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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나 신화의 세계는 분명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다. 무엇보다도 현실을 움직이고 있는 법칙들과는 다른 법칙들이 마음대로 통용된다. 마치 그 세계에는 일관된 법칙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이 마구 뒤섞여 뒤죽박죽되고 난데없는 변형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곤 하니까 말이다. 물론 신화는 꿈보다는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더 지니고 있는 듯하다. 적어도 신화는 언어논리의 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견고해 보이는 현실에 비하면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인물들이 변신하는 모습은 마치 그들이 시간과 공간의 고정된 질서와는 아무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세계를 마법의 세계라고 한다. 신화는 분명 마법적인 측면이 있다. 꿈이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신화 역시 일상적인 삶 속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삶의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조용히 움직인다.

신화를 말하거나 듣는 것이 예전에는 하나의 의식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신화는 이야기되기보다는 책이나 영화로 전해지지만 과거에 신화가 나타날 당시는 지금과는 사정이 달랐다. 오늘날 책과 영화 속에 담긴 신화는 아무 때나 시간 날 때 심심풀이로 만날 수 있는 오락물처럼 변해 버렸지만 과거의 신화는 신성한 시간에 조심스럽게 전달되던 신성한 지혜의 말씀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신화는 때로는 부족의 구성원 중 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어른들에 의해 이야기되기도 하고 때로는 신성의 매개자로 여겨지는 주술사의 춤과 노래로 전달되기도 했다. 요즘에도 인도에서는 자신의 신들 이야기를 춤과 노래로 전한다. 춤꾼이 비슈누(Vishnu)가 되고 시바(Shiva)가 되어 이야기를 전하는 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은 단순히 춤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신들의 이야기에 참여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슈누(좌)와 시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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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화가 이야기되거나 공연되는 시간은 일상적인 시간과는 다르다. 우리는 시간이 시계판의 숫자처럼 균질화되어 있어서 그 시간이 그 시간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시간은 객관적이지도 균질화되어 있지도 않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과 친구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간은 누가 뭐래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신화가 살아나는 시간은 일상적인 시간에서 벗어난 신성한 시간이다.

루마니아의 신화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신화가 태초에 일어난 사건을 다시 지금 여기에 일어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신화가 말하고 들리는 바로 그 순간 아주 먼 과거에 일어난 신성한 사건이 지금 여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되살아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신화는 지금 여기를 신성하게 해 주는 역할을 했다. 신화가 전달되는 순간은 우리가 시공을 초월해 영원히 반복되는 원형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이다. 그 순간에 지금 여기는 먼 과거에 일어난 그리고 먼 미래에 다시 일어날 어떤 일들이 함께 뒤얽혀 있는 곳이 된다. 우리는 그때 여러 차원이 교차되어 있는 지점에 존재한다. 그런 느낌 가져 보셨는지? 처음 와 본 장소가 과거에 왔던 곳처럼 느껴지고 지금 일어나는 일이 언젠가 한번 경험한 일처럼 느껴지는 일 말이다. 소위 ‘데자뷰’ 현상이라고 불리는 이 체험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다. 그럴 때 우리는 참 이상한 느낌에 빠진다. 우리가 명료하게 나누어 놓은 과거-현재-미래라는 구분이 엉켜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이 제의적 시간이다. 빅터 터너(Victor Turner)라는 인류학자는 ‘문지방의(liminal)’ 시간이라고 불렀다. 전통사회에서 통과의례나 입문식이 치러지는 시간이 바로 이런 시간이라고 한다. 일상적 시공간에 다른 차원의 시공간이 중첩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꿈과 현실의 중간 지대쯤 되는 상태다. 이 단계에서는 사회가 분리시켜 놓은 것들이 한데 뒤얽혀 버린다. 성과 속, 남과 여, 인간과 동물, 안과 밖, 위와 아래,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등 일상적인 판단을 위해 세워 놓은 견고한 기준들이 흐물거리게 된다. 그는 신화뿐만 아니라 축제나 연극 등이 우리를 이런 영역으로 진입하게 한다고 한다. 분명 우리는 현실의 시공간에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차원의 영역이 끼어드는 경우다.

제의의 거행은 일종의 마법적인 성격을 지닌다. 주술사가 자작나무 가지와 독수리의 깃털로 우리의 이마를 건드리는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 있지만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다른 차원을 여행한다. 우리가 곰의 가면을 쓰는 순간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곰이 깨어나기도 한다. 〈마스크〉라는 영화를 아시는지? 주인공이 이상야릇하게 생긴 나무가면을 쓰는 순간 평상시의 자기와는 영 딴판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제의적 영역 안에서 우리는 가면을 얼굴 위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우리 내부의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다른 나를 내 안에서 발견하고 느낀다. 내가 나의 한계 너머로 나아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거다. 그때 나는 높은 하늘을 배회하는 한 마리의 독수리가 될 수도 있고 들판을 뛰는 한 마리의 늑대가 될 수도 있다.

신화는 과거에 이런 마법적인 힘을 지닌 말이었다. 신화가 제의적 시간, 다시 말해 의식의 문지방 차원에서 말을 건네면 우리 마음의 깊은 층이 동요한다. 신들의 말과 행동이 우리 내부에 지층처럼 겹겹이 퇴적된 오랜 무의식의 층을 건드리는 거다.

신화가 전하는 말은 현실논리를 끌고 가는 언어와는 달리 고도의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적인 기호들이 하나의 의미만을 건드리는 것과 달리 신화의 상징언어는 다층적인 의미를 한꺼번에 건드리곤 한다. 데자뷰를 경험하는 사람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처럼 그 언어가 우리를 건드리면 우리는 누구의 시간인지 알 수 없는 아득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 시간 속에서는 나의 기억이 선조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고 인간의 기억이 동물의 기억과 연결된다. 더 나아가 내가 나무의 마음, 강의 마음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시간을 공유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변형을 일으키게 된다. 평상시에 구분되어 있던 나와 남, 사람과 동물, 이것과 저것 등의 서로 다른 존재가 내 안에서 다른 것이 아닌 나의 일부분으로 체험되고 나와 동질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나와 남의 구별이 없는 큰마음에 접속하게 되는 거다. 이런 체험이 나를 다른 존재로 바꾼다. 다른 존재들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릴 때 우주는 더없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때론 그 목소리가 괴이하고 무서운 음성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 이상하고 낯선 목소리의 일부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스핑크스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리는 것이다. 이때 스핑크스는 또 다른 내 모습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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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융희 집필자 소개

저자 김융희는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홍익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7년 동안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화와 상상력, 예술철학 등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는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펼쳐보기

출처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 저자김융희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신화와 상상력 등의 주제를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미학자 김융희.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면서 보여 준 매혹적인 내용 그대로 ‘신들의 이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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