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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다 빈치

〈모나리자〉

공기의 밀도와 모나리자의 신비

다 빈치, 〈모나리자〉, 1503~6년경, 캔버스에 유채, 77×53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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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과학'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는 것처럼 막막하고 어려운 일로 느껴진다. 〈모나리자〉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너무나 많이 해왔고 또한 모순과 신비의 연속이다. 〈모나리자〉가 그렇게까지 유명해진 것은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 이후부터였다.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를 한바탕 난리 속으로 끌고 들어갔던 이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나리자〉라는 그림으로 집중시켰다.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그림은 아닐지 모르나 가장 유명한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방탄유리 속에 깊이 들어 있어서 직접 가 봐야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의혹투성이인 화가와 그림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이탈리아의 '빈치'라는 곳에서 1452년 4월 15일에 태어났다. 빈치라는 마을 이름은 그 마을에 골풀(vinci)이 많은 데서 유래하였으며, '빈치'는 그의 조부 때부터 가문의 성이 되었다.

다 빈치는 어려서부터 왼손으로 거울상 글씨를 썼다고 한다. 소설 『다 빈치 코드』에서는 비밀의 문서가 읽을 수 없는 암호로 쓰여 있는데, 나중에 보니 거울상 글씨로 거울에 비쳐 보면 쉽게 읽을 수 있는 다 빈치 스타일의 글씨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아주 나쁜 버릇이고, 왼손이 관련되면 죄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다 빈치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탓에 교정할 시기를 놓쳤고, 이후 그림을 그릴 때도 양손을 쓴 경우가 많았다.

다 반치의 거울상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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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는 사생아로 태어났으나 부끄러워하기보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했고,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자신이 교양 없다고 하면서도 교육을 많이 받은 지식인들을 지혜가 없다고 경멸하기도 하였다. 교육받은 자들이 간접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자신은 자연에서 직접 경험하여 깨닫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지적 교육을 높이 받은 자들에게 전체적인 통찰력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대인의 기질도 있었다.

다 빈치는 평생 결혼한 적이 없으며 다른 미술가들과 달리 여성의 성적 매력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몇몇 미소년을 제자로 데리고 있으면서 동성애 재판을 받기도 하였는데 죽을 때도 아름다운 소년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Francesco Melzi, 1493~1570)에게 유산을 물려주어 그러한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다 빈치가 생모와 떨어져 자랐기 때문에 여성에 대하여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동성애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제목 〈모나리자〉의 어원은 무엇일까? '모나'(Mona)는 이탈리아어로 부인을 뜻하는 '마돈나'(Madonna)의 준말이고, '리자'(Lisa)는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Francesco del Gioconda)라는 상인의 젊은 부인인 리자 게라르디니(Lisa Gherardini)라고 한다. 그림의 원래 제목은 이탈리아어로는 '라 조콘다'(La Gioconda), 프랑스어로는 '라 요꽁드'(La Joconde)이다. 이 제목은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바사리에 의해 정해졌다.

이 그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550년 출간된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있다. 그런데 바사리의 〈모나리자〉에 대한 묘사는 오히려 의혹을 더욱 크게 해줄 뿐이다.

"다 빈치는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에게서 자신의 부인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눈썹도 아주 자연스럽고…… 장밋빛 콧잔등에는 생기가 넘치고 입술의 빨간색과 얼굴 피부색의 조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가까이서 그녀의 목 부분을 보고 있으면 정말 거기서 맥이 뛰는 것 같다."

〈모나리자〉에게 눈썹이 있었다고? 그럼 나중에 눈썹이 없어졌나? 아니면 바사리가 거짓말을 했나? 그렇다면 조콘다 부인의 그림이라는 바사리의 말도 믿지 못하게 된다. 당시 눈썹을 미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설도 있다. 바사리의 이 기록 말고는 조콘다 부인의 그림이라거나 조콘다가 주문했다든가 또는 값을 치룬 기록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하여튼 〈모나리자〉는 이처럼 제목부터가 의혹투성이다.

다 빈치가 죽은 뒤에도 이 그림은 그의 화실에 걸려 있었다. 그리기 시작한 지 4년이나 되었는데도 서명이나 날짜도 써 넣지 않았기 때문에 눈썹이 없는 사실과 함께 미완성이라는 말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코닉스버그(E. L. Konigsburg)의 소설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는 이러한 모나리자의 이름에 얽힌 의문에 바탕을 두고 쓴 것이다. 코닉스버그는 다 빈치가 사랑한 여자를 그렸다고 썼으나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물감 성분 탓에 어두워진 그림

〈모나리자〉도 다 빈치의 다른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검게 변했다. 다 빈치의 「회화론」이라는 글에서 그림을 그릴 패널을 준비하는 과정의 기록이 나오는데, 석회 혼합물을 납이 주성분인 흰색으로 바탕을 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납 성분의 연백(lead white)은 바닥에 대한 부착력은 좋으나 유황과 만나면 검게 변하는 특성이 있다. 다 빈치가 즐겨 쓴(당시에는 다른 화가들도 많이 썼다) 색이 황을 포함하는 울트라마린, 버밀리온, 녹색 등이었기 때문에 처음 칠했던 색에 비해 검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최후의 만찬〉처럼 수성인 템페라와 유성인 유화를 섞어 쓰지는 않았기 때문에 박락 현상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 그림에 대하여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신비로운 미소이다. 입술의 양끝만 살짝 올라간 이 미소는 사실 다 빈치의 그림들에서 거의 변함없이 나타난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성 요한〉의 미소와 얼굴 모양도 거의 〈모나리자〉와 흡사하다. 성모 마리아를 그린 다 빈치의 그림 〈성모와 성자와 성 안나〉에서 마리아의 얼굴도 이런 미소를 띠고 있다. 모델이 지은 미소라기보다는 다 빈치가 생각하는 미소의 보편적 표현같이 보인다.

그런데 모나리자의 미소는 동양 사람들, 특히 한국인에게는 아주 친숙하다. 그것은 바로 부처의 미소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속 부처의 미소는 모나리자의 미소와 많이 닮았다.

다 빈치, 〈성모와 성자와 성 안나〉, 1510년, 나무에 유채, 168.5×130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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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78호, 신라시대, 높이 : 78cm, 국립 중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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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미소에 대하여 서양인들이 부산을 떠는 것은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다. 바사리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 성스럽기까지 한 미소"라고 했고, 프랑스 문학사가인 이폴리트 텐느(Hippolyte Taine)는 "왠지 불안해 보이고 음란하며 쾌락적이고 열정적이지만 슬프게도 보인다"고 했다. 성스럽다고도 하고 교만한 미소라고도 하고, 슬픔을 삼킨 미소라고도 하고, 점잖은 자세에 숨겨진 창녀의 미소라는 말까지 한다. 심지어 생리의학적인 설명도 나왔다. 천식환자의 입술 모양이라느니, 마비 증세 때문에 생긴 입술 표정이라느니, 임신 후유증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까지 있다.

이 그림이 그렇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에는 배경으로 그려진 풍경의 영향도 크다.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풍경인 데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다시 말하면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다 빈치의 관념에서 나온 표현인 것이다. 그는 평생 끝없는 욕망을 좇은 탐구형 인간이었다. 이러한 풍경도 그의 도달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목표를 나타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나리자〉 역시 뒤의 풍경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든 형태의 윤곽선을 뭉개서 없애는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탈리아 말로 '안개처럼'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스푸마토는, 화면 전체에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고 공기원근법을 연속적으로 표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이런 기법 덕택에 안개 속의 아련한 신비감을 준다. 스푸마토 기법은 윤곽선이 있는 부분을 기름으로 적시고 손가락이나 해면으로 부드럽게 문질러서 표현한다.

공기원근법은 다 빈치가 어려서부터 산천을 뛰어다니며 관찰한 결과물로 생각된다. 공기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밀도가 있어서 멀리 있는 것은 공기에 의하여 흐릿해진다는 것을 넓게 트인 고향의 벌판에서 관찰하고 깨달았을 것이다. 다 빈치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스푸마토 기법이나 공기원근법은 후대의 화가들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주었다. 신비로운 미소, 그로테스크한 배경, 전체적으로 안개에 감싸인 듯한 스푸마토 기법의 화면,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서 불멸의 신비로운 걸작이 탄생하였다.

명작에 대한 오마주와 패러디

〈모나리자〉는 그려졌을 당시부터 매우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도 '모나리자 신드롬'이랄 수 있을 만큼 많은 모작이 나왔다. 위대한 화가 라파엘로(Raffaello Santi, 1483~1520)도 모나리자 마니아였다. 1504년에 그린 소묘(〈프렌체 소묘〉)는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고 그린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모나리자〉를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 〈유니콘을 안은 여인〉까지 있을 정도다. 이들은 그림의 구조까지 정확히 같다. 〈모나리자〉도 원래 양쪽에 기둥이 있었으나 거듭된 보수와 액자 교체로 잘리고 말았다.

라파엘로, 〈피렌체 소묘〉, 1504년, 종이에 잉크, 220×158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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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유니콘을 안은 여인〉, 1505~6년경, 패널에 유채, 65×51cm, 이탈리아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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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심이 너무 심해 도를 넘으면 반대급부적으로 질투가 섞인 지위 격하도 있게 마련이다. 뒤샹(Marcel Duchamp, 1887~1967)의 〈L.H.O.O.Q!〉라는 작품은 모나리자 복제품에 수염을 그려 넣은 것이다. L.H.O.O.Q.(엘. 아쉬. 오. 오. 뀌)를 프랑스어 철자로 읽으면 "Elle a chaud au cul"(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라는 프랑스어 문장이 된다. 〈모나리자〉를 조롱하는 것이다. 1963년에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이 실크 스크린으로 〈모나리자〉를 색만 달리하여 여러 장을 이어 붙인 작품을 발표하여 상업화된 〈모나리자〉를 비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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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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