다고 한다. 커버데일 역은 틴들의 번역에 크게 의존하면서 아직 틴들이 완성하지 못한 부분을 독일어 역과 라틴어 역에서 거듭 번역하여 완성시켰다.

토머스 매튜 역본(1517)

틴들 역의 또다른 교정판이다.

1517년 유럽 대륙 안트웨르펜에서 인쇄된 것으로 생각된다.

큰 성서(La Grande Bible : 1539)

커버데일이 맡아서 펴낸 것으로, 틴들-토머스 매튜 역본(1537)의 재교정판이다.

이것을 '큰 성서'라고 하는 까닭은 판형이 유난히 컸기 때문이다. 1539년에 완성되어 성직자들에게 배포된다.

제네바 성서(1560)

틴들의 번역 성서가 나오면서 1525~39년은 성서의 번역과 개역이 활발하던 기간이었다.

왕실 쪽에서의 묵인이 이런 번역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헨리 8세 때부터 가톨릭 쪽의 압력으로 번역이나 개역이 금지되기 시작한다. 틴들의 이름으로 된 성서 번역은 모두 금지되었고, 노동자나 여성은 성서를 읽는 것이 금지되었다. '큰 성서' 외에는 모든 성서가 금지되었고, '큰 성서'도 상류계급 사이에서만 읽혀졌다. 1547년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개신교도인 에드워드 6세가 즉위하자 일반 백성에게 성서를 보급하고 개방하는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당시 대주교였던 크랜머가 이 일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자 타국으로 떠났던 종교개혁자들도 귀국했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치세 기간이 짧았고, 그의 뒤를 이은 메리 여왕은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과 성서학자들이 약 300여 명이나 순교했다. 대주교 크랜머도 이때 순교했다. 커버데일은 유럽 대륙으로 피신하여 제네바로 갔다. 제네바는 신학자 테오도르 베자와 장 칼뱅의 고향이다. 칼뱅의 동서였던 윌리엄 위팅엄이 존 녹스에 이어 제네바의 잉글랜드 교회 후계자가 되었는데, 바로 이 사람이 '제네바 성서' 발행에 가장 책임이 컸던 인물이다.

제네바 성서는 1560년에 완역되었다. 이 성서가 나오기까지 위팅엄을 도왔던 인물이 바로 커버데일 역을 냈던 커버데일이다.

제네바 성서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영어 성서로서는 처음으로 절 구분이 되었다는 점인데 로베르 에티엔이 그의 그리스어 〈신약성서〉에 적용했던 절 구분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제네바 성서는 큰 성서의 교정판이다. 틴들의 공헌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구약은 히브리어 본문과 라틴어 역 본문에 따라 철저히 교정된 것이다.

〈신약성서〉는 주로 틴들 역의 교정이다. 이 성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봉헌되었다. 엘리자베스는 1558년에 즉위했고, 개신교 편을 강하게 들던 왕이었다. 제네바 성서가 당시 교회에서 '큰 성서'를 대신하지는 못했지만, 일반신도들 사이에서는 널리 유포되었다. '감독성서'(1568)가 나올 때까지 이 두 성서가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제임스 왕 역본이 나올 때까지 제네바 성서는 140여 회나 판을 거듭하면서 출판되었다. 올리버 크롬웰 장군과 그의 군대가 바로 이 성서를 읽었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신대륙 북아메리카로 간 청교도들, 존 버니언, 셰익스피어, 심지어는 '제임스 왕 역본'을 낸 제임스 왕도 바로 이 제네바 성서를 읽었다.

제네바 성서의 〈신약성서〉는 1557년에 나왔으며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다 번역되어 나온 것은 1560년이다. 이것이 로마자로 인쇄되고 절 구분이 된 최초의 영어 성서인 제네바 성서 초판이다. 로렌스 톰슨(1539~1608)이 1576년에 제네바 성서의 신약을 교정하여 내놓았다. 주로 베자의 라틴어 역 〈신약성서〉(1565)와 비교하여 교정했는데, 이 교정도 1615년까지 45판이나 판을 거듭했다.

이것을 흔히 제네바 톰슨 성서라고 한다. 톰슨이 교정한 제네바 성서를 유니우스(1545~1602)가 계속 교정하여 1592, 1863, 1596년에 나왔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인 유니우스가 〈요한의 묵시록〉의 주석을 내면서 제네바 톰슨 성서의 묵시록 부분을 교정하여 〈요한의 묵시록〉 교정을 합친 제네바-톰슨-유니우스 성서가 1603, 1606, 1607년에 출판되었다.

감독성서

교인들 사이에서는 제네바 성서가 읽히고, 교회의 강단에서는 '큰 성서'가 읽히고 있었다.

제네바 성서의 우수성을 잘 알고 있던 대감독 파커는 '큰 성서'를 교정하여 기존의 두 번역성서를 대치하고자 했다. 교정 작업에 대거 참석했던 이들이 감독들이었으므로 이것을 감독성서라고 부르게 되었다. 〈구약성서〉 본문은 제네바 성서 그대로이고, 〈신약성서〉 본문은 파커 대감독 자신이 많이 교정했다.

두에랭스 성서

(1582/1610)로마 가톨릭 측에서 번역해낸 일상어역이다.

프랑스 랭스의 앨런 추기경이 시작했고, 본격적 작업은 두에대학교 히브리어교수였던 그레고아르 마르탱이 맡았다. 〈신약성서〉가 1582년에 나왔고, 〈구약성서〉도 곧이어 완역되었으나 출판 비용이 없어서 지연되다가 대학이 랭스에서 두에로 옮긴 뒤인 1609~10년에 출판되었다. 그래서 〈신약성서〉는 랭스 〈신약성서〉로 알려졌으나, 〈구약성서〉·〈신약성서〉는 두에 성서로 불린다.

제임스 왕 역본(1611)

엘리자베스의 오랜 통치가 1603년에 끝났다.

여왕이 통치하는 동안에는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이 크게 진전되었다. 1604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영국의 제임스 1세로 등극했다. 즉위하던 첫해 그는 원전에 근거한 새로운 성서 번역을 지시했다. 1604년 6월 30일 제임스는 학자 54명을 임명하여 새 번역에 참여하게 했다. 현존하는 기록에는 실제로 번역에 참여한 학자가 49명으로 나온다. 모두 6개 반으로 나뉘어 4개 반은 구약을 번역했고 2개 반은 신약을 번역했다.

웨스트민스터 1반은 5경을 포함하여 〈역대기 상〉까지, 케임브리지 1반은 〈역대기 하〉에서 〈전도서〉까지, 케임브리지 2반은 외경 나머지와 므나쎄의 기도까지, 옥스퍼드 1반은 예언서를, 옥스퍼드 2반은 복음서·〈사도행전〉·〈요한의 묵시록〉을, 웨스트민스터 2반은 나머지 서신을 번역했다.

번역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1611년에 번역이 완성되었다. 70인역 이후 2번째로 왕의 지원으로 번역된 성서이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된 것이지만, 틴들과 커버데일 번역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라틴 역본, 랭스의 신약, 루터의 독일어 역 성서의 영향도 받았다.

1611년 이 번역본이 나올 때 'He'판과 'She'판, 2가지 판으로 나왔다.

이것은 일부러 2가지 판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쇄자의 오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룻기〉 3장 15절 끝에 성 안으로 들어간 사람을, 보아스로 보아서 "He went into the city"라고 한 인쇄본과, 룻으로 보아서 "She went into the city"라고 한 인쇄본 때문에 본의 아니게 He판과 She판이 생긴 것이다. 한국어 개역 성서의 본문은 "(보아스가) 보리를 6번 되어 룻에게 이워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라고 하여 He판의 이해를 따르고 있고, 난외주(欄外註)는 시리아어 역 페시타와 라틴어 역 불가타를 따라 "이워주니 그가(룻이) 성으로 돌아가니라"라고 번역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She판의 이해를 따른 것이다. 1631년판에는 아주 치명적인 오기가 생겼는데, 이 오기 때문에 '악한 성서'(Wicked Bible)라는 별명이 생겼다. 〈출애굽기〉 20장 14절 "간음하지 못한다"가 not이 빠져서 "간음 할지니라"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인쇄소는 이것 때문에 당시 300파운드의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1717년판에는 〈루가의 복음서〉 20장의 머리제목의 포도원(vineyard)이 초(vinegar)로 잘못 인쇄되어, 그만 '초 성경'(Vinegar Bible)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비록 왕의 후원으로 번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으며, 거의 40여 년 동안이나 반대자들과 싸워야 했다.

또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때 사용된 원본이 그다지 좋은 사본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1611년 발간된 이래 1615, 1629, 1638, 1654, 1701, 1762(케임브리지 성서), 1769년(옥스퍼드 성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영어 개역 성서(English Revised Version : 1881/85)

제임스 왕 역본의 본격적 개정작업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제임스 왕 역본의 〈신약성서〉가 대본으로 사용한 그리스어 사본은 아주 빈약한 것이었고, 그후 새로이 권위있는 사본들이 발견되었으므로 개역의 필요성이 고조되었다. 1870년에 개역에 착수하여 1881년 〈신약성서〉 개역이 나왔다. 영국에서는 그해 5월 17일, 미국에서는 3일 후에 같은 〈신약성서〉를 출판했다. 제임스 왕 역본에서 거의 3만 여 곳을 고쳤다. 그중에 5,000여 곳은 제임스 왕 역본이 사용한 사본과 영어 개역 성서가 사용한 사본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약성서〉가 나온 것은 1885년이었으며 〈신약성서〉에 비해 개정범위가 좁았다.

미국 표준역 성서(American Standard Version)

영어 개역 성서가 제임스 왕 역본의 영국 개정판이라면, 미국 표준역 성서는 미국 개정판이다.

1900년에 〈신약성서〉가 나오고, 1901년에 〈구약성서〉가 나왔다. 이때 외경은 제외되었으며, 영국식 영어 표현들이 미국식 영어표현으로 바뀌었다.

개역 표준 성서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1901년에 나온 미국 표준역 성서의 개정판이다.

1928년 미국교회협의회 그리스도교 교육부가 미국 표준역 성서에 대한 판권을 갖게 되면서, 번역 본문에 대한 보호를 더욱 철저히 하게 되었다. 1937년 그리스도교 교육부에서는 미국 표준역 성서를 개정할 것을 결의하고 작업을 시작한 결과 1946년에 〈신약성서〉 개정판을 출판하고, 1952년에 〈구약성서〉 개정판을 출판했다. 이것이 바로 개역 표준 성서이다. 20여 개 대학과 신학교에 적을 둔 32명의 성서학자들이 작업을 맡았으며, 그중에는 유대인 학자도 1명 있었다.

1957년에 개정판이 나올 때 외경도 번역되어 나왔는데, 이것은 성서 번역에서 사해 두루마리 이사야를 반영시킨 최초의 번역이기도 하다.

유대교 영어 역본들

영어권에 살던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제임스 왕 역본과 영어 개역 성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유대교인들로서는 그리스도교 쪽에서 번역한 이런 성서들을 사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히브리어 본문 전승이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것, 〈구약성서〉에 대한 유대교적 해석과는 전혀 다른 번역, 〈구약성서〉의 몇몇 절들에 대한 그리스도론적인 해석들이 그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그리하여 미국에 있는 유대교 출판협회가 1955년에 유대교 학자들로 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번역에 착수하여, 율법서(1962)·예언서(1978)·성문서(1982)를 출판했고, 1985년에 개정판을 출판했다(미국 유대인 출판협회).

새 영어 성서(New English Bible : 1961, 1970)

기존 번역의 개정이 아닌, 철저한 새 번역이고, 영국식 영어 번역이다.

또한 전통적인 성서식 영어가 사라진 번역이다. 1946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1961년에 〈신약성서〉를, 1970년에 〈구약성서〉를 출판했다. 1970년에 완역이되어 나온 성서는 1주일 만에 3만 3,000부가 매진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 역본들

가톨릭 쪽에서는 20세기 전반부까지는 두에랭스 성서를 사용했으나, 중세기 후반부터는 독자적인 번역본을 갖게 되었다.

R. 녹스가 번역한 〈신약성서〉(1945)와 〈구약성서〉(1949)가 나왔고, 1955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1936년에 그리스도교 교리협회에서 새 번역 계획을 세워 라틴어 불가타 역을 대본으로 〈신약성서〉를 번역했다(1941). 그러나 1943년 교황청 성서위원회가 라틴어가 아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 성서를 대본으로 하는 새로운 번역을 계획하여, 협회번역(Confraternity Version)이 나오게 되었다(1952/61). 이것이 나중에 새 미국 성서(New American Bible)가 되었다.

구어체 성격의 또다른 역본인 예루살렘 성서(Jerusalem Bible : 1966)는 프랑스어판 예루살렘 성서(La Bible de Jerusalem : 1956)를 대본으로 번역한 것이다.

현대 영어 성서(Today's English Version : 1966/76)

복음 성서(Good News Bible)라고도 한다.

미국 성서공회가 구어체 영어로 번역한 것으로, 번역원칙상 전통적인 형식일치의 문자적 번역을 피하고, 내용일치의 의역을 시도했다. 1966년에 〈신약성서〉가 나왔고, 1976년에 〈구약성서〉가 나왔으며, 1979년 외경이 번역되었고, 1992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새 국제역 성서(New International Version : 1973/78)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영국·아일랜드·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의 개혁교회가 연합하여 번역했다.

1973년에 〈신약성서〉가 나왔고, 1978년에 〈구약성서〉가 나왔다. 발행자와 판권 소유자는 뉴욕 국제성서공회(New York International Bible Society)로 되어 있다. 전통적 어법과 표현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본문비평의 결과를 번역에 많이 반영시킨 것이 특징이다. 〈구약성서〉 중에서 특히 〈사무엘〉과 〈이사야〉 등에는 사해 두루마리 사본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새 제임스 왕 역본(New King James Version : 1979/82)

1611년에 나온 제임스 왕 역본을 현대화한 것이다.

신개역 표준 성서(New Revised Standard Version : 1989)

미국에서 나온 개역 표준 성서의 새로운 개정판이다.

1974년에 개정 작업이 시작되어 1989년에 출판되었다. 30여 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개정위원회에는 가톨릭 학자 6명과 동방정교회 소속학자, 유대교 학자도 각각 1명씩 있었다. 〈구약성서〉의 경우는 사해 두루마리 사본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개역 영어 성서(Revised English Bible)

영국에서 나온 새 영어 성서의 새로운 개정판이다.

1989년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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