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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기계 수리공이 만든 증기의 기적
제임스 와트
James Watt출생 | 173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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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19년 |
국적 | 영국 |
글래스고 대학 내에 수리점을 내고 일할 무렵 처음으로 뉴커먼 기관을 보고 이 기계의 단점을 보완하여 최초로 와트식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매슈 볼턴과 볼턴&와트 사를 만들어 증기기관을 제조하여 판매하고, 그것을 보완하여 유성기어 장치 및 복동식 기관도 만들었다. 와트식 증기기관으로 영국의 산업혁명이 이루어졌다.
어느 발명가가 유용한 물건을 발명했다고 하자. 이때 그 발명품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였으며 인류의 역사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은 발명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 외에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발명품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미국 독립혁명이나 프랑스 혁명과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혁명의 결과가 인류 역사에 미친 파장을 비교해본다면 다른 어떤 정치적인 혁명보다 훨씬 더 많은 파장을 남긴 중요한 사건이었다.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근대 산업 시대에 진입했으며, 기계와 분업에 의해 보다 효율적인 생산이 이루어짐에 따라 생산량이 급등하고 새로운 계급인 자본가와 노동자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실용적인 증기기관의 발명은 얼마 만큼의 무게로 다루어져야 할까? 그것이 한 기계 수리공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면 믿어지는가?
제임스 와트는 1736년 1월 19일 스코틀랜드의 항구 도시 그리노크에 태어났다. 소년 시절 수세공에 관심을 가지게 된 와트는 학교에 꾸준히 나가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에게서 대부분의 가정교육을 받았다. 이후 그래머스쿨에서 라틴 어, 그리스 어, 수학을 배웠다.
그는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곳에서 그는 선박 제조와 관련된 일들을 보고 배웠고, 직접 기중기와 배럴 오르간과 같은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열일곱 살이 될 무렵에는 수학 도구 제작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글래스고로 갔고, 이어 1755년에는 런던으로 떠나 그곳에서 기계설비를 배웠다.
일을 습득한 후 그는 기계직공으로 일하려고 했지만 조합제도로 인해 개업할 수가 없었다. 결국 런던의 한 화학기구 제조사에서 한 해 동안 일을 배운 후 1757년에 글래스고 대학 구내에 실험기구 제조·수리점을 개업했다. 그리고 사분의(四分儀), 컴퍼스, 눈금자 등과 같은 수학도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잠열(고체·액체 같은 물질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열)의 개념을 발전시킨 조지프 블랙과 만났다.
당시 글래스고 대학은 뉴커먼 기관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의 수리를 런던에 있는 수리업소에 맡기고 있었다. 와트는 1763년에 자진하여 이 기관의 수리를 맡았다. 뉴커먼은 공기의 응축과 팽창을 이용한 피스톤 엔진을 고안했는데, 그가 발명한 엔진은 주로 광산에서 물을 퍼내는 펌프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엔진을 가동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석탄이 필요했기 때문에 유지비가 높아 일반에게는 공급되지 못하고 있었다.
제임스 와트는 뉴커먼 기관의 최대 단점이 잠열 손실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증기실린더를 독립시켜 증기기관의 효율을 높이도록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그는 캐론 공장의 창업자 로벅을 만나고, 개량된 기관 제작을 권유받는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뉴커먼의 증기기관에 비해 매우 발전된 형태였으므로, 그가 실질적인 증기기관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다. 와트는 이 기계로 1769년 특허를 취득했다.
1772년에는 매슈 볼턴이 와트의 특허권을 획득했으며, 1775년에 그는 와트의 특허권을 1800년까지 25년간 연장한다. 이에 두 사람은 볼턴&와트(Boulton&Watt) 상회를 설립하여 동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광산이나 공장에서 주문받은 증기기관을 설계하는 정도였으므로, 와트는 증기기관을 완성시키기 위한 각종 장치들을 고안하는 데 주력했다.
1781년에는 엔진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전환시키는 유성기어장치를 고안하였고, 1782년에는 피스톤이 동시에 밀고 당기는 복동식(複動式) 회전기관으로 특허를 받았다. 이후 볼턴앤드와트 사는 직접 증기기관을 제작했다. 이어서 1784년에 수평운동장치를 발명하였고, 1788년에는 원심조속기, 1790년에는 압력계를 차례로 발명했다. 이를 이용해 드디어 와트 기관을 완성했는데, 이 증기기관은 제지공장, 방적공장, 제철공장 등 당시 영국의 많은 공장에서 사용되었다.
수많은 발명품과 특허로 인해 와트는 큰 부자가 되었는데, 1790년까지 11년간 받은 특허사용료만 7만 6,000파운드에 달할 정도였다. 그는 동료인 매슈 볼턴과 함께 영국 과학자들의 교류모임인 버밍엄 루나 소사이어티(The Lunar Society)의 회원, 런던 왕립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와트는 1794년에 새로운 볼턴&와트 가족상회를 설립하였다. 1795년에는 버밍엄의 소호 지역에 주물공장을 만들어 증기기관을 대량생산하였고, 1800년 특허권이 만료되면서 볼턴과의 동업생활을 끝냈다. 이후 와트는 은퇴하여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연구를 계속했다. 친한 친구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조각기계를 만들고, 글래스고워터 사의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와트는 생전에 그의 업적을 인정받은 행운아였다. 1806년 글래스고 대학교는 그에게 법학 박사학위를 주었고, 1814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그를 외국인 준회원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1819년 8월 25일, 버밍엄 핸즈워스에 있는 그의 집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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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제임스 와트 –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김상엽,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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