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더 기타리스

엣지

The Edge

음악은 코드 세 개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요약 테이블
출생 1961년
국적 아일랜드
대표작 「Joshua Tree」(1987)
엣지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가 된 U2의 기타리스트 엣지. 어쩌면 가장 정치적인 밴드라는 U2의 정체성과, 분위기와 감성을 중시하는 엣지의 기타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테크닉을 앞세우는 기타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테크닉보다는 전체적인 사운드를 중시하며 난해한 연주보다는 절약된 음표 내에서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이런 성향은 어느 인터뷰에선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밝힌 것에서 잘 드러난다. "난 항상 요점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자 한다. 좋은 곡과 리프, 아이디어, 이런 것들이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다. 지판 위에서 손가락을 정말 빨리 움직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건 그냥 기타 올림픽일 뿐이다. 그런 무의미한 일에 관해서라면 나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또 덧붙인다. "나에게는 사운드가 먼저이고 원하는 사운드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그렇지만 절대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하는 식의 과시적인 연주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그가 1970년대의 퓨전 재즈와 프로그레시브 록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음악이라 말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일 터이다.

U2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현란한 테크닉과 속주의 가벼움을 참지 못하는

엣지는 1961년 영국 에섹스주 바킹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데이비드 하월 에반스(David Howell Evans), 부모님은 웨일즈 출신이다. 유아기 때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이사해 그 곳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외톨이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기타 레슨을 받았는데 첫 번째 기타는 어머니가 벼룩시장에서 사준 고물 어쿠스틱 기타였다. 형인 딕과 이 기타를 치면서 놀다가 자신이 기타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뮤지션이 되기로 결심했다. 마운트 템플 중학교 재학 시절이던 1976년 보노(Bono, 보컬), 아담 클레이튼(Adam Clayton, 베이스), 래리 뮬렌 주니어(Larry Mullen Jr., 드럼)와 함께 U2를 결성했다. 습작과 연습 기간을 거쳐 1978년 더블린의 프로젝트 아츠 센터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지고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후 1980년 데뷔 앨범 「Boy」를 발표했다.

U2는 시작부터 가능성 있는 밴드로 주목받았지만 그들의 고공비행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 것은 1981년 2집 「October」에 이어 1983년 3집 「War」를 발표하고부터다. 앨범은 UK 앨범차트 1위에 오르며 U2를 세계적인 밴드의 반열에 올려놓았는데, 특히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현대사의 비극인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룬 싱글 〈Sunday Bloody Sunday〉가 크게 주목 받았다. U2는 이 곡에서 이미 그들이 나아갈 바를 적시하고 있었다.

같은 해 나온 라이브 앨범 「Under a Blood Red Sky」는 초창기 엣지의 기타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관중과의 교감이 일품인 〈Gloria〉와 스튜디오 버전보다 훨씬 거친 매력으로 무장한 〈Sunday Bloody Sunday〉, 그리고 특유의 하모닉스 기타 톤으로 시작하는 엔딩트랙 〈40〉가 앨범의 백미로 꼽힌다.

보노와 엣지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84년작 「Unforgettable」에 이어 1987년 발표한 「Joshua Tree」는 자타가 공인하는 밴드의 최고 앨범이다. 이 앨범은 영국과 미국에서 공히 앨범차트 정상에 올랐고, 〈With or Without You〉와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라는 두 개의 빌보드 넘버원 싱글을 배출했다. 1988년 발표한 라이브 앨범 「Rattle and Hum」도 라이브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데 이 앨범은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91년작 「Achtung Baby」에는 불멸의 명곡 〈One〉이 포함되어 있고, 1993년 앨범 「Zooropa」는 U2가 처음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도입해 관심을 끌었는데, 엣지는 수록곡 〈Numb〉에서 작곡과 보컬까지 맡아 밴드 내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했다.

세기가 바뀌었지만 U2의 맹활약은 계속되었다. 2000년 발표한 앨범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웠다. 2년에 걸쳐 총 일곱 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것이다. U2는 2001년 43회 그래미에서 수록곡 〈Beautiful Day〉로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하는 등 3관왕을 차지했고 이듬해 44회 그래미에서도 같은 앨범으로 4관왕을 차지했다. 특히 U2에게 올해의 레코드 2년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Walk on〉은 버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를 위한 노래였는데, 이 때문에 국명을 미얀마로 바꾼 군부에 의해 버마에서 이 앨범이 판매금지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2004년 발표한 앨범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에서 U2는 타이틀곡 〈Vertigo〉가 증명하듯 일렉트로니카와 테크노를 대폭 수용하는 변화를 꾀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절대적 지위는 변함없이 공고했다. 이 앨범 역시 U2에게 그래미 5관왕의 영광을 선물했다.

U2 활동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엣지는 솔로 앨범도 한 장 발표했는데, 1987년에 발표한 「Captive」가 그것이다. 이밖에도 그는 조니 캐시(Johnny Cash, 1932~2003), 비비 킹, 티나 터너에서 제이-지(Jay-Z), 리한나(Rihanna)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했다.

클레이튼과 엣지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Who와 클래시(The Clash) 등의 영향을 받아 포스트 펑크 밴드로 출발했던 U2는 이제 세계적인 공룡밴드가 되었지만 여전히 R.E.M과 함께 록의 저항정신을 사수해 온 얼터너티브 록의 수호자로 추앙받는다. U2의 거대한 성공과 얼터너티브의 정신은 모순일 수 있지만, 그들의 활동은 이러한 평가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U2는 1984년의 밴드 에이드와 1985년의 라이브 에이드를 비롯해 거의 모든 자선 콘서트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보컬리스트 보노는 다보스 포럼에 참여해 세계의 지도자들과 토론하고 제3세계 극빈국가들의 채무탕감 활동에도 적극 나서는 등 정치적 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렇다면 엣지는? 그는 기타를 치고 있다. U2의 일원으로 많은 활동을 함께 하고 있지만 보노와는 달리 그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은 드물다.

낡은 깁슨 익스플로러 기타 한 대

엣지의 기타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소리의 질감, 즉 사운드스케이프이다. 그는 딜레이와 리버브 효과를 통해 울림이 많고 다소 몽롱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그는 가능한한 적은 수의 노트로 연주하기를 원하며 대신 사운드를 통해 많은 것을 표현해 낸다. 엣지는 「Joshua Tree」 녹음 당시부터 이미 아주 작은 리드 라인만으로 충분히 깊고 풍부한 맛을 살릴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대표적으로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같은 곡에서 그는 단 여섯 개의 노트로 구성된 아르페지오 연주를 구사했지만 그것은 딜레이 효과를 통해 충분히 넓혀지고 적절하게 확장되었다. 'Three Chord and the Truth'라는 U2의 슬로건은 엣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기타 연주뿐만 아니라 곡 작업에서도 엣지의 이런 특징은 잘 나타난다. 그가 만드는 노래들은 대부분 한 두 개의 코드에 기초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One〉은 약간의 변주가 포함된 두 개의 코드만으로 진행된다. 리듬 기타리스트로서의 단순하지만 탁월한 리프와 에코를 이용한 복합적인 리듬의 구성, 소리의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사운드 메이킹은 그의 기타의 핵심 요소들이다.

엣지가 오래 전부터 애용해온 깁슨 익스플로러 모델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엣지가 오래 전부터 애용해온 깁슨 익스플로러 모델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엣지는 깁슨 익스플로러 기타를 주로 사용한다. 데뷔 앨범 「Boy」 녹음 당시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는 엣지가 낡은 깁슨 익스플로러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내는 것을 보고 "다른 기타는 없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엣지의 대답은 "난 기타가 한 대밖에 없는데 당신이 지금 그걸 보고 있는 거다"였다고. 지금도 그는 깁슨 익스플로러가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얻는데 최고의 기타라고 말한다.

엣지는 완벽주의자여서 라이브에서도 스튜디오 연주와 최대한 유사한 사운드를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깁슨 SG, 깁슨 레스 폴, 펜더 텔레캐스터와 스트라토캐스터 등 다양한 기타가 등장한다. 엣지는 다른 기타리스트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의 기타를 사용한다. 그는 스튜디오 녹음에서 무려 200대 이상의 기타를 사용한다. 라이브에서도 통상 1회 공연에서 17대에서 19대의 기타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보통 4~5대를 사용하는 여느 기타리스트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이다. 하지만 그는 특정 기타의 모델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악기점에 걸려있는 포스터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며 특정 회사에서 시그너처 기타를 만드는 것만은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U2는 2010년 「롤링 스톤」이 발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 리스트에 36위에 오른 〈One〉을 비롯해 무려 여덟 곡을 올려놓았다. 2003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 순위에서도 U2의 앨범은 「Joshua Tree」가 26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다섯 개가 올라있다. 엣지는 2011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 순위에서 38위에 올랐으며, 2005년 U2의 기타리스트로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Joshua Tree」(1987)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일서 집필자 소개

1970년 순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이때부터 지독한 라디오 키드, 팝송 키드였다. 휘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19..펼쳐보기

출처

더 기타리스트
더 기타리스트 | 저자정일서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대중을 이끈 위대한 기타리스트! 재즈와 블루스, 록큰롤, 하드 록과 헤비메탈, 펑크와 모던 록 탄생에 이르는 대중음악의 역사 속 기타리..펼쳐보기

전체목차
Chapter 3. 영웅들의 탄생 - 1960년대 스티브 크로퍼 - 멤피스 사운드를 추억하다 조지 해리슨 - 그의 기타가 조용히 흐느낄 때 키스 리처드 - 롤링 스톤스의 음악감독 로이 부캐넌 - '세계 최고의 무명 기타리스트'라는 농담 에릭 클랩튼 - Life is Slowhand 마이크 블룸필드 - 흑인 블루스 마스터를 향한 백인 블루스 보이의 경의 프랭크 자파 - 록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말을 걸다 피트 타운센드 - 에어 타운센드, 디스트로이어 타운센드 로저 맥귄 - 밥 딜런과 비틀스의 조우, 그리고 버즈 지미 헨드릭스 - 뒤바뀌지 않는 넘버 원 제프 벡 - 기타리스트의 애티튜드란 어떠해야 하는가 로비 로버트슨 - 록 음악의 여러 정경을 풍요롭게 그려낸 축복 제리 가르시아 - 여름, 몬트레이, 우드스톡 그리고 그레이트풀 데드 클라렌스 화이트 - 컨트리 록을 탄생시킨 숨은 그림자 지미 페이지 -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플린호'의 선장 존 맥러플린 - 대영제국의 기타 학자 리치 블랙모어 - 하드 록 기타의 교본을 완성하다 피터 그린 - 록 역사상 두 가지 아쉬운 질문 조지 벤슨 - 아티스트 혹은 엔터테이너 논란 스티븐 스틸스 - 슈퍼 그룹의 계보를 논하다 닐 영 - 예측불허라는 사실만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 조니 윈터 - 뮤지션의 인생을 바꾼 한 줄의 기사 듀언 올맨 - 록의 여신에게 가혹하게 선택된 자유로운 새 산타나 - 우드스톡의 신성에서 록계의 초자연주의자로 귀환 로비 크리거 - 그들은 결국 인식의 문을 열었는가? 데이비드 길모어 - 위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의 1등 항해사 리처드 톰슨 - 브리티시 포크계의 뚜렷한 족적 로버트 프립 - 록에 예술의 옷을 입히다
Chapter 5. 헤비메탈 무법지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연금술사들 - 1980년대 개리 무어 - 그의 기타만큼 슬피 우는 기타는 없다 케이 케이 다우닝 & 글렌 팁튼 - '메탈의 神'으로 불리는 트윈 기타리스트들 앵거스 영 - 반바지 교복을 입고 하드 록의 본령을 사수하다 마이클 쉥커 - 'Rock will never die'의 진원지 리 릿나워 - 퓨전 재즈계 단 한 명의 '캡틴 핑거' 알 디 메올라 - 피킹의 마술적 경지에 오른 사나이 팻 메스니 - 현존하는 가장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기타리스트 애드워드 반 헤일런 - 오직 헨드릭스만이 그의 앞에 있다 데이브 머레이 - 끔찍한 고문기구만큼 파괴적인 사운드 조 새트리아니 - 기타계의 비르투오소 랜디 로즈 - 섬광보다 강렬한 기타 소리, 불꽃 같은 삶 프린스 - 섹시한 팝스타 혹은 비범한 뮤지션 스티브 루카서 - 반주자라는 오해, 연주자로서의 정체성 스티비 레이 본 - 길 잃은 1980년대 블루스 록계의 나침반 피터 벅 - 평범함을 잃지 않는 연주가 가장 비범하다 존 사이크스 - '깁슨 레스 폴 커스텀'을 제대로 폭발시키는 파워 기타맨 리치 샘보라 - 그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에릭 존슨 - 기타계의 손꼽히는 멜로디 메이커 더스턴 무어 -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엣지 - 음악은 코드 세 개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잉베이 말름스틴 - 헤비메탈과 바로크 음악의 예기치 않은 조우 비비안 캠벨 - 가슴 깊이 블루스 필을 간직한 벨파스트의 기타 영웅 데이브 머스테인 - 스래시 메탈이 지고 있다. 그러나, 타협은 없다! 조니 마 - 브릿팝의 시조, 그 쟁글거리는 기타 톤 커크 해밋 - 헤비메탈 정통성의 마지막 사수자 크리스 임펠리테리 - 그는 왜 그토록 속주에 집착했을까 마티 프리드먼 - 동양적인 헤비메탈이란 어떤 것일까 제이슨 베커 - 마음으로 치는 기타가 조용히 흐느낄 때 슬래쉬 - 그의 기타에는 총과 장미가 공존한다 존 스콰이어 - 매드체스터, 맨체스터 폭발의 뇌관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엣지더 기타리스트, 정일서, 어바웃어북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