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Last Judgment

마리아의 파란색 치마를 그린 물감

시스티나 성당 동쪽 입구에서 바라본 천장화와 서쪽 정면으로 보이는 〈최후의 심판〉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37~41년경, 프레스코, 1370×1220cm,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조각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리고 본업인 조각가로 되돌아갔다. 약 25년이 흘러 환갑이 된 그에게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 1468~1549)는 선대의 클레멘스 7세(Clemens VII, 1478~1534)가 계획했던 대로 서쪽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6년의 작업 끝에 1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벽면에 온갖 인간의 형상을 망라한 391명의 육체의 군상이 드러났다. 해부학에 정통하고 원래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만이 해낼 수 있는 대작이 탄생한 것이다. 이로써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와 천장화로 『성경』을 회화화하는 거대한 작업이 완성되었다.

그림 속 나체에 기저귀를 채워야 했던 웃지못할 에피소드

〈최후의 심판〉은 1541년 10월 31일 모든 로마 시민의 찬탄 속에 공개되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처음에는 모두 나체였다. 나체가 불경하다고 시민들과 교회의 권력자들이 아우성을 쳤으나 미켈란젤로는 대가의 카리스마로 꿋꿋하게 버텼다. 그러나 1564년 교황 비오 4세(Pius Ⅳ, 1499~1565)는 나체의 부끄러운 부분을 모두 덧칠로 가리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연로한 미켈란젤로가 움직이지 않자 그의 제자인 다니엘레 다 볼테라(Daniele da Volterra, 1509~1566)가 나체에 기저귀(!)를 채우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브라게토네'(Braghettone : 기저귀를 채우는 사람이라는 뜻)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행히도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제자 마르첼로 베누스티(Marcello Venusti, 1515~1579)가 덧칠하기 전의 작품을 모사해 놓아서 후대에 원작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미켈란젤로는 모든 이들의 반대 속에서 왜 나체로 그렸을까? 그는 원래 조각가다. 또한 신앙심이 깊은 그는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남자의 육체를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대작 〈천지창조〉에서도 하나님의 육체를 근육질을 한 남자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아담의 남성 육체로부터 여성인 이브가 만들어 졌다. 그래서일까. 가장 이상적인 남성상을 구현하기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그림을 살펴보면,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남자라도 젖이 꽤 크며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한다. 또 그의 신앙심으로 볼 때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죄성이 없는 순수한 나체였다. 따라서 성인들과 사도들을 모두 나체로 표현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이 창조한 원래의 인간상으로서 순수한 나체여야 했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에게 죄악의 기저귀를 다시 채우고 말았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교회의 불만은 나체말고도 있었다. 〈최후의 심판〉에는 기독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이 다수 등장한다. 즉 이교도적인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최후의 심판〉 중 지옥왕 미노스 부분도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미켈란젤로의 높은 교육 수준이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틀림없이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가 쓴 『신곡』을 읽었을 것이고 〈최후의 심판〉 안에 그 영향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나타난 것이다. 오른쪽 최하단에 지옥으로 쫓겨가는 지옥으로 쫓겨가는 악인들의 군상이 나오는데 그 중 당나귀 귀를 한 지옥왕 미노스를 거대한 뱀이 휘감고 있고 그의 성기를 깨물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지옥왕 미노스는 『신곡』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그 얼굴이 교황의 의전관 비아지오 다 체세나(Biagio da Cesena)의 얼굴과 닮았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최후의 심판〉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 교황이 의전관 체세나를 대동하고 미켈란젤로의 작업장을 찾았다. 그 때 체세나는 교황에게 이 그림들의 나체가 심히 불경하여 성당보다는 공중목욕탕에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그를 지옥에서 가장 나쁜 악인인 미노스의 얼굴로 그려 넣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것을 알게 된 체세나가 교황에게 그 얼굴을 바꾸도록 명령해 달라고 부탁하자, 교황이 "자네를 연옥(煉獄)각주1) 에 넣었다면 내가 부탁해서 구원해 내겠지만 이미 지옥에 있는 이상 어떻게 옮길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교황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가 메디치가에 있을 때부터, 즉 자신이 교황이 되기 전부터 미켈란젤로를 상당히 좋아하고 그를 언제나 힘껏 밀어 주었다. 그의 그림에 기저귀를 채운 것도 다음 교황인 비오 4세 때의 일이다.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상징과 비유

〈최후의 심판〉 정중앙에서 약간 윗부분을 보면, 예수가 오른팔은 높이 들고 왼손을 내리 누르는 동작을 하고 있다. 예수의 심판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즉, 오른손으로 의인을 천국으로 올리고, 악인은 왼손으로 지옥으로 내리는 지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육체는 전통적인 표현 양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수염도 없이 운동선수 같은 근육질로 예수를 그린 것은 미켈란젤로가 처음이다.

〈최후의 심판〉 중 예수와 성모 마리아 부분도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 중 바르톨로메오 부분도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예수 바로 곁에 고개 숙인 여인이 성모 마리아다. 이는 치마를 파란색으로 칠한 것, 즉 '울트라마린'이라는 염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성모의 얼굴은 미켈란젤로가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페스카라 공작의 아내인 비토리오 콜로나(Vittorio Colona)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당시 미켈란젤로가 콜로나를 연인으로 사랑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의 애틋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미소년 토마소 드 카발리에(Tomaso de Cavalier)였다. 다 빈치와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도 동성애의 의혹을 받았다.

예수 바로 아래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산채로 살가죽을 벗겨내는 형벌로 순교했다는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 사도다. 오른손에는 피부를 벗길 때 사용한 칼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벗겨진 살가죽을 들고 있다. 그런데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 살가죽의 얼굴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이다. 아마도 최후의 심판 때 자신도 이런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켈란젤로는 화면 맨 위 왼쪽에 십자가를 든 군상을 형상화 했다. 예수를 채찍질했던 기둥을 든 오른쪽 군상과 대조를 이룬다. 예수 아래 중앙에는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의 일곱 명의 천사들이 나팔을 불며 마지막 심판을 알리고 있다.

〈최후의 심판〉 중 십자가와 군상 부분도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 중 기둥과 군상 부분도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 중 일곱 천사 부분도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울트라마린과 시트라마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도 미완성 작품이 많다. 다 빈치는 다양한 사물을 향한 과도한 지적 호기심으로 인해 회화 작품을 완성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작품을 온전하게 완성하지 못한 예가 왕왕 있었다. 〈그리스도의 매장〉이 바로 그러한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품 가운데 하나다.

미켈란젤로는 〈그리스도의 매장〉 오른쪽 하단에 누군가를 그려 넣기 위해 빈자리를 남겨 놓았다. 아마도 성모 마리아를 그리려는 자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왜 성모 마리아를 그리려는 자리를 비워두었을까? 성모 마리아의 얼굴 모델을 찾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아니면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는데 꼭 필요한 파란색 울트라마린 안료를 구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그만큼 울트라마린은 비싸고 귀한 안료였다.

청금석(靑金石)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울트라마린의 어원은 '바다'(marine), '멀리'(ultra)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울트라마린의 원료는 청금석(라피스 라즐리 : Lapis Lazli)각주2) 인데, 당시에는 바다 건너 저 먼 동방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질 좋은 청금석이 나온다고 알려졌다. 이 청금석은 황금 다음으로 비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와 비슷한 색을 다른 광석에서 찾거나 다른 방법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성모 마리아를 채색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좀 더 싼 파란색 안료인 아주라이트(azurite)를 사용했을 것이다. 아주라이트는 남동석이라는 광석에 함유돼 있다. 보통 구리 광산에서 발견되곤 하는데, 유명한 녹색 안료인 말라카이트와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같은 파란색이라도 아주라이트는 약간 녹색을 띤다. 그 당시 아주라이트는 울트라마린에 비하면 값이 매우 쌌다. 유럽 본토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라이트는 울트라마린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트라마린(citramarine)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미켈란젤로, 〈그리스도의 매장〉, 1510년, 나무에 템페라, 159×149cm,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주라이트는 안정성이 떨어져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어 칙칙해진다. 〈그리스도의 매장〉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옷 색은 칙칙한 갈색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막달라 마리아의 옷 색은 원래 청색이었는데 변색해서 갈색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켈란젤로는 성모 마리아를 값이 싼 아주라이트로 칠할 수는 없어서 그 자리를 비워 놓은 게 아닐까? 〈최후의 심판〉 속 예수 옆에 자리한 성모 마리아의 파란색 치마가 필자인 화학자의 눈에 유독 강렬하게 들어온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Daum백과] 〈최후의 심판〉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