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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뒤러

〈아담과 이브〉

화학의 4원소로 표현한 우주의 근원

뒤러, 〈아담과 이브〉, 1504년, 동판화, 25×19cm,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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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에 만들어진 판화 〈아담과 이브〉는 독일의 위대한 화가 뒤러(Albrecht Dürer, 1453~1491)가 화학, 수학, 의학, 신학, 인쇄술을 집대성한 걸작이다. 뒤러는 헝가리 태생의 금세공사 집안에서 열여덟 명의 자녀 중 셋째로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처음에는 금세공을 익혔으나, 이후 당시 책의 삽화 인쇄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판화에 정진하였다.

뒤러는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거장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1453~1491)를 스승으로 모셨다. 1498년 목판화 〈요한계시록〉을 발표했고 동판화 기법을 익혀 1512년에는 그의 3대 동판화 걸작으로 꼽히는 〈기사의 죽음과 악마〉, 〈서재에 있는 성인 히에로니무스〉, 〈멜랑콜리아I〉을 발표했다. 1494년과 1505년의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인체표현법과 원근법을 익혔으며, 1520년 네덜란드 여행에서는 유화 기법을 연구하였다.

뒤러는 100점의 유화, 350점의 목판화, 100점의 동판화, 900점에 이르는 드로잉, 그 밖에 미술이론서와 인문과학서, 동·식물의 형태학적 연구서, 여행기 등을 남겨 실로 독일을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학자로 자리매김 하였다.

뒤러, 〈기사, 죽음, 악마〉, 1513년, 동판화, 24×19cm, 소장처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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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 〈서재에 있는 성인 히에로니무스〉, 1514년, 동판화, 24.7×18.8cm, 독일 베를린 쿠퍼슈타히카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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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수학, 의학, 신학, 인쇄술의 결정판

뒤러의 대표작 〈아담과 이브〉는 창조주가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는 『성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500년 전의 판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법이 뛰어나다. 여기에는 수학이 숨어 있다. 그리스의 조각에서 시도되어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Pollio Marcus Vitruvius, BC73~?)에 의해 수학화된 인체의 팔등신 황금비례를 철저히 맞추었다. 다리 길이는 신장의 1/2, 상반신의 반은 젖꼭지, 하반신의 반은 무릎, 발 길이는 신장의 1/7, 얼굴 길이는 신장의 1/10 정도로 하여 인체의 균형미를 강조하였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밀로의 비너스〉 등 완벽한 이상형을 나타낸 조각들에게서 받은 감명이 뒤러의 독실한 신앙관에 반영되어 표현된 것이다.

뒤러는 경건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으로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를 깊이 존경하였다.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신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아담과 이브는 완벽한 절대미의 이상적인 인체를 가져야만 했다.

뒤러, 〈토끼〉, 1502년, 종이에 수채와 가슈, 25×23cm, 오스트리아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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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 〈잔디풀〉, 1503년, 종이에 수채와 가슈, 40×32cm, 오스트리아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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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배경은 에덴동산이다. 중세의 '여백 공포'의 영향인지 화면은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다. 아담과 이브를 둘러 싼 자연물들은 역시 뒤러의 형태학적 연구의 산물이다. 1501년부터 뒤러는 동·식물을 연구하여 화가인지 과학자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의 자세한 드로잉을 많이 남겨서 오늘날의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러한 동·식물의 표현 역시 뒤러의 신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의 표현이다. 이 그림에서도 쥐·고양이·토끼·사슴·소가 아래에 있고, 나무에는 앵무새와 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에는 양이 한 마리 위태롭게 서 있는데 여기에는 무슨 의미들이 있을까?

화면을 꽉 메운 에덴동산의 울창한 나무들 중 왼쪽에 있는 나무는 호기심을 나타내는 선악과이고, 오른쪽에 있는 나무는 생명나무이다. 왼쪽 나무의 가지 위에 지혜와 호기심의 상징인 앵무새가 앉아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으며, 오른쪽 나무에 뱀이 걸려 있고 그 뱀이 이브를 유혹하여 먹게 한 생명과가 열린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는 그림에서 유일하게 뚫린 공간인 하늘 아래 높은 절벽 위에 한 마리의 양이 위태롭게 서 있다. 양은 기독교적 상징으로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요한복음」 1장 36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뒤러는 그림에서 "어린 양 하나로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에스겔」 46장 13절)라는 말씀대로 그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서의 신앙심을 표현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뒤러는 자신이 이룩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조화와 균형이라는 고전 가치의 부활을 성취했다는 자긍심과, 자신의 깊은 신앙심의 징표로 그림 왼쪽 위에 있는 나뭇가지에 "뉘른베르크의 알베르투스 뒤러가 1504년에 그렸다"(ALBERTUS DÜRER NORICUS FACIEBAT 1504)라는 라틴어 서명을 명판으로 만들어 달아 넣었다.

사성론과 4원소설과 마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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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원소를 담은 판화

기원전 6세기에 탈레스(Tales, BC624~BC546)는 아주 작은 씨에 물만 줘도 큰 나무가 되는 것을 보고 우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C585~BC525)는 물을 끓이면 공기가 되므로 공기가 그 근원이라고 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BC540~BC480)는 불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다. 시칠리아의 의사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물·불·공기·흙의 4원소설이 정리되었으며, 4원소설은 플라톤(Plato, BC427~BC347)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지에 의하여 이후 2,000년간이나 서양과학을 지배했다. 네 개의 원소가 서로 반응하여 우주 만물을 만든다는 생각은 우주 만물이 아주 간단한 몇 가지 원소로 조합하여 만들어진다는 근대적인 원소설의 시초가 된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인체에 대한 체질론도 활발히 연구되었는데, 점성술과 결부된 사성론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각 체액의 과소에 따라 체질이 달라지며 이에 맞춰 다른 치료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체액에 비해 혈액이 과다한 사람은 다혈질로서 활동적인 성격이며 토끼로 상징된다. 원소로는 공기에 해당하여 높이 오르려는 성질이 있고 계절로는 봄에 해당한다. 보티첼리의 〈봄〉이나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듯이 서풍에 의해 봄이 시작되므로 방향은 서쪽이고 점성술로는 목성의 지배를 받는다.

뒤러, 〈멜랑콜리아I〉, 1514년, 동판화, 24×19cm,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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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검은 담즙이 많은 사람은 우울질로서 차고 건조한 가을에 해당하며 네 원소 중에서 흙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우울질인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창의적인 사람으로 보고 역사상 위대한 예술과 학문을 이룬 사람들이 우울질이 많다고 하여 우울질 예찬론도 있었다. 뒤러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의 우울질 예찬 사상이 동판화 〈멜랑콜리아 I〉에 잘 나타나 있다. 우울질인 사람은 측량과 건축의 행성인 토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사색에 열중한다. 따라서 우울질이 높아지면 이러한 토성의 영향을 억제하고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목성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멜랑콜리아 I〉에는 목성을 나타내는 4방진이 그려져 있다. 마방진이란 가로 세로 사방 대각선으로 어느 행으로 더해도 같은 값이 되도록 숫자를 하나씩 써 넣은 격자이다. 4방진이면 4×4로서 1부터 16까지의 숫자로 만든 마방진을 말한다.

뒤러의 그림에서 아담과 이브와 함께 그려진 토끼·고양이·사슴·소는 네 가지 체액이 완벽을 이룬, 신이 창조한 완전한 조화의 상태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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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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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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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담과 이브〉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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