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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조토

〈동방박사의 경배〉

3D로 나타낸 실증주의

조토, 〈동방박사의 경배〉, 1304~6년, 프레스코, 200×185cm, 이탈리아 파도바 아레나 성당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4세기 초에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동방(지금의 이라크 지역으로 추정)에서 천문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별을 따라와서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하는 장면(「마태복음」 2장 1~12절)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1985년에 핼리 혜성을 탐사하는 '우주선 조토'각주1) 가 발사되었다. 화가와 우주선의 이름이 같은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이 그림과 우주선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주탐사선 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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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회화의 아버지

7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어느 날 한 화가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다가 곱돌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한 양치기 소년 조토를 등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화가는 마을 대장장이인 소년의 아버지를 찾아가 아들을 화가로 키우라고 설득했다. 마침내 허락을 얻고 소년을 자신의 공방으로 데려가서 도제로 삼았다. 조토를 발굴해 낸 치마부에(Cimabue,1240~­1302)는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화가였다.

어느 날 조토는 치마부에가 외출한 동안 스승이 그린 인물의 코에 파리를 그려 놓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스승이 캔버스에 붙은 파리를 쫓으려 했으나 날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조토는 도제로 있으면서도 스승의 화풍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창조력이 아주 풍부하고 뛰어나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열기에 충분하였다.

조토는 근대회화의 아버지, 즉 르네상스 미술을 연 위대한 화가로 불린다. 조토를 기준으로 고대회화와 근대회화를 가르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한눈에 보여주는 두 개의 그림을 감상해 보자.

치마부에, 〈천사들의 경배를 받는 성모〉, 1290년경, 프레스코, 427×280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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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 〈영광의 성모〉, 1310년, 프레스코, 325×204cm,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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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성모와 아기 예수를 그린 그림이다. 하나는 조토의 스승인 치마부에의 1290년경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조토의 1310년 작품이다. 두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거의 같으며, 두 작가가 활동한 시기도 같은 중세 고딕 시대이다. 그러나 두 그림은 형식이 전혀 다르다.

치마부에의 그림은 경건함과 웅장함을 잘 표현하였고 사실주의적 묘사가 뛰어나다. 이에 비해 조토의 그림은 세밀한 묘사가 상당히 억제되고, 대신 입체감과 중량감이 드러난다. 치마부에의 그림에서는 모든 사물과 인물이 아주 얇은 종잇장처럼 겹쳐 있다. 그러나 조토의 그림에서는 마치 옷 속에 감춰진 사람들의 몸이 드러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앞에 있는 대상과 뒤에 있는 대상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격이 있어서 원근법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치마부에의 그림은 2차원적 선의 표현인 데 비하여 조토의 그림은 3차원적으로 질량이 표현되었다. 또한 조토의 그림에서는 인물의 세밀한 묘사를 생략했지만 표정은 더욱 인간적이고 사실적이다.

이렇듯 조토가 그림에 처음으로 입체적인 질감을 표현했기에 그를 근대회화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주의에 입각한 3차원적 사실 묘사는 고대미술과 근대미술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기에 고대 중세미술의 끝도 조토이며, 근대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도 조토인 것이다. 이후 두초(Agostino Duccio, 1418~1498)나 로렌체티 형제(Pietro Lorenzetti, 1280/85~1348 ; Ambrogio Lorenzetti, 1290~1348) 같은 위대한 화가들도 다시 치마부에의 화풍으로 돌아가 기존의 화풍이 200년이나 더 계속된 것을 볼 때 조토가 얼마나 시대를 앞선 천재적 예술성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조토는 당시 작가 단테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아마도 그의 화풍에는 위대한 문인과의 교분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프레스코의 화학과 템페라의 비밀

〈동방박사의 경배〉는 이탈리아 파도바의 아레나 성당에 그려진 연작 중 하나이다. 아레나 성당은 건축가이기도 한 조토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어 마치 그의 개인 미술관 같다. 그림들은 프레스코(fresco) 기법으로 그려졌다. 프레스코는 젖은 석회를 바르고 마르기 전에 물에 갠 안료를 석회에 스며들게 하여 그림을 완성한다. 안료가 석회 속에 깊이 스며들기 때문에 겉면이 손상을 받아도 비교적 원형대로 몇 천 년 동안 보존되는 장점이 있으나, 많은 안료가 석회나 탄산가스의 염기 성분에 반응하여 변·퇴색이 일어나는 단점도 있다.

프레스코는 기원전 수천년 전부터 14세기에 템페라(tempera)와 유화가 발명되기 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템페라는 색상이 보다 선명하고 붓질이 쉬운 장점이 있으나 접착을 위하여 안료에 달걀노른자를 개어서 사용하므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벗겨지는 단점이 있다.

조토, 〈동방박사의 경배〉 중 마리아 부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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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에서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의 옷은 전통적으로 경건함을 나타내는 파란색이다. 이 그림은 파란색이 조금 남아 있으나 거의 벗겨졌다. 프레스코는 벗겨지지 않는데 어찌된 일일까? 조토가 이곳을 프레스코로 칠하지 않고 템페라 기법으로 칠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석회벽과의 불충분한 접착력으로 인하여 안료가 거의 떨어져 버린 것이다.

왜 조토는 이 부분에만 템페라를 썼을까? 조토는 하늘의 파란색과 달리 마리아 옷의 파란색을 더욱 선명하고 천상의 광택을 가진 최고의 파란색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런데 프레스코는 석고가 마른 뒤에는 색이 뿌옇고 광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옷 부분에만 템페라를 썼던 것이다.

이 그림에서도 조토가 얼마나 입체적 표현에 뛰어난지를 볼 수 있다. 또한 관념적인 상징만으로 도상적 회화를 그리던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달리 조토는 자연적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모델들의 감정을 실제로 살아 있듯이 나타냈다. 이전의 그림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던 살아 있는 인물들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조토는 그림 속의 소품과 인물 들을 모두 직접 모델을 관찰하여 그렸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인물은 모두 모델을 직접 보고 그렸다. 심지어 마구간의 지붕도 탁자를 직접 보고 그렸다. 다만 낙타는 조토가 직접 보진 못하고 각 부분마다 다른 모델을 보고 그린 듯하다. 낙타의 눈은 사람의 눈과 같고 푸른색이다. 낙타의 발굽은 원래 셋이고 더 넙적한데 그림에서는 말발굽으로 보인다. 또 귀는 당나귀, 주둥이는 말을 보고 그렸을 것이다. 비록 낙타가 실제와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각 부분은 철저히 실재하는 모델을 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미술에서 꽃피운 경험적 실증주의

그런데 왜 핼리 혜성 탐사선의 이름이 조토가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당시까지의 예수 탄생 그림에서는 별빛을, 『성경』 기록대로 동방박사들을 이끌었던 별이 땅의 어느 지점을 비추어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을 알렸다고 생각해서 땅을 향하게 그렸다. 그러나 조토는 상상만으로 그리지 않았다. 이 그림이 그려지기 조금 전 바로 1301년에 75~6년마다 지구에 나타나는 핼리 혜성이 모습을 나타냈다. 조토는 바로 이 핼리 혜성을 관찰한 바를 그림에 나타낸 것이다. 현대의 핼리 혜성의 모습과 조토가 그린 혜성은 너무도 똑같다.

당시는 철학적으로 기독교 사상 이외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과학적으로는 연금술이 각광받던 시기였다. 룰루스(Raimundus Lullus, 1235~1315)라는 스페인 연금술사는 값이 싼 다른 금속을 합성하여 금이 되게 하는 '현자의 돌'을 찾았다고 하여 온 유럽에 유명해졌으며 영국에 건너가 자신의 비법으로 600만 파운드의 금을 만드는 사기극으로 국왕 에드워드 3세(Edward III, 1312~1377)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선구자적 화학자인 영국의 로저 베이컨(Roger Bacon, 1214~1294)은 실증에 의한 지식을 강조하여 "연소는 공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기도 했다.

예술가 조토는 근대과학의 개념과도 일치하는 사실주의의 신념을 가진 천재였다. 근대회화를 연 조토, 근대철학을 연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근대화학을 연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 1743~1794, 〈라부아지에 부부의 초상〉, 다비드 참조). 시대는 이삼백년씩 차이가 나지만 그 원리는 대체로 경험적 실증주의로의 전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관을 표현하는 미술이 가장 먼저, 완전한 증거를 토대로 하는 과학이 가장 나중에 꽃을 피운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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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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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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