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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다. 신들은 누굴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세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신비스런 힘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했다. 태양과 달을 움직이고 바람을 불게 만들며 꽃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힘 말이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생명체가 새로 태어나는가 하면 눈앞에서 팔딱거리던 동물이 숨을 거두고 뻣뻣하게 굳어 가는 것도 목격했을 거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 속에서 일어나는 신비의 근원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신화가 말해 주는 신들의 이야기는 세상 속에 깃들어 있는 이 신비스러운 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러한 신령스러운 힘들을 ‘스피릿(spirit)’이라는 개념으로 통칭했다.

스피릿은 정신, 영혼, 정령, 정기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지만 굳이 이를 쓰지 않고 그냥 스피릿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말을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어로 번역했을 때 뒤따르는 수많은 오해 때문이다. 그는 이 스피릿의 차원이 꿈의 차원이며 동시에 신화적 차원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세계가 온통 스피릿으로 꽉 차 있는 것으로 경험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집 안에 수많은 신이 함께 살고 있다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집터에는 터줏대감이, 부엌에는 조왕신이, 뒷간에는 정랑각시가 살고 있고 마당 한 구석에 세워 놓은 빗자루에는 가끔 도깨비가 깃들기도 했다. 이 스피릿들은 커다란 구렁이로 변신하기도 하고 두꺼비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스피릿들은 인간 삶의 공간에서 모두 떠나 버렸다. 생명의 기운이 도시에서 점점 고갈되면서부터일 것이다. 스피릿들은 깊은 숲속으로, 산속으로 인적이 잘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 버렸다.

근대 이후에 스피릿 차원은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망각된 것 같다. 오로지 일신교의 신만이 스피릿의 차원을 독점하게 되었고 다른 스피릿은 모두 환상이나 착각의 산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스피릿의 차원이 상식의 세계에서 삭제되고 그 자리에는 합리적 이성만이 유일한 권력을 휘두르는 세계가 자리 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대인은 거의 모두 영혼의 병을 앓고 있는 상태다. 스피릿과 연결된 끈을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현대인이 경험하는 공허와 불안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 스피릿이 오로지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데 더 익숙했던 것 같다. 인간만이 정신적 존재라고 자부한다거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대로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시켜 주는 지점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때 우리는 인간만이 영적 존재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 중심적인 생각은 고상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유아적인 자기중심성에서 나온 환상이다.

〈혹성탈출〉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어찌어찌해 지구에서 인류가 가꾼 문명이 몰락하고 나서 지구는 원숭이 종족이 지배하는 곳으로 변모한다. 원숭이 종족 역시 인류의 자기중심성을 그대로 계승했는지 그들 역시 신을 자기 모습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닮은 신을 숭배한다. 그들 역시 성서에 담긴 이야기를 자신들의 세계 탄생 신화로 받아들이고 산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모습을 본 따 지구의 주인인 원숭이 종족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닮은 신의 초상을 그려 그 모습을 신으로 생각하고 받들어 모신다. 신의 얼굴은 원숭이였다.

우리가 영혼을 지닌 유일한 종이며 그 영혼의 근원은 인간의 모습을 닮은 신이라 생각하고 그 인간적인 신에게 절대자의 칭호를 붙여 모시는 일을 가만히 따져 보면 인간의 자기중심성이라는 테두리 안에 신을 가둬 버린 꼴이나 마찬가지다. 이 사고방식은 인간을 세계와 단절된 존재로 여기고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존재를 인간의 지배대상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진다. 인간을 쉽사리 ‘만물의 영장’이라고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며 다른 생명체는 인간을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생명을 도구화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영적인 존재라는 환상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피릿은 인간만이 독점하고 있는 힘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힘이다. 이 힘은 물론 문화권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한자 문화권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氣)’라는 개념이나 ‘혼(魂)’, ‘영(靈)’ 등의 개념이 모두 스피릿이라는 큰 개념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마나(mana)’라고 부르는 것,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와칸(Wakan)’이라 부르는 것도 모두 그렇다. 이집트인들은 ‘카(ka)’와 ‘바(Ba)’라고 불렀다. 스피릿은 사람과 동물, 나무와 땅, 구름과 바람 속에도 깃들어 있다. 스피릿은 전 생명체의 사슬을 넘나드는 힘이어서 우리 안에도 있고 바깥에도 있다. 이 세상은 다양한 색깔의 스피릿이 상호작용하는 장이기도 하다. 스피릿의 움직임은 사건으로, 현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의 감각기관은 스피릿의 움직임에는 둔감하도록 교정되어온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떤 장소나 존재에게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떠올려 보면, 그때는 나뭇잎의 부스럭거림, 거리를 떠도는 개의 눈동자, 새들의 지저귐에도 뭔가를 느낀 것 같다. 만나는 사람이 어떤 직업을 지녔는지 무엇을 소유했는지 몰라도 그가 밝은지 어두운지, 맑은지 혼탁한지, 슬픈지 기쁜지를 금방 느낀 것도 같다. 하지만 제도권 교육은 우리가 가진 영적 교감능력을 깨워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뿌리를 자르는 쪽으로 진행되어져 왔다. 학교는 느낌보다는 도구적 이성의 사용방식을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해 버린 것 같다. 학교가 느끼고 교감하는 능력보다는 세계를 사용하고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우리가 지닌 영적 감수성은 이상한 능력, 쓸데없는 환상, 지나친 민감함으로 치부되곤 한다.

모든 문화가 꼭 그렇지는 않다. 근대적 사고방식은 전 지구의 보편적 사고방식이라기보다는 지구의 특정 집단이 가지고 있는 견해일 뿐이다. 물론 그 견해가 자본과 국가권력의 힘을 등에 업고 지구의 구석구석에 침투되어 마치 보편적 세계관인 양 가르쳐지고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강한 것이 곧 옳은 것은 아니다. 근대적 사고나 제도가 아직 침투하지 못한 지역 사람들은 ‘마나’나 ‘와칸’이라 부르는 것을 느끼고 신뢰한다. 그것은 환상도 미신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느끼고 체험하며 공유하며 상호작용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의 이름이다.

스피릿들이 자연 속에 두루 퍼져 있을 때 살던 사람들은 스피릿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자연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큰 바위나 큰 산 등이 전형적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보다 크기가 큰 대상에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는 원시종교의 출발이 이러한 영기를 지닌 자연물에 대한 숭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강한 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해석했다. 말하자면 인류가 자신보다 더 센 존재에 대한 복종을 먼저 배웠고 종교는 힘에 대한 복종의 논리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원시종교의 토템을 가부장적 일신교 논리와 연관시켰기 때문에 힘에 대한 복종을 부각시키게 된 것이다. 어떤 나무나 바위나 산을 신성시하는 인간의 심성에는 꼭 강한 힘에 대한 두려움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마나’나 ‘와칸’에 대한 경외심에는 누군가가 그것을 독점하기 이전에 모두가 공유하는 힘이라는 신뢰가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의 부모다. 말하자면 지배와 복종의 논리로 스피릿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보살핌의 상대로 느꼈다는 거다. 산과 바위, 강과 바다, 그 안에 깃들어 사는 모든 동식물의 생명에너지가 ‘와칸’이자 ‘마나’다. 마나는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힘이지만 힘의 정도도 모습도 각각 다르다. 우리는 인격적인 심성과 물리적인 에너지가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두 가지의 실체라는 생각에 더 익숙하지만 신화적 관념 속에서 그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의 신들 역시 그러하다. 한 예로 제우스가 임재하면 거기에는 강한 생명에너지가 깃든다. 제우스는 새 생명을 잉태시키는 남성적 에너지의 힘이다. 제우스는 여성이 아이를 낳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식물의 수가 불어나게도 한다. 제우스의 뿔인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는 바로 제우스가 지닌 이 번식력과 그로 인한 풍요를 상징한다. 하지만 강한 생명력이 꼭 인간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분노한 생명력은 번갯불과 뇌우로 나타나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파괴하기도 한다. 생명력은 선악을 넘어선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스피릿을 불러내고 소통하기 위해 제의를 거행하기도 했다.

신화의 주인공인 스피릿들은 생명에너지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를 만들어 낸 우리 조상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우리처럼 마음을 가진 존재로 느꼈고 바다도 강도 산도 모두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분노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우리는 세상의 자연을 감정도 없고 마음도 없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하지만 말이다.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것을 모두 무감한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는 일종의 소외를 낳는다. 자기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것을 모두 사물화시켜 버리니 말이다. 자연을 사물화시키는 관념은 결국 우리 자신마저도 그렇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신화적 관점은 나와 세계를 모두 감정을 지닌 존재로 여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리처럼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산과 들, 바다와 사막, 내 집 앞 나무 한 그루 역시 그러하다. 모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스피릿은 우리 안에도 있고 바깥에도 있다. 생명을 움직이는 힘이기 때문이다. 스피릿이란 개념을 통해 일신교의 탄생 논리를 추적한 나카자와 신이치는 스피릿의 영역을 크게 세 종류로 구분했다. 우선 우리가 초월적 절대자라고 부르는 지고신(至高神)이 있다. 대체로 우리 자신을 수직적으로 초월해 있는 이미지를 가지므로 하느님으로 불린다. 두 번째는 저세상으로부터 다니러 오는 내방신(來訪神)이다. 이때 저세상은 이편이 아닌 저편, 다시 말하면 다른 차원의 세계이거나 죽음 너머의 세계가 되기도 한다. 천사나 저승사자, 또는 죽은 조상신들이 여기 해당하겠다. 세 번째는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스피릿의 영역으로 우리 삶의 영역에 깃들어 있는 스피릿이다. 숲의 정령이라든가 가택신(家宅神) 들이 해당할 것이다. 우리식으로 치면 산신령이나 삼신할머니, 터줏대감 등이다.

그런데 이 세 유형은 모두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스피릿이다. 나카자와는 《신의 탄생》에서 오늘날의 많은 스피릿이 자연에서 떠나 우리 뇌에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난개발로 인해 자연 속에 깃들 만한 장소가 거의 모두 사라져 쫒겨 난 스피릿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둥지를 틀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인간의 내부로 쫒겨 들어온 스피릿들은 성격도 많이 바뀌었을 테다. 야생동물이 우리에 갇히면 난폭해지거나 우울해지는 것처럼 인간의 뇌 속으로 이주한 스피릿 역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과거에 만들어진 오래된 신화가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생명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라면 오늘날에 새로 생겨난 스피릿 이야기는 기술복제에 의해 생겨난 가상공간을 떠도는 유령에 대한 이야기다. 한동안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던 〈포켓몬스터〉라는 애니메이션을 기억하시는지. 이전에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갖가지 신화적 캐릭터들이 주인공 사내아이의 포획 대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다. 작은 공 안에 잡아 가두는 몬스터의 수가 늘수록 주인공은 강한 힘을 인정받는다. 이 가상공간 안에 거주하는 스피릿들은 주변의 다른 존재와 유대를 맺고 상호작용한다기보다는 그저 상벌용 스탬프마냥 획득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말하자면 능력 인증용 카드가 되어 버린 셈이다.

오늘날 스피릿들이 뇌에 갇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가상공간 안에 갇히면서 인간에 의해 가두어진 다른 것들이 그러하듯이 사물화되고 기호화되어 버린 셈이다. 과거에 생생한 생명력을 갖고 자연과 인간 사이를 넘나들던 스피릿들은 그야말로 이야기로만 남고 오늘날의 스피릿은 마치 인간만이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말 인간만이 스피릿의 유일한 주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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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융희 집필자 소개

저자 김융희는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홍익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7년 동안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화와 상상력, 예술철학 등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는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펼쳐보기

출처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 저자김융희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신화와 상상력 등의 주제를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미학자 김융희.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면서 보여 준 매혹적인 내용 그대로 ‘신들의 이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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