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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삶의 길목에
서 만난 신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Oedipus와 Sphinx

옛 그리스의 보이오티아(Boeotia) 지방에 테바이(Thebae)라는 도시가 있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에 괴물이 자리 잡고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사람을 해치기 전에 꼭 수수께끼를 냈다. 게다가 괴물은 생김새도 요상했는데 몸은 사자, 날개는 독수리, 꼬리는 뱀의 모습을 했고 얼굴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정체성이 묘연한 이 괴물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 세워 놓고 질문을 던진다. “두 발로도 걷고 네 발로도 걸으며 또한 세 발로도 걷는다. 이 생물의 이름은 하나다. 땅 위를 걷거나 공중을 날거나 물속을 헤엄치는 모든 것 중에 이것만이 형상을 바꾼다. 그러나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느리다. 그것이 무엇인가?”

도둑이나 강도가 출몰할 것 같은 인적이 드문 길목에서 이렇게 생긴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 길을 막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 당시 멀고 험한 여행을 주로 하던 사람은 아마도 거의 모두 남자였을 테니 이 괴물의 아름다운 얼굴에 먼저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괴물의 목소리는 어땠을까? 외모가 이러니 목소리도 여러 겹이 아니었을까?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뱀처럼 교태가 넘쳐흐르고 독수리 눈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였을 거다. 어쨌든 이 여자 괴물은 항상 지나가는 사람의 길을 막고 묻는다. 한편으로는 무섭고 한편으로는 신비스러운 모습에 이미 넋이 반쯤은 나간 나그네는 십중팔구 답을 못 했을 게 틀림없다. 넋이 빠져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그네를 지켜보던 괴물은 순식간에 그를 덮쳐 날카로운 발톱으로 몸을 갈기갈기 찢어 굶주린 사자처럼 뜯어먹었을 게다. 주변에는 이전에 먹잇감이 된 불쌍하고 어리석은 나그네들의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을 테고 말이다.

귀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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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섭고도 아름다운 괴물에 대한 소문은 주변 마을로, 도시로 바람에 실려 흘러 다녔다. 물론 괴물을 마주친 자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므로 괴물이 수수께끼 내기를 한다는 사실보다는 길목에서 마주치게 되면 잡아먹히게 된다는 이야기만 돌아다녔을 게다. 아무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로 먹잇감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영원한 승자는 없는 모양인지 승승장구하던 그녀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오이디푸스(Oedipus)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자가 나타나 수수께끼를 풀고 만 거다.

오이디푸스란 ‘부은 발’이란 뜻이다. 그는 테바이와 이웃해 있는 코린토스(Korinthos) 왕의 업둥이 왕자였다. 물론 많은 업둥이가 그러하듯이 그는 자신이 업둥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성장한다. 이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친부모가 그를 버리면서 상자에 넣은 채로 발에 못을 박아 강물에 띄워 보냈고, 양부모가 그를 발견했을 때 발이 심하게 부어 있었기 때문이다.

친부모가 그를 버린 이유는 자식이 태어나면 자신들에게 무서운 재앙이 닥친다는 예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몹쓸 예언은 결국 실현되고 말지만 말이다. 친부모가 두려워한 예언은 자식이 태어나면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와 몸을 섞게 된다는 거였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업둥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이 예언에 대해 알게 된다. 그가 코린토스를 떠나 테바이로 가게 된 것도 실은 무시무시한 저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저주를 피하려면 부모로부터 멀리 떠나는 것이 상책이었으므로. 그런데 무언가를 피한다는 것이 결국은 그것으로 끌려가게 되곤 한다. 오이디푸스도 그랬다.

코린토스를 떠나 방황하고 있던 젊은 청년 오이디푸스는 길거리에서 어떤 노인과 시비가 붙었다. 좁은 길목에서 서로 길을 비키라고 실랑이를 벌이게 된 거였다. 아직 철이 없던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불길한 운명을 생각하느라 심란하고 우울했고 그러다가 화가 난 참이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운명이 내려진 거야?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 망할 놈의 신탁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했어. 신탁만 아니었으면 나는 코린토스의 왕자로서 나라를 이어받았을 거고 장차 왕이 돼 아무 문제없이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방랑자의 꼴이 되다니. 쳇!”

신탁이 아직 실현되진 않았지만 마음은 영 불안했다.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불특정 다수, 말하자면 세상에 대해 화를 낸다.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멀쩡한 것 같고 남들은 불행이 뭔지도 모르고 고뇌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좁은 길목에서 모르는 노인과 실랑이가 붙었을 때 오이디푸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차에 마차 안에 앉아 있던 노인네가 갑자기 튀어나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오이디푸스의 머리를 탁탁 치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정말 버르장머리가 없다니까! 보아하니 행색도 변변치 않은 꼴이 별 볼 일 없는 놈인 것 같은데 저리 비키지 못할까!”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성질이 불같이 치솟은 오이디푸스는 들고 있던 몽둥이로 노인을 마구 두들겨 팼다. 주변에서 말리려는 수행원들에게도 가리지 않고 몽둥이를 휘둘러 댔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울분을 한껏 풀고 정신을 차려 보니 노인을 비롯해 일행 모두 죽어 있었다. 사실 노인이 그의 친부였으니 예언이 실현되고 만 꼴이다. 물론 그도 그의 아비도 그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그때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짓을 반성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가다 벌어진 재수 없는 사건이라 생각하고 얼른 자리를 피해 도망쳤다.

그가 ‘질문하는 괴물’ 스핑크스(Sphinx)와 마주친 것은 이런 일이 있은 후였다. ‘스핑크스’란 이름은 ‘묶는다’란 뜻이다. 그래서 그녀는 때로 ‘교살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의 여자 괴물들이 그러하듯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유혹해 덫에 빠트리는 존재였고 그 덫이 바로 수수께끼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로 그 덫에 빠져 목숨을 잃었지만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를 풀었기 때문에 덫에 걸려 버린다. 그가 걸려든 덫은 바로 ‘오만’이라는 또 다른 덫이었다. 오만이 어떻게 덫이 될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이 가장 경계한 것 증에 하나가 바로 오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몰락하게 되는 원인이 ‘오만’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만을 일종의 성격적 결함으로 보았다. 오이디푸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에 이글거려 길거리에서 만난 노인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던 것도 바로 오만한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성미가 불같은 젊은이였다고 한다. 자기 길을 막는 자는 모조리 밀쳐내 버리고 자기 외에 다른 이는 안중에도 없는 것, 이것이 그의 오만이다. 게다가 아무도 풀지 못하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자신감은 그를 더욱 오만한 인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오만은 폭군을 낳는다. 오만은 합당치도 이득도 되지 않는 부에 허망한 포만을 느끼고 드높은 성벽에 오르면 비참한 운명에 빠지고 허우적거리며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승자는 오이디푸스가 아닌 스핑크스라 할 만하다.

오만의 덫을 놓은 자는 다름 아닌 스핑크스다. 그녀는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자 벼랑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스핑크스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괴물로 그려지지만 엄연한 신족이다. 신은 모습을 바꿀 뿐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 없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신은 우주에서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에너지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스핑크스 역시 어디에선가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오이디푸스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주의 불가해한 완전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람 얼굴에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 뱀의 꼬리를 지닌 스핑크스의 모습은 당시 하늘의 네 귀퉁이를 지키는 별자리를 상징한다. 봄 · 여름 · 가을 · 겨울, 또는 춘분 · 하지 · 추분 · 동지, 또는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이 네 자리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려 주는 좌표라고 할 수 있다. 스핑크스는 이 네 방향의 기준점이 하나로 통합된 자리를 표현한다. 네 방위, 네 장소는 각각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우주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태양이 하늘의 네 귀퉁이를 지나갈 때마다 천체는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이 변화하는 모습이 바로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난다. 스핑크스는 봄에는 사람의 모습으로 여름에는 사자의 모습으로 가을에는 독수리의 모습으로 겨울에는 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 네 가지는 하나의 우주를 표현한 다른 모습일 뿐이다.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이 우리는 별개의 모습만을 알고 기억한다. 그녀의 서로 다른 모습이 하나의 우주를 다르게 표현한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서로 다른 공간이 아무런 연관 없이 제각각 움직이고 있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분리되어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한꺼번에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당혹감에 길을 잃곤 한다. 갑자기 불행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하필이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지?” 그때 나란 존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행한 일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다. 하지만 세상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누군가에게는 일어나야 하는 일일 때도 많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수수께끼와 마주하는 순간이 바로 스핑크스와 조우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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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황문수 옮김, 범우사, 2000, 55쪽.

김융희 집필자 소개

저자 김융희는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홍익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7년 동안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화와 상상력, 예술철학 등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는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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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 저자김융희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신화와 상상력 등의 주제를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미학자 김융희.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면서 보여 준 매혹적인 내용 그대로 ‘신들의 이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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