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물리과학의 기원

다른 표기 언어

개요

물리과학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합리적 유물론까지 거슬러올라간다.

BC 6~5세기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애니미즘(자연물·자연현상·우주에 영혼이 있다는 믿음)을 거부하고 세계를 보통의 관찰가능한 자연적 현상으로 설명했다. 이들은 어떻게 혼돈에서 질서가 나왔는가, 이 세계의 다양성의 근원은 무엇인가, 운동과 변화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형상과 질료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 과학의 기초가 되는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설명은 이후 2,000여 년 간 서구과학의 토대가 되었다.

고대 이집트, 서남 아시아, 그리스의 천문학

서양 천문학의 기원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1년을 12달, 365일로 나누어 12달이 있는 달력을 만들었으며, 이는 이후 천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약 BC 1800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은 천문학적 현상에 대한 정확한 예측에 관심을 두었으나, 기하학의 모형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BC 5세기)은 우주가 본질적으로 수학적이라고 믿었으며, 우주의 중심에 불기둥이 있고 그 주위를 태양·지구와 같은 천체들이 돌고 있다고 믿었다.

이는 우주에 대한 최초의 물리적 모형이었다. 플라톤(BC 4세기)은 천문학자들에게 등속 원운동만을 사용해서 천체의 운동을 정확히 예측하는 이론을 만들라고 종용했다. 에우독소스(BC 4세기)는 동심구(同心球)의 조합으로 우주의 운동을 설명하는 모형을 만들었다.

에우독소스의 체계에서 각 행성은 4개의 동심구를, 태양과 달은 3개의 동심구를 필요로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에우독소스의 구를 천체의 작동을 나타내는 실재로 받아들여서 우주는 지구를 55개의 천구가 마치 양파처럼 둘러싸여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심구 이론은 행성과 지구의 거리가 변하는 것과 최대이각(금성과 태양이 이루는 최대각은 48°, 수성과 태양은 24°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헤라클레이데스는 금성과 수성은 지구가 아닌 태양의 주위를 돌며, 태양과 나머지 행성은 지구의 주위를 돌고, 지구는 하루에 1번씩 자전을 하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 이외의 영향은 미미했다. 히파르코스(BC 130경)는 천문학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그는 춘분점의 이동을 비롯한 수많은 관측을 남겼으며, 지구가 우주의 기하학적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에 위치한다고 가정하는 '이심원'(離心圓)이라는 이론적인 도구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이 이심원이 주전원(周轉圓)이라 하는 기하학적 도형과 수학적으로 동치라는 것도 증명했다. 프톨레마이오스(140경)는 주전원 이론을 그리스 천문학에 체계적으로 적용했다. 그는 행성·태양·달의 운동을 설명하는 정교한 이론체계를 만들었으며, 그의 책 〈알마게스트 Almagest〉는 이를 집대성해서 중세와 르네상스의 천문학자들에게 그리스의 천문학을 전수하는 데 기여를 했다.

이 책은 이후 1,500년 동안의 천문학의 골격을 세웠다.

그리스의 물리학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그것에 내재하는 단일성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레우키포스(BC 5세기)·데모크리토스(BC 5세기 후반)·에피쿠로스(BC 4세기 후반에서 3세기초)와 같은 고대 그리스 원자론자들은 자연은 진공 속에서 운동하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원자론에 대항해서 스토아학파(제논[BC 4~3세기]·크리시포스[BC 3세기]·포세이도니오스[BC 100경])는 자연을 활동적인 정신인 프네우마(pneuma)가 가득한 공간과 물질의 연속체로 파악했다. 그렇지만 원자론자나 스토아 학파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운동에 원인이 필요하다고 가정했으며, 매질에서의 물체의 운동은 가해진 힘에 비례하고 저항에 반비례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주를 달의 천구 이하의 지상계와 그 이상의 천상계로 나누었으며, 지상계에서는 수직의 낙하운동과 상승운동을, 천상계에서는 등속 원운동을 원인이 필요없는 자연스러운 운동으로 구분했다. 이외의 다른 모든 운동은 외부의 원인이 필요한 자연스럽지 못한 운동, 또는 강제된 운동으로 여겼다.

아르키메데스(BC 3세기)는 수학을 정역학·수역학과 같은 물리 문제에 적용했으며, 지레의 법칙을 유도했고, 부체(浮體)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슬람과 중세의 과학

그리스 과학은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가 정점이었다.

로마 제국은 이론적인 문제에 관심이 적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의 압박은 과학자들을 동방으로 쫓아냈다. 이들은 이슬람에 정착해서, 그리스 원전을 번역하고 그것을 발전시켰다. 이슬람 과학은 12~13세기에 서유럽으로 유입되었다. 후기 중세의 과학자들은 이슬람으로부터 유입된 그리스 과학의 체계 속에서 16~17세기 과학 혁명의 발판이 되는 수준 높은 과학을 발전시켰다.

역학은 중세에 가장 발전했던 분야였다(물리학). 사람의 손을 떠난 투사체를 계속 운동하게 하는 원인에 대해 중세 초기의 필로포노스이븐 시나(라틴 이름은 아비케나) 같은 이슬람 과학자들은 투사체에 주어지는 비물질적인 힘을 상정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뷔리당은 이를 발전시켜 임페투스(impetus:지상과 우주의 운동이 임페투스와 저항 사이의 투쟁의 결과라고 생각했음)라는 양을 도입하는데, 이는 투사체의 초기 속도와 물질의 양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중세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식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자연에 존재하는 실제 운동에도 관심이 없었다.

중세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권 아래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1277년 교황 요한네스 21세는 신학에 위배된다고 생각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219가지 명제를 금지시켰다. 이 명제 중에는 "최초 원인(신)은 여러 세계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금지령은 여러 세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낳았다.(아리스토텔레스주의)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Daum백과] 물리과학의 기원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