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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1세

다른 표기 언어 Vasily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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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371
사망 1425. 2, 모스크바
국적 모스크바

요약 모스크바의 대공(1389~1425).
정식 이름은 Vasily Dmitriyevich.

드미트리 돈스코이 대공(1359~89)의 맏아들인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블라디미르 대공으로 러시아 땅을 지배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기 위해 어린 나이에 타타르족의 칸[汗] 토크타미시에게 찾아갔다(1383). 때마침 역시 허락을 구하고 있던 트베르(지금의 칼리닌) 공(公)의 도전을 외교적으로 압도함으로써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나 그뒤 계속 인질로 토크타미시의 궁정에 잡혀 있다가 1386년 토크타미시가 그의 영주인 티무르 렌크(태멀레인)와 충돌하자 그 틈을 타 모스크바로 탈출했다.

그의 도주로 타타르와 모스크바 사이에 적대감이 생겨났지만 1388년에는 모스크바 공국 군대를 이끌고 토크타미시를 도와 중앙 아시아에서 티무르 렌크에 대항해 싸웠다.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 토크타미시의 승인을 얻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모스크바와 블라디미르의 대공위에 올랐다(1389). 토크타미시의 허락을 받아 모스크바 세력강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그는 니즈니노브고로트(지금의 고리키)와 무롬 공국을 합병해 볼가 강 중류지방에 모스크바의 세력을 증대시켰다.

서쪽으로도 세력을 넓히려 했지만 리투아니아(특히 1390년에 리투아니아 대공의 딸 소피아와 결혼한 뒤로는 우호관계를 유지해왔음) 및 노브고로트와 충돌했다. 우그라 강을 따라 국경선을 정함으로써 모스크바와 리투아니아 사이의 영토 분쟁은 일시적으로나마 해결되었지만 노브고로트와는 이후 1397~1417년에 가끔 마찰을 빚었다. 그는 또한 타타르족의 정치에도 계속 관여했다.

1395년 티무르 렌크가 토크타미시를 쳐부순 뒤 러시아 땅에 침입하자 그에 맞서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그러나 바실리와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티무르는 퇴각했고 그뒤 10년 동안 모스크바 대공국은 타타르의 지배를 떨치고 효과적으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408년에는 토크타미시 이후 타타르 한국을 재편성한 에디구가 모스크바를 포위하고, 바실리를 위협해 칸에게 다시 공물을 바치고 타타르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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