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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타르 대신 지하세계로 붙들려 간 탐무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탐무즈는 양치기들의 신이라고 하며 고대 수메르에서는 두무지라고 불렀다. 이슈타르의 지하 하강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그녀가 지하로 내려간 것이 탐무즈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지하세계의 여왕인 에레슈키갈이 탐무즈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가 결국 저승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슈타르가 붙들려 간 탐무즈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갔다는 말이 된다.

이 이야기는 어쩐지 죽은 아내를 구하러 저승으로 여행을 떠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오르페우스 역시 뱀에 물려 죽은 젊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저승행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가 저승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던 것은 그가 연주하는 칠현금의 음악 소리 덕분이었다. 그의 연주 솜씨는 저승의 문을 지키고 있는 무시무시한 개 케르베로스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실어 나르는 저승의 뱃사공 그리고 이미 죽어 울부짖는 혼령들까지도 감화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음악의 힘으로 저승의 왕인 하데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아내를 다시 이승으로 되돌려 보내 준다는 허락을 얻어 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아내는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저승의 어두운 길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어겼기 때문이다. 어두운 아래쪽에서 메아리쳐 들려오는 온갖 목소리가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고 그는 결국 최초의 햇빛 자락이 멀리서 비치자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만다. 에우리디케(Eurydice)는 다시 지옥의 나락 속으로 굴러 떨어졌고 오르페우스는 상실감과 후회에 슬퍼하다 디오니소스의 여신도인 마이나데스들에 의해 찢겨 죽게 된다.

알렉상드르 쎄옹, 〈오르페우스의 통곡〉,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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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된 이슈타르 이야기 속에서는 저승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슈타르를 구하러 에아 신이 한 방랑가객을 보내 에레슈키갈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내용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슈타르 이야기에 오르페우스 신화가 섞여 든 것 같다. 사실 그리스 신화보다 수메르 신화가 더 오래되었고 그리스 신화의 많은 부분이 주변 나라인 바빌로니아나 이집트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이슈타르와 탐무즈 이야기가 그리스로 가서 만들어진 것이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Adonis) 이야기다.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가 사랑한 젊고 잘생긴 양치기였고 여신은 인간인 그의 안부가 늘 불안했다. 걱정이 사건을 부른다고, 아도니스는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멧돼지 뿔에 받혀 죽고 만다. 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채로 쓰러져 있는 아도니스를 붙들고 여신은 울부짖었다. “너는 인간이라 죽을 수밖에 없지만 나는 너를 보내지 못하겠다. 네가 쓰러져 죽은 자리에 해마다 너의 피처럼 붉은 꽃이 피어나리라. 한 번 바람이 불면 피지만 또 한 번 바람이 불면 지는 꽃, 아네모네(anemone)라 부르리라!” 아도니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은 저승의 여왕인 페르세포네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의 여신에게 사랑을 받은 양치기인 아도니스의 이름은 ‘아돈’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돈’은 시리아에서 주님이라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멧돼지는 아돈의 신성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멧돼지에 받혀 죽었다는 아도니스는 사실 일종의 와전이다. 그러나 와전은 신화가 가지는 고유의 속성이다. 신화는 와전을 거쳐 변형된다. 그리고 변형의 주체는 신화를 말하고 듣고 전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두 신화 모두 사랑의 여신과 아들 같은 연인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의미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고대 여신들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원래 이 세상에 처음으로 생겨난 신은 모든 것을 말로 창조하는 야훼도, 번개를 휘두르는 제우스도 아니다. 최초의 신은 남신이 아니라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신을 상상하면서 처음으로 떠올린 이미지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다. 우리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크고 강력하면서도 사랑의 힘으로 충만해 있는 신의 존재를 상상해 냈다.

여신들의 이름으로 숭배받던 사랑의 힘은 세상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고 움직이게 하며 변화시키는 근원적이고 위대한 힘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대로 좌지우지되는 힘이 아니었다. 그 힘은 알 수 없는 끌림에 의해 찾아왔다가 다시 알 수 없는 바람에 이끌려 멀리 사라져 버린다. 사랑이 찾아오면 모든 것은 생기를 되찾고 기쁨에 노래 부르지만 사랑이 떠나면 고독과 고통과 황량함이 세상을 휩쓴다. 그러나 사랑은 아주 사라지는 법이 없어서 어느 날 예기치 않은 때에 다시 찾아들어 잊고 있던 행복을 다시 가져다주기도 한다. 모든 것은 사랑의 힘을 주관하는 인간 너머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고 힘의 근원은 당연히 여성이었다. 모든 암컷은 사랑을 통해 새끼를 잉태하며 낳고 기른다. 그녀들의 사랑이 세상에 기쁨과 풍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태초의 어머니 여신의 모습은 그리스 신상들이 보여 주듯이 우아한 아름다움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이난나-이슈타르만 해도 올빼미의 발톱과 날개, 양손에 뱀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며 에페소스(Ephesos)에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열 개가 넘는 젖가슴을 포도송이처럼 늘어트린 모습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메르의 태초의 여신 티아마트(Tiamat)는 거대한 바다용 모습을 하고 있다. 태초의 어머니 여신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낳고 기르며 다시 거둬 가는 힘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여신은 자연의 힘 그 자체다. 따라서 그녀는 자연이 그러하듯이, 때로는 따스한 바람과 꽃향기와 탐스러운 열매로 나타나지만 때로는 사나운 동물의 울부짖음으로도, 비바람으로도, 동식물의 생명을 앗아가는 폭풍우나 산불로도 나타날 수 있다.

에페소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 1세기,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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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여신으로 각인된 이슈타르나 아프로디테 여신은 실은 자연의 모든 생명을 움직이는 통합된 어머니 여신이었다. 태초의 여신들은 어떤 특정 분야만 담당하는 분화된 존재가 아니었다. 자연이 지닌 이중적 면모를 모두 통합한 신성이었고 그 통합된 힘의 이름이 사랑인 셈이다. 분화된 신격으로서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여신이면서도 마치 사랑이 우주의 여러 부분 가운데 하나라는 인상을 준다. 왜냐하면 나머지 다른 여신들이 제각기 자신만의 독자적인 지배영역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면서 사랑 역시 여러 다양한 기능 중에 하나로 보이는 것이다.

태초의 어머니 여신은 근원적으로 사랑의 여신이다. 그리고 그녀의 사랑이 이런저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뿐이다. 이슈타르는 사랑의 여신이면서 동시에 전쟁의 여신이다. 이시스는 사랑의 여신이면서 암소들의 여신이며 모든 파라오의 어머니신이다. 아르테미스는 사냥을 즐기는 신경질적인 처녀 여신으로 그려지지만 원래는 에페소스 지방의 태모신이었다. 그녀 역시 사랑의 여신이자 어머니 여신이다. 모든 여신은 낳고 기르고 다시 거둔다.

왜 아르테미스나 아테네를 처녀 여신이라고 할까? 처녀를 뜻하는 ‘버진(virgin)’은 결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가부장제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여자, 누구의 여자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슈타르 역시 처녀 여신이며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의 부인이면서도 영원한 처녀를 뜻하는 ‘코레(Kore)’로 모셔진다. 예수를 낳은 마리아 역시 성처녀 아닌가. 모든 어머니 여신은 성스러운 처녀다. 성스러운 처녀이자 성스러운 어머니 여신인 사랑의 여신들은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키프로스 섬에서는 아프로디테로, 에페소스에서는 아르테미스로, 그리스에서는 아테네로, 시리아에서는 아스타르테로, 이집트에서는 이시스로 불렸다. 그녀들은 각자 다른 신이 아니라 하나의 태모신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사랑의 여신이자 태모신이던 아프로디테가 사랑만을 주관하는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정리된 것은 제우스라는 번개를 휘두르는 남신이 올림포스 신전 중심 신들의 권좌의 왕이 되고 난 이후의 일이다. 신화 계보에 따르면 그녀는 제우스의 할머니뻘이 된다. 모든 것을 주관하는 여신의 자리에서 강등되어 축소된 아름다움의 여신으로, 나중에는 급기야 창녀들의 여신으로 추락하고 마는 신세가 된다. 이와 같은 여신의 추락은 가부장제의 발달과 함께 벌어진 사랑과 자연에 대한 지위 하락과 관계가 깊다.)

그녀가 낳은 것들 중에 하나가 인간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미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는 여신의 이야기가 즐비하다. 어머니 여신은 아들을 낳고 그의 연인으로 변신한다. 그녀가 연인으로만 변신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연인의 생명을 앗아가고 그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악녀로 변신하기도 한다. 여신과 그의 연인으로서 아들 이야기는 사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것은 그저 큰 생명이 작은 생명들을 낳고 품고 기르고 다시 자신의 자녀들과 연결되고 합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해야 한다.

탐무즈의 희생이나 아도니스의 희생은 어머니 여신이 낳은 자식들을 다시 거둬 가고, 거둬 간 자식들을 다시 되돌려 준다는 이야기다. 탐무즈는 때가 되면 이슈타르의 영토에서 떠나 에레슈키갈의 영토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적당한 때가 되면 또 다시 지상의 이슈타르 품으로 되돌아온다. 여신의 아들인 탐무즈를 두 여신이 나눠 가지는 셈이다. 아니 거꾸로 여신의 아들이 어머니 여신의 두 면모를 번갈아 경험하는 것이다. 사실 이 두 여신이 한 여신의 두 얼굴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신화 속에서 자매나 모녀 관계로 그려지는 신은 모두 하나의 자연이 지닌 두 얼굴을 나타낸다. 이슈타르가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하늘 아래 세상을 움직인다면 에레슈키갈은 어둡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땅속 세계를 움직인다. 지상과 지하로 그려지는 두 세계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이 전체로서 한 사람의 다른 측면인 것처럼 사실은 하나다. 그녀의 자식들이 이 두 세계를 오가는 것이다.

비슷한 구조를 가진 또 하나의 신화가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신화다. 밀의 여신인 데메테르는 전형적인 태모신 중에 하나다. 그의 딸인 페르세포네는 어느 날 지하세계의 왕인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그의 신부가 된다. 갑자기 사라진 딸을 찾느라 데메테르 여신은 거의 혼이 나갈 지경이 되었다. 아무도 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데스 역시 에레슈키갈만큼 두려운 존재여서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은 것이다. 갑자기 딸을 잃어버린 데메테르는 사방을 찾아 헤매지만 딸을 찾을 수 없었다. 시름에 빠진 데메테르는 들판을 보살피지 않았고 그러자 밀은 시들고 과일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외딴 곳에서 밤을 지키던 달과 마법의 여신 헤카테의 귀띔 덕분에 사실을 알게 된 데메테르는 딸을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하지만 딸을 완전히 되찾아 올 수는 없었다. 페르세포네는 지하세계에서 석류 세 알을 먹은 대가로 1년 중 석 달은 지하세계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지하세계의 여왕으로 있어야 하는 석 달 동안 데메테르는 하데스에게 딸을 빼앗긴 슬픔에 젖게 되고 그 석 달 동안 지상의 초목은 모두 말라붙어 황량한 계절이 되고 만다. 딸이 다시 땅 위로 올라오면 데메테르는 기쁨에 가득 차게 되고 여신의 기쁨은 대지를 부활시킨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여신들의 지하세계 하강과 지상으로 귀환 신화는 농경시대 이후 생겨난 식물의 생장과정과 관계가 깊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밀을 주식으로 하는 지중해 지방에서 한여름은 너무 더워 모든 것이 말라죽고 만다. 이때가 바로 데메테르가 딸을 잃고 슬퍼하는 기간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줄 알았던 딸은 한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다. 이때 데메테르는 잃어버린 딸과 다시 재회하고 그녀의 기쁨과 함께 지상의 모든 것이 생기를 되찾는다.

페르세포네와 데메테르 이야기는 특히 그리스 지방에서 오랫동안 거행되던 신비제전의 주제였다. ‘테스모포리아(Thesmophoria)’ 또는 ‘엘레우시스 신비제전’각주1) 이라고 부르는 데메테르 제전에서는 참가자들이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우주적 의미를 실제 체험하고 삶을 다른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엘레우시스 제의는 말 그대로 미스테리움(mysterium), 말하자면 비밀제의였다. 참가자들이 보고 듣고 체험한 것 들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제의의 자세한 내용은 아직도 어둠에 잠겨 있다. 그러나 밝혀진 자료들에 따르면 제의는 크게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코레의 ‘지하 하강’, 두 번째는 데메테르 여신이 딸을 찾아 헤매 다니는 ‘방랑’, 세 번째는 코레의 귀환과 데메테르 여신과의 ‘재결합’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트립톨레모스(Triptolemos)라는 아들이 태어난다. 그는 그리스에 밀 재배 방법을 알린 신적인 존재라고 한다.

데메테르와 코레 사이의 트립톨레모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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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단계는 지중해 지방에서 밀이 땅 속으로 들어가 여름을 보내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싹을 틔우는 과정을 나타낸다. 가을에 다시 들판이 밀로 뒤덮이기 위해서 밀의 씨앗은 땅속으로 내려갔다 올라와야 한다. 엘레우시스 제의는 나중에 디오니소스 제의와도 겹쳐지는데, 포도가 포도주가 되기 위해 땅속에서 숙성기간을 거치는 과정과 밀의 생장과 발육 과정이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리아에서 아도니스의 죽음이나 바빌로니아에서 탐무즈의 지하 하강 역시 이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7월을 탐무즈의 달이라고 부른다. 탐무즈가 지하세계로 내려가 지상에서는 모든 것이 말라죽어 버리는 달인 셈이다. 이때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탐무즈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페르세포네가 다시 지상으로 귀환하듯이 탐무즈도 때가 되면 다시 부활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와 가뭄도 때가 되면 사라진다. 여신이 돌아오면 또는 여신이 사랑하는 연인이 돌아오면 여신은 생기를 되찾고 지상의 생명도 기쁨으로 채워진다. 활기와 사랑과 풍요가 되돌아오는 셈이다.

이러한 죽음과 부활의 드라마는 비단 밀의 문제만은 아니다. 엘레우시스 제전이 지니고 있던 힘은 이러한 드라마가 우리의 삶 속에서도 벌어지고 있으며 죽음처럼 보이는 사건이 실은 단순한 사라짐 이상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생겨난다. 페르세포네가 나뉜 두 세계를 오고 갈 때 그녀는 지하세계의 풍요로움을 지상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이슈타르가 지하세계를 방문함으로써 더 강력해졌다는 점을 기억하자. 하데스의 영토, 에레슈키갈의 영토는 겉보기에는 불모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상의 풍요로움이 뿌리내리고 있는 토대다. 모든 식물은 땅속에 뿌리를 박고 있지 않은가. 어둠속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 식물은 자라날 수도, 꽃을 피울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비단 식물뿐만이 아니다. 생명을 낳고 그것에 자양분을 제공해 주는 것은 어둠속에 잠겨 있는 지하세계의 어머니 여신이다.

페르세포네는 지하의 데메테르다. 그녀는 지하세계가 감추고 있는 생명의 뿌리에 자양분을 제공해 준다. 에레슈키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지하의 이슈타르다. 모든 어둠의 여신은 바로 지상에서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풍요를 가능케 해 주는 위대한 신성이다. 그리고 둘처럼 보이는 이들은 실은 하나다. 검은 달과 만월이 달의 두 모습이듯, 새벽에 떠오르는 샛별과 초저녁에 떠오르는 초저녁별이 금성이라는 한 별의 두 모습이듯 자연을 대표하는 어머니 여신은 성나고 노한 모습으로 나타나건 부드럽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건 모두 우주적 사랑이라는 한 힘의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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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세르기우스 골로빈 외, 《세계 신화 이야기》, 이기숙 · 김이섭 옮김, 까치, 2001, 258쪽.
  • ・ Edward A Beach, The Eleusinian Mysteries

김융희 집필자 소개

저자 김융희는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홍익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7년 동안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화와 상상력, 예술철학 등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는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펼쳐보기

출처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 저자김융희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신화와 상상력 등의 주제를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미학자 김융희.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면서 보여 준 매혹적인 내용 그대로 ‘신들의 이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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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어머니 여신과 아들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김융희,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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