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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 이후로 이루어진 여신에 대한 신화적 비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래 태모신이었지만 사랑의 여신이나 달의 여신, 전쟁의 여신 등으로 분화된 여신들의 위상은 부권사회가 대제국 형태를 띠면서 더 축소, 강등된다. 특히 사랑의 여신으로 추앙받던 여신들의 경우는 그 강등과 비방의 정도가 더 심해서 로마시대 후기에 이르자 아프로디테 여신의 위상을 계승한 비너스나 메소포타미아의 이슈타르 여신, 시리아의 아스타르테 여신은 창녀들의 여신으로 바뀌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사랑의 여신들은 주로 하늘의 금성과 연관된다. 알다시피 금성의 영어 명칭은 비너스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금성을 이슈타르-이난나라고 불렀다. 이슈타르의 상징 중 하나가 아홉 개의 꼭짓점을 가진 별이다. 그런데 금성의 다른 이름 중에 하나가 ‘루시퍼(Lucifer)’였다고 한다. ‘루시퍼’는 ‘빛’을 뜻하는 ‘룩스(lux)’에 ‘가져오다’라는 뜻의 ‘페레(ferre)’가 합쳐진 말이다. 다시 말해 ‘루시퍼’는 ‘빛을 가져오다’라는 뜻이며 샛별을 뜻하는 라틴어였다. 말하자면 이슈타르이자 아프로디테가 루시퍼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루시퍼’를 악마라고 알고 있는 걸까?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로마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되면서 지중해 지역에 폭넓게 퍼져 있던 다신교 신앙체계와 심각한 갈등을 빚는다. 무엇보다도 교부들의 골칫거리는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여신숭배 관습이었다. 기독교는 여성의 관능을 죄의 근원으로 자리매김한 종교였고 이브에 대해서 그랬듯이, 관능적 사랑의 여신들에 대해 아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십 개의 젖가슴을 지닌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나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떠받치고 당당하게 서 있는 이슈타르의 모습은 이들에게 불편하다 못해 악마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눈엣가시 같은 여신숭배를 뿌리 뽑을 수 없던 이들은 지중해 지역에서 숭배받는 여신들의 이런저런 면모를 끌어모아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성모 마리아는 사랑의 여신처럼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지만 남성과 몸을 섞은 적이 없고, 이브처럼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으며 결혼했는데도 페르세포네처럼 영원한 처녀로 신의 아들을 낳는다. 또한 아프로디테처럼 연인과 같은 아들을 잃고 슬퍼하며 이집트의 사랑의 여신 이시스처럼 아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아들의 성스러움을 뒷받침해 주며 이슈타르처럼 빛나는 존재가 된다. 르네상스시대의 이러한 이미지 합성은 더욱 심해져서 마리아의 머리 위에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에로스가 그려지고 마리아는 아프로디테와 완전히 동일시된다.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 기원전 600~400,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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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이미지는 사랑의 여신이 가진 요소 가운데 가부장적 일신교가 불편해 하는 요소를 모두 뺀 나머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증오한 부분이 바로 관능이었다. 그들에게는 남성의 내면에 자리 잡은 성욕이 아마도 골칫거리였던 듯싶다. 금욕을 통해 신성에 이르고자 하는 시도는 중세의 기독교뿐만 아니라 축의 시대 이후 대부분의 남성 종교가 지니고 있는 공통점이다. 감각적 쾌락은 그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세계의 실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를 무력화하기 일쑤였다. 플라톤과 피타고라스가 몸담았던 오르페우스 신비종교도 그러했고, 이시스를 모셨던 이집트 신비종교도 그러했다. 세계의 실상을 보고자 하는 자는 모든 감각적 유혹을 물리쳐야 했고 그중 마지막 시험이 바로 관능의 유혹이었다. 일정 기간 동안 감각적 쾌락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먹고 마시고 잠자는 모든 욕구를 포기함으로써 이전에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던 세계에 눈뜨는 것은 신비종교의 입문자와 샤먼의 필수 코스다.

문제는 그들이 정해 놓은 자의적인 규범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참고 억제하는 것들을 악마적인 것으로 볼 때 생긴다. 일종의 자기 그림자의 투사일 뿐이다. 남성의 그림자 역할을 떠맡은 것은 짐작하듯이 여성들이었다. 이러한 투사가 집단적인 방식으로 긴긴 시간 동안 역사의 긴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많은 여성이 희생자 역할을 떠맡아 왔다. 그들은 어머니의 몸을 통해 태어나면서도 어머니의 관능은 인정하지 않고 싶어 했다. 여성의 관능은 그들을 타락시키는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일종의 정신분열증이다. 자기 몸의 근원을 스스로 부정하고 자신을 몸과 분리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서구사회를 지탱시킨 몸과 정신은 다르며 정신을 구하기 위해 몸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논리는 인간 자신의 정신을 구하기 위해 자연을 마음대로 훼손시켜도 좋다는 논리로 탈바꿈하지 않았던가.

길가메시가 이슈타르에게 퍼부은 저주는 오랫동안 대물림되어 오늘날까지도 남성 영웅들은 어머니 여신의 몸인 자연에 저주를 퍼붓고 나무를 무더기로 뽑아내고 산을 없애고 강과 바다를 유린한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이어진 유럽의 마녀사냥은 과거의 태모신들을 악마적 존재로 여기는 남성적 신경증이 폭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자그마치 600만 명의 여성이 학살당했다.

자연을 어머니 여신의 몸으로 여기고 숭배하는 여성을 모두 악마와 내통한 자라고 여겨 고문하고 불태웠다. 마을마다 자리 잡고 있던 약초전문가와 산파와 민간요법치료사 들은 모두 마녀로 몰려 학살당했으며 이러한 남성 성직자들의 히스테리가 불러온 재난은 마을 외곽에 홀로 살고 있는 여성이나 미모의 젊은 과부 들에게도 닥쳤다. 마을과 떨어진 곳에 홀로 살고 있는 여자는 분명 개나 늑대로 변신한 악마와 내통하고 있을 것이며 미모의 젊은 과부는 마을의 결혼한 남자들을 유혹한다고 여겨서다. 과거 태모신의 후예에게 모두 마녀 딱지를 붙여 학살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쯤 되면 대충 짐작이 가실 것이다. 이슈타르의 별칭인 루시퍼가 왜 악마의 이름이 되었는지. 이슈타르적인 것은 악마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그녀의 다른 이름인 루시퍼는 악마의 이름이 되었다.각주1) 루시퍼가 악마의 이름이 되면서 금성의 날인 금요일의 의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로마인들은 비너스의 날인 이 날에 축제를 즐겼고 메카의 이슬람인들은 이날을 회합의 날로 여겼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이 날은 방탕한 날로 여겨졌고 급기야는 아담이 악마에게 굴복한 날, 예수가 단식 끝에 악마의 유혹을 받은 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라고 여겨졌다.

악마로 낙인찍힌 ‘루시퍼’, 금성은 밤하늘에서 누구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아주 밝은 별이다. 우리말로 ‘샛별’, ‘초저녁별’로 불리며 한자로는 ‘태백성(太白星)’이라 한다. 이른 새벽 해가 뜨기 전에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올라 태양빛이 밝아지면서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태양이 질 때쯤 서쪽 지평선 위로 떠올라 초저녁 하늘을 밝게 비춘다. 샛별을 자세히 보면 초승달처럼 보인다고 한다. 마치 또 하나의 작은 달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은 이 별이 일곱 달 반 동안은 아침에 뜨고 다시 일곱 달 반 동안은 저녁에 떠오른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이슈타르가 일곱 개의 관문을 거쳐 에레슈키갈의 영토에 이르고 다시 일곱 개의 관문을 거슬러 지상으로 올라오듯이 ‘루시퍼’의 별 역시 그러하다.

일곱은 이슈타르를 비롯해 처녀 여신을 상징하는 숫자다. 이슈타르가 일곱 개의 관문을 오르내릴 때 그녀는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자기 변형을 이룬다. 페르세포네도 마찬가지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상징이자 헤카테 여신의 상징이던 달도 7일이 두 번 지나면 반대 방향으로 기운다. 하늘의 달력 주기는 28일이고 그 주기를 반으로 나누는 지점은 보름달이 떴을 때다. 달의 순환주기를 또 한 번 나누면 7일을 한 묶음으로 하는 주일 개념이 생겨난다. 한 달은 7일이 네 번 반복되는 동안이다.

조르주 루오, 〈아침별〉,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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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타르 여신의 별인 금성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면서 동쪽 하늘과 서쪽 하늘을 오가듯이 오랫동안 여신의 상징이던 달 역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달 역시 ‘빛을 가져오는’ ‘루시퍼’다. 금성이 변덕을 부리듯이 달도 변덕을 부리며 달이 변화하는 때를 맞춰 여성은 월경을 하고 물고기와 바다 생물 들은 몸을 부풀리고 짝짓기를 한다. 우리 몸속에서 흐르는 바닷물인 붉은 피는 달의 움직임을 따라 여성의 몸을 부풀리기도 하고 쭈그러들게도 만든다. 배란기에 여성은 아름다워지며 목소리 톤은 높아진다. 월경이 끝날 때쯤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낮아진다. 황소의 뿔은 초승달 모습으로 자라며 개와 늑대는 보름달이 뜨면 달을 보고 울부짖는다.

달이 사라진 사흘 밤 동안 세상은 어둠에 잠기고 오직 하늘의 천장에 매달려 있는 먼 별무리들만이 빛을 밝힌다. 달이 사라지는 사흘은 여신이 지하세계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기간이다. 여신이 지하세계로 내려갈 때 우리의 마음 역시 저 너머 어둠 속으로 내려간다. 현대 심리학자들이 무의식이라 부른 어두운 영토 말이다. 하데스의 영토, 에레슈키갈의 영토는 바로 무의식의 영토이기도 하다.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어둠에 싸여 있는 곳, 그래서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금단의 땅 그리고 죽음의 땅이기도 한 곳, 그곳이 무의식의 영토다. 거기서 모든 것이 비롯되지만 동시에 형태를 갖추고 명료하던 모든 것이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면 약속의 반지처럼 달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또 한 번 빛의 여정을 시작한다.

여신이 사라지는 그곳은 악마적인 곳이 아니라 생명의 고향이다. 자아와 비자아의 경계가 모호한 곳, 나를 구성하고 나를 대표하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는 곳, 이슈타르가 옷과 보석을 모두 벗어 버리고 맨몸으로 거꾸로 매달려 있어야 했던 곳이 바로 그곳이다. 우리가 의식 속에서 나의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뿐만 아니라 낮의 의식으로 정립해 놓은 모든 의미가 뒤집혀져 좋은 것과 나쁜 것, 피해야 할 것과 받아들여야 할 것 등등이 정반대로 뒤집혀 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종의 혼돈 상태로 보이기도 하는 그곳에서 모든 마음과 모든 생명이 비롯된다. 그곳이 바로 페르세포네, 코레의 영역이다. 페르세포네가 지상과 지하를 오가면서 함께 움직이는 것도 바로 그 힘이고 이슈타르가 지하세계에 가서 가져온 것 역시 바로 그 힘이다. 지상의 세계를 화려하게 물들이는 어두운 생명의 힘 말이다.

개인은 죽음의 세계에서 이쪽 삶의 세계로 옮겨와 다시 저쪽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태양을 실은 배가 하늘을 움직이듯이 동쪽 해안에서 하늘로 떠올라 다시 서쪽 세계로 귀환한다. 태양을 실은 배는 서쪽 수평선 끝으로 사라져 어둠 속을 여행한다. 태양의 밤바다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저승을 여행하고 언젠가 다시 태양이 동쪽 끝에서 얼굴을 내미는 아침이 되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밤바다 여행은 이승의 삶이 완전히 끝나는 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태양배의 여행이 매일 반복되듯이 우리도 밤마다 밤바다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조금 더 큰 주기 속에서도 밤바다 여행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있다.

융과 캠벨은 인간의 삶이 해와 달 그리고 지구가 움직이듯이 원형의 주기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그라미를 넷으로 나누면 달이 변화하는 한 달이 나누어지듯이 네 국면을 지닌다. 태어나는 달처럼 성장하는 시간, 만월처럼 빛을 발하는 시간, 지는 달처럼 어두운 그림자에 흡수되는 시간 그리고 검은 달의 시간. 우리의 삶은 빛나는 달과 검은 달의 영역이 항상 함께한다. 검은 달의 영역인 무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친구처럼 우리 옆에 또는 그림자처럼 우리 뒤편에서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곧 나의 다른 모습이다.

융은 무의식의 영역을 끌어안아 의식화하는 것이 성장이라고 보았다. 무의식의 영역을 끌어안는다는 것은 나의 어둠을 끌어안는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용납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나의 어둠이다. 여신의 아들이던 영웅들에게 어둠은 정복되어야 하는 것, 파멸되어야 하는 것,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들을 낳은 여신의 영역이 사라지면 그들도 자취를 감춘다. 오랫동안 아들들이 꿈꾼 태양만이 빛을 발하는 세상은 이미 그 빛에 피로해지고 있지 않은가. 여신의 어두운 힘은 우리가 그녀를 끌어안아 그녀와 하나가 될 때 사랑에 대한 자각으로 변한다. 고대인들이 소피아 여신이라고 추앙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소피아 여신은 검은 얼굴의 여신, 검은 마돈나다.

고대 입문제의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 여신이 바로 이 검은 얼굴의 여신이었다. 엘레우시스 미스테리움이나 이집트 사제들의 입문제의였던 이시스 제의, 이슈타르 여신을 위한 신성결혼(Hieros gamos) 등이 모두 그러하다. 아시리아(Assyria) 사람들은 이슈타르에게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저로 하여금 날마다 행복과 만족을 느끼게 해 주소서! 제가 당신을 경배하오니 저에게 건강과 기쁨을 허락하소서! 제가 원하는 것을 저로 하여금 얻게 해 주소서! 하늘이 당신을 기뻐하고 바다는 당신 위에서 마구 뛰노나니! 우주의 신들이 당신을 축복하기 바라옵니다! 위대한 신들이 당신에게 쾌락을 선사하기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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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에케하르트 토너 · 게르노트 로터, 《비너스, 마리아, 파티마》, 신철식 옮김, 울력, 2001, 206쪽, 221쪽.
  • ・ Starhawk, The Earth Path, Harper Collins, 2004, pp.23~24.

김융희 집필자 소개

저자 김융희는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홍익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7년 동안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화와 상상력, 예술철학 등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는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펼쳐보기

출처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 저자김융희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신화와 상상력 등의 주제를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미학자 김융희.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면서 보여 준 매혹적인 내용 그대로 ‘신들의 이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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