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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화상전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그림 속에 비친 화가의 눈을 보다

요약 테이블
출생 1887년
사망 1985년
국적 러시아
대표작 〈와인 잔을 든 두 사람〉, 〈나와 마을〉, 〈달빛 아래 러시아의 농촌〉

유아적 발상, 그러나 위대한 예술

러시아 출신의 화가 샤갈은 다양한 미술사조가 등장한 20세기에 특정한 유파에 속한 적이 없는 화가로 유명하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작품 세계는 20세기 내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예술적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샤갈이 그린 몇 점의 자화상에도 거장으로서의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곱 손가락의 자화상〉은 샤갈이 처음 파리에 왔을 때 그린 초기 작품으로, 화면 전체에서 입체주의 회화의 영향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다. 샤갈은 추상적이고 단순화된 기하학적인 형태를 이용하여 자신을 표현했는데, 이는 평면적인 화면에 입체적인 볼륨감을 이끌어낸다.

〈일곱 손가락의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12~1913, 126×107c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 박물관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 재미있는 것은 샤갈이 자신의 손가락을 일곱 개로 표현한 것이다. 그로테스크하고 전위적인 작품 속에서도 화가 특유의 천진난만한 동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샤갈은 어떤 이유로 자신의 왼손가락을 일곱 개나 그린 걸까?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갖는 궁금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샤갈은 어느 인터뷰에서 다섯 손가락이 아닌 일곱 손가락을 통해 상식이 파괴된 세계를 의식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화가의 이러한 관념적인 언급만으로는 작품에 대한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면서 화가에게 있어서 '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작품 해석에 대한 지나친 감상의 비약일까? 실제로 손이 없으면 화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화가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는 예술적 영감을 캔버스에 옮기는 매우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된다. 이 손가락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예술적 영감이 샘솟는다 하더라도 소용없게 되는 것이다.

샤갈은 자신의 작품에서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을 일곱 개의 손가락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회화의 평면성의 극복은 입체파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이룰 수 없는 욕망 같은 것이었다. 샤갈은 손가락이 일곱 개라면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아이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일곱 손가락의 자화상〉에서 손가락만큼 많이 회자되는 부분은 창밖으로 보이는 에펠탑이다. 창문 옆에는 카툰에서나 볼 수 있는 말풍선 같은 것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말풍선 안에는 샤갈의 고향 러시아 비프테스크의 교회가 있다. 그림 속 샤갈 앞에 놓인 캔버스에도 바로 그 교회가 등장한다. 아직 어린 이방인 예술가가 멀고먼 타향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그림 곳곳에 배어 있다.

〈흰색 컬러의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14, 30×26.5cm,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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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속 화가의 눈이 보는 세상

샤갈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번뜩이는 눈과 얼굴의 명암은 그의 여러 작품 속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자화상 속 샤갈의 눈은 매우 강렬하다. 실제 그의 눈과는 사뭇 다르다. 또한 작품 속 얼굴에는 밝음과 어둠이 함께 묘사된다. 이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린 〈흰색 컬러의 자화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 속 젊은 샤갈의 표정이 매우 냉정하고 어둡게 느껴지는 것 역시 번뜩이는 눈과 얼굴의 명암에서 비롯한다. 그림 안에서 그가 보는 세상은 과연 어떤 빛깔이었을까?

〈와인 잔을 든 두 사람〉, 캔버스에 유채, 1917~1918, 235×137cm, 프랑스 파리 국립 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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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잔을 든 두 사람〉은 샤갈이 자신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그린 것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특이한 모습의 두 남녀에게서 샤갈 특유의 치기(稚氣)가 느껴진다. 낮게 드리운 지평선 위에 선 두 사람은 넘치는 행복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치 하늘로 떠오를 것만 같다. 샤갈의 아내 벨라 로젠펠트(Bella Rosenfeld)는 러시아에서 온 가난한 이방인 예술가에게 사랑의 기쁨을 알려준 메신저였다. 작품 속 샤갈의 머리 위에 있는 아기천사는 이들 부부의 딸 이다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 벨라의 뱃속에 이다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유독 돋보이는 것은 샤갈이 벨라의 왼쪽 눈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장면이다. 벨라가 무엇을 보고 있기에 샤갈이 그녀의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걸까? 러시아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사람의 눈이 두 개인 이유는 행복과 불행을 모두 느끼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한다. 한쪽 눈이 행복을 본다면 다른 한쪽 눈은 불행을 본다는 것이다. 혹시 샤갈은 사랑하는 아내 벨라의 눈 가운데 불행을 보는 눈을 가린 것은 아닐까? 그로테스크한 화풍만큼이나 샤갈의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끝없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시대적 격변기를 온몸으로 체화한 유태인 화가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제국 벨라루스의 비테프스크(Vitebsk)에서 태어났다. 1895년 유태인 초등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00년 왕립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을 접하게 된다. 당시 샤갈은 소묘와 기하학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샤갈은 1906년 벨라루스에서 활동하는 화가 예후다 펜(Yehuda Pen, 1854~1937)의 화실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하게 된다. 그 뒤 세인트피터즈버그(St. Petersburg)의 왕립 예술학교를 거쳐 레온 박스트(Léon Bakst, 1866~1924)가 운영하는 미술학교에 들어가는 등 샤갈은 당시 러시아 화가로서의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나간다.

그 시절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샤갈의 운명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면서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활동 무대를 파리로 옮긴 이듬해인 1911년, 샤갈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와 공동으로 화실을 빌려 창작활동에 불을 지핀다. 화가로서의 개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던 그 당시 샤갈의 작품을 가리켜, 시인이자 예술평론가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9)는 "초자연적 스타일"(surnaturel)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젊은 이방인 화가의 작품에 대해 이처럼 독특한 평가를 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느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샤갈 역시 파리 앙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 1884년 프랑스의 살롱전에 반대하여 설립된 무심사 미술전람회–역주)에 참가했다. 1912~1914년 3년 연속 앙데팡당에 참가하면서 샤갈은 프랑스 미술계에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항상 고향을 그리는 연약한 청년 샤갈은 파리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1914년 고향으로 돌아온 샤갈은 때마침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한동안 러시아에서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혁명의 소용돌이에 바람 잘 날 없던 러시아는 샤갈이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곳이 못 되었다. 조국 러시아를 떠나면서 샤갈의 보헤미안 인생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1923년 가족을 이끌고 파리로 이주한 뒤, 브뤼셀과 뉴욕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전시회를 열면서 그의 명성도 세계적으로 퍼져 간다.

샤갈은 193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1940년 들어선 프랑스 비시 정부(Gouvernment de Vichy France,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40년 7월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패한 뒤부터 1944년 9월 연합군에 의해 파리가 해방될 때까지 필리프 페탱이 통치하던 괴뢰정권–역주)로부터 핍박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정치적 격변기마다 여러 나라를 떠돌던 샤갈 인생의 종착지는 역시 프랑스였다. 프랑스 방스(Vence)의 생폴(Saint Paul) 산장에 정착한 샤갈은, 1985년 3월 8일 생을 마감하며 마지막 눈을 감는다. 자화상 속 강렬한 눈빛이 드디어 안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작품 속의 눈과 교감하는 화가의 눈

〈나와 마을〉, 캔버스에 유채, 1911, 192×151.4cm,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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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러시아의 농촌〉, 캔버스에 유채, 1911, 126×104cm, 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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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나와 마을〉(국내에서는 '눈 내리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역주)과 〈서커스〉, 〈달빛 아래 러시아의 농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작품 속에는 형태와 공간에 대한 기상천외한 상상이 마치 어린 아이의 생각처럼 펼쳐진다. 아울러 종교에서 느낄 수 있는 경건함과 시의 서정미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특히 〈나와 마을〉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캔버스에 합쳐 놓은 콜라주 기법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 미술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 기법이 되었다. 영화에서 쓰이는 몽타주 편집 방식이 캔버스에 옮겨진 것이다.

샤갈은 이들 작품에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고향에 대한 기억을 서정적인 화면으로 합성하면서 기억 속의 장면을 묶어 상징성을 더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샤갈의 작품들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나와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눈'이다. 소의 눈과 사람의 눈은 마치 서로를 비추는 것처럼 어떤 교감을 나누는 듯하다. 1911년 파리에서 이 그림을 그리던 바로 그 순간 샤갈은 어떤 눈빛을 하고 있었을까? 문득 화가의 눈빛이 궁금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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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빈 집필자 소개

베이징에 있는 중앙미술대학교(中央美術學院)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사를 연구하면서 저자가 특히 천착한 분야는 화가의 자화상이다. 아울러 2000년대 들어 세계 최대 미술 시장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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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전 | 저자천빈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거장들의 자화상으로 미술사를 산책하다! 자화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뒤러에서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이끈 다빈치와 라파엘로를 거쳐 홀바인, 틴토레토, 루벤스, 렘브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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