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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석유화학 산업의 범위는 넓고도 복잡하다. 화학 산업에 몸담은 사람들조차 그 구분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석유를 캐내어서 혹은 또 다른 물질로부터 그것의 원재료를 뽑아내고, 가공해서 중간 제품을 거쳐 완제품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매우 다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대개 산업을 분류할 때 자동차 산업, 전기 · 전자 산업, 조선 산업, 철강 산업 등과 같이 생산되는 제품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화학 산업 역시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형형색색의 화학 약품이 담긴 실험실의 풍경이나 유해성 논란이 벌어지는 화학 물질이 화학제품의 전부는 아니다.

이러한 광범위한 화학제품의 종류와 다양한 기준으로 구분되는 화학 산업의 분류를 잘 살펴본다면, 화학 산업의 범위와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화학 산업은 넓은 범위만큼 원료, 생산 제품, 제조 공정에 따라 수백 가지로 구분된다. 가장 손쉬운 구분 방법 중 하나는 원료에 따른 구분이다. 현대 화학 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화학 산업은 관련 분야 중 석유 원료를 기반으로 한 산업을 지칭한다. 최근에는 석유 이외에 가스, 석탄 등 다른 화석 자원이 화학 산업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화학의 가장 큰 원료는 석유다. 석유 정제 과정에서 분리되는 나프타를 분해 · 가공 · 중합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흔히 플라스틱으로 불리는 합성수지나 합성 섬유, 합성 고무 등을 만드는 것이 석유화학 산업이다.

화학의 학문적 구분과도 연관되지만 유기물과 무기물의 원료 구분에 따른 유기화학 산업과 무기화학 산업의 분류도 가능하다. 탄소 화합물을 포함하는 유기화학 산업은 앞서 설명한 석유화학 산업이나 바이오 화학 산업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유기물이 아닌 무기물을 원료로 하는 무기화학 산업은 대표적으로 비료 산업과 유리 산업, 시멘트 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무기화학 산업은 일반적인 탄소 화합물 외에 무기 재료를 원료로 사용하는 산업으로 금속 원소를 이용하는 철강 산업이나 비철 금속 산업과는 구분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석유 제품을 화학적으로 가공해 만든, 원유에 들어 있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들을 석유화학 제품이라 부른다.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과 이들 원료로부터 제조한 여러 가지 합성물, 예컨대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과 같은 합성수지 등이 석유화학 제품에 속한다.

정밀화학 산업은 생산되는 제품에 따라 구분되는 화학 산업의 한 분야다. 석유화학 산업 등에서 생산된 1차 화학 소재를 재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기능을 향상하는 산업이다. 의약품, 농약, 도료, 염료, 안료, 식품 첨가제, 향료, 접착제, 화장품 등을 주로 생산한다. 수십만 종에 달하는 수많은 화학제품이 정밀화학 제품에 속하며 응용 분야 역시 무궁무진하다. 특히 첨단 IT 소재로 사용되는 많은 화학제품이 정밀화학 제품이므로 산업 전반의 발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다.

산업을 구분하는 분류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정유 산업도 화학 산업에 포함된다.

정유 공정은 크게 증류와 정제 과정으로 나눈다. 원유 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성분을 유용한 성분(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등)으로 분류한 제품과 불순물을 제거(정제)하거나 배합 과정으로 얻은 제품들을 통틀어 석유 제품이라 칭한다. 정제 공정에서는 불순물로 들어 있는 황 화합물들을 제거(탈황)하거나 양질(고옥탄가)의 휘발유를 얻기 위해 화학 공정을 거치기도 한다.

물리화학적 방법으로 광물 자원인 원유를 정제해 각종 석유 제품을 생산하는 정유 산업은 단일 산업으로는 가장 큰 생산 규모를 자랑하는 산업 중 하나다. 정유 산업은 현대 사회의 필수불가결 요소인 에너지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에너지화학 산업의 일종이다. 정유 외에도 가스, 석탄 등 에너지원으로 이용되는 화석 자원을 가공, 생산하는 산업을 총괄한다.

이 밖에 생산되는 제품에 따른 분류 중 가공도에 따라 기초화학 제품, 중간화학 제품, 최종화학 제품 등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또 다른 분류 방법은 제조 공정에 따른 구분이다. 예컨대 자동차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산업을 구분하긴 어렵지만, 화학 산업에서는 공정에 화학 반응이 존재하는 만큼 생산 방식이나 제조 공정에 따른 구분이 가능하다. 전기화학 산업은 일반적인 화학 반응과 달리 전기 현상과 이에 따른 화학 변화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산업으로, 전기 분해를 비롯한 전기적 처리 방식을 거치는 공정을 포함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석유화학 산업의 생산 제품인 합성수지 혹은 합성 고무 등을 가공하는 플라스틱 제조업, 고무 제조업 등 역시 넓은 의미에서 화학 산업에 포함된다.

이렇듯 다양한 분류 방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통계청의 한국 표준 산업 분류에 따르면 화학 산업은 첫째, 코크스 · 연탄 및 석유 정제품 제조업, 둘째, 화합물 및 화학제품 제조업, 셋째, 고무 제품 및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이외에도 기타 펄프 · 종이 및 종이 제품 제조업, 의료용 물질 및 의약품 제조업, 비금속 광물 제품 제조업(유리 포함) 등도 화학 산업에 포함된다.

여기서 화학 산업이 다른 산업과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살펴보면 화학 산업 공정에는 합성, 분해, 중합, 발효 등 화학 반응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학 반응에 의한 제품의 생산은 다른 산업과 화학 산업을 구분 짓는 중요한 특성이다. 이는 화학 반응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일반적인 전자, 자동차, 기계, 조선과 같은 완제품을 생산하는 조립 산업과 달리 소재 산업으로서 원료를 가공해 다른 산업에 새로운 소재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화학 산업은 ‘산업의 쌀’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