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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이 털가죽 하나로 변신하는 이야기는 겉으로 달라 보이는 생명이 사실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톰슨 인디언 이야기가 동물에 대한 존엄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근대 유럽의 옛날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물의 변신은 이와는 격이 좀 다르다. 여러 버전으로 반복되는 늑대인간 이야기에서부터 부엉이나 고양이로 변신하는 못된 마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동물 간에 모습 바꾸기는 왠지 불길한 분위기를 띠는 경우가 많다.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것은 동물의 교활함이고 인간이 동물로 변신하는 것은 저주로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사고방식 속에는 인간을 생태계의 최고 존재로 보는 오만과 더불어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에 대한 멸시 그리고 인간 내면의 부정적인 그림자를 투사하는 무지가 뒤섞여 있다.

한 예로 멀쩡한 인간이 늑대로 변신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저주다. 최초의 늑대인간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먼저 늑대인간이 된 자에게 물려야 늑대인간으로 변한다. 늑대로의 변신이 일종의 감염인 셈이다. 늑대인간에게 물리면 내면에 잠자고 있는 동물적 본성이 슬슬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 본성이 절정에 이르게 되는 때는 보름달이 뜬 밤이다. 물론 늑대로의 변신은 당사자를 고뇌에 빠뜨린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폭력성과 성욕이 야생마처럼 날뛰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항상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이러한 낯선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이를 악문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와 무시무시한 발톱이 몸에서 솟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온몸이 털로 덮이고 완전한 늑대로의 변신이 이루어지면 그는 더 이상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 그는 인간의 적이다.

이안 우드워드,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인간〉, 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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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인간은 보통 총이나 칼로는 죽일 수 없다. 은으로 된 무기가 그를 늑대의 털가죽으로부터 구원한다. 물론 이는 불치의 병이어서 산 채로 그 병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구원은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쯤에서 늑대인간이 드라큘라와 같은 흡혈귀의 일족임을 알 수 있다. 은은 알다시피 독이 닿으면 검게 변하는 금속이다. 늑대인간이 되는 것이 일종의 독에 감염되는 일처럼 여겨지는 셈이다. 드라큘라가 십자가와 은으로 된 정으로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긴 송곳니로 착한 보통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처럼 늑대인간 역시 은제 총알로 생명을 잃기 전에는 저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긴 송곳니와 야행성, 피를 보고 흥분하는 모습, 누군가를 감염시키는 행동 등은 근대 유럽인들이 자기들 문명의 타자로 여기던 이미지였고 이를 대표하는 존재가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생동물이었다. 늑대를 비롯해 박쥐, 올빼미,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어두운 밤과 연관된 동물들에 자신들 내부의 어둠을 투사한 것 같다. 말하자면 불길한 이미지의 동물들은 사실 근대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어두운 그림자의 희생양이다. 16세기 중반부터 시작해서 17세기 중반까지 극심하게 이어진 유럽의 마녀사냥에 더불어 희생된 존재가 수많은 고양이다. 늑대에게 흡혈귀의 이미지를 투사한 것처럼 고양이에게 사악한 여성성의 이미지를 투사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양이가 여성들과 가깝고 밤에 움직이는데다 인간과 함께 살면서도 개와는 달리 복종하지 않는 동물이서였을 테다.

근대 유럽인들이 문명의 타자로 여긴 존재에는 동물, 여성, 밤, 어둠 등이 있다. 반대로 그들 문명의 안쪽에 자리한 주인은 인간, 남성, 낮, 밝음 등이다. 이 이미지들의 연쇄는 무한정 이어질 수 있다. 문명의 안쪽에 자리한다고 여겨지는 것에는 진리, 선, 아름다움 등의 가치가 부여되고 그와 반대되는 것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반대의 가치가 부여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지한 인간의 소아적 투사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바깥 영역에 거주한다고 여겨지는 존재를 지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터부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어떤 동물에게는 착한 이미지를, 어떤 동물에게는 사악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긍정적인 이미지든 부정적인 이미지든 간에 그것은 그 동물이 지닌 특성에 대한 진정한 이해라기보다는 인간의 작은 편견과 무지에서 비롯되는 두려움 때문인 경우가 많다.

어린이를 위한 우화집에 등장하는 늑대 이미지 덕택에 우리는 늑대를 사악함과 교활함의 대명사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 뿌리는 어린 여자아이를 숲 속에서 유혹해 잡아먹으려 하는 〈빨간 모자〉에 등장한 늑대 덕분이다. 아이들은 이 우화 덕택에 늑대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배운다. 두려움은 증오를 낳고 야생 상태의 늑대는 아무런 죄의식도 가지지 않는 인간의 무차별 학살 대상이 된다. 늑대가 되었든 여우가 되었든 고양이가 되었든 인간 내부에 잠들어 있는 그림자의 투사를 받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생명의지에 따라 살고 있는 우리의 동족이 아니다. 〈빨간 모자〉에 등장하는 늑대는 할머니를 사칭한 죄로 뱃속 가득히 돌덩어리들로 채워져 강에 수장당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이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늑대까지 소시지 끓는 물에 빠트려 죽여 버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종결된다. 이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그때 통쾌했을까? 혹시 늑대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없었을까?

월터 크레인, 〈빨간 모자〉 삽입 그림,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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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 것은 서구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도덕률 기준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 신화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본 따 인간을 창조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 위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다”는 말씀이 아무런 여과 없이 의식에 스며들어 다른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는 것이 신이 허락한 인간의 권능인 양 간주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현재 자연보호와 생태계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동물들에게 행해지는 여러 처우에도 이 관념은 그대로 남아 있다. 멸종 위기 동물의 개체수를 늘린답시고 한 집단 안에 살고 있는 동물을 마음대로 다른 집단으로 이주시킨다. 마취총에 맞아 쓰러진 표범 암컷은 자기 가족과 떨어져 처음 보는 동네에서 깨어난다. 곰의 귀에 부착된 위치추적 장치는 인간을 위한 것이지 곰을 위한 것은 아니다. 만약 당신이 표범이나 곰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행태는 지구 생태계의 총관리자가 인간이라는 오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다른 종이 지니고 있는 자연의 생명 의지나 감정은 배려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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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융희 집필자 소개

저자 김융희는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홍익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7년 동안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화와 상상력, 예술철학 등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는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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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 저자김융희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신화와 상상력 등의 주제를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미학자 김융희.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면서 보여 준 매혹적인 내용 그대로 ‘신들의 이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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