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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서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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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서양에서는 정치·사회 면에 끊임없는 분란과 폭력이 자행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르네상스는 새로운 과학과 철학사상의 전파에 필수적인 수용적 환경을 조성했다. 존 던에서 존 드라이든에 이르는 이 시기의 진지한 작가들이 당면했던 큰 문제는 미셸 드 몽테뉴가 제기한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Que Sais-je?) 라는 물음이었다. 이것은 더 넓은 의미에서는 종교·형이상학·윤리학·정치학·경제학 및 자연과학의 권위를 비롯해 지식·신앙·이성의 근거와 상호관계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이 시대를 특징짓는 그러한 탐구적 태도는 프랑스에서 데카르트의 〈방법론 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1637)과 파스칼의 〈팡세 Pensées〉(1657~58 집필), 영국에서 베이컨의 〈학문의 진보 Advancement of Learning〉(1605)와 홉스의 〈리바이어선 Leviathan〉(1651) 등 당대의 위대한 과학자와 철학자의 저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저술의 중요성은 회의주의적·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을 과학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신학 논쟁 및 이해와 인식이라는 일반적인 문제에까지 적용시킨 데 있다. 사상과 언어에 대한 이같은 근본적인 도전은 인간의 자화상에 심각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20세기의 대표적인 시인 T.S. 엘리엇이 '감수성의 단절'이라고 한 것에 반영되었다. 엘리엇은 감수성의 단절이 청교도 혁명(1642~51) 이후 영국에 뿌리를 박았으며 이로써 '어떤 경험이건 탐식'할 수 있었던 엘리자베스 시대와 제임스 1세 시대의 작가들과는 대조적으로 후대의 영국 시인들은 사고하면서 느끼는 통일된 감수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17세기 초기와 중기에 일어난 사회적·정치적 격변의 엄청난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7세기의 영국 문학사는 1642년 극장폐쇄를 몰고온 청교도혁명(1642~49)과 1660년 왕정복고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 의해 양분된다. 프랑스 문학사 역시 자기들끼리 피 흘린 프롱드 당의 내란(1648~53)에 의해 양분되었으며, 희극작가 몰리에르·라신·부알로 및 라 퐁텐이 활동한 프랑스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가 뒤를 이었다.

독일에서의 17세기 전반기는 30년전쟁(1618~48)의 종교적·정치적 싸움에 의해 지배되었고, 그후에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궁이 누린 중앙집권 체제와 영화에 뒤지지 않으려는 독일 군주들의 온갖 시도로 얼룩졌다. 네덜란드도 17세기 전반에는 스페인에 대항한 독립투쟁인 80년전쟁(1568~1648)에 휘말렸는데, 전쟁의 승리로 독립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헨리크 슈피겔, 다니엘 하인시우스·헤르브란트 브레데로가 활동한 네덜란드 시의 '황금기'를 맞았다.

17세기 전반을 지배한 내란과 정치적·종교적 갈등은 여러 모로 반(反)종교개혁의 성격을 드러냈고, 종교분쟁의 양상은 문학작품의 양식과 관심사에 반영되었다.

이에 대한 반동의 하나로 특히 이탈리아·독일·스페인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미술과 문학에 이른바 바로크 양식이 유행했다. 이 양식은 이탈리아의 잠바티스타 마리노, 스페인의 루이스 데 공고라, 독일의 마르틴 오피츠 등의 작품에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바로크 문학은 오랫동안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퇴폐적이라고 여겨져왔으나 오늘날에는 좀더 호의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정교성·미사여구·우화·수사 및 대담한 꾸밈새의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양식을 뜻하는 용어로 이해된다.

바로크 문학이 이 기간의 이탈리아와 독일의 특산물이었다면 17세기 전반기 영국 시의 주종을 이룬 것은 '형이상파' 시였다(형이상파 시인). 드라이든이 존 던의 시에 처음으로 적용한 이 용어는 연애시를 논하면서 "존 던이 형이상학을 너무 즐겨 쓴다"고 한 데서 유래했고, 새뮤얼 존슨 박사에 의해서 그 뜻이 확대되었다.

18세기의 시인·사전편집자·비평가인 존슨은 〈영국 시인들의 생애 Lives of Poets〉의 〈카울리 론〉에서 형이상파 시인의 특징은 학식의 지나친 과시라고 지적하고, 그들의 위트는 '조화로운 부조화', 즉 동떨어진 이미지의 조화라고 했다. 지금은 각각의 문체가 완연히 다르더라도 바로크 문학과 일정한 유사성이 있고, 복합적인 비유적 묘사와 기발한 착상 같은 시적 특성이 보이면 형이상파 시인의 범주에 넣는다.

가장 대표적인 시인은 존 던 외에도 앤드루 마블, 종교시인 조지 허버트, 리처드 그래쇼, 헨리 본 등이 있다.

17세기 문학에서 가장 특징적인 논쟁은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을 모방해 계속 발전시키려는 경향이 과학·철학의 새로운 사상가들과 문학의 새로운 실험가들이 지닌 열망과 충돌하면서 빚어진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문학의 주제와 문체를 그리스·라틴의 고전에서 본떠야 한다는 고전파와 프랑스 고유의 전통을 따라야 한다는 근대파의 갈등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에서는 미사여구·라틴어체·고전 등을 선호하는 파와 좀더 간결하고 심오한 경구조의 문체를 옹호하는 파 사이에 이와 유사한 갈등이 있었다(콘셉티스모). 이러한 갈등은 과학과 탐험의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산문체를 예고했다. 그결과 프랑스의 근대파는 대체로 데카르트의 추종자가 되었고, 영국에서는 왕립학회가 밀턴과 드라이든의 위대한 산문체를 본받아 논리 전개에 적당한 단순하고 현실적인 화법을 권장한 사실에서 이와 비슷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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