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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중국 역사상 최고의 요부
양귀비
본명 | 양옥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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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중국 |
양귀비는 중국 당나라 현종의 왕비로 이름은 옥환이며, 쓰촨 성에서 태어났다. 중국 역사상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현종의 비 무혜황후가 죽은 후 우연히 현종의 눈에 들게 된 그녀는 당시 현종의 열세 번째 아들인 수왕 이모의 비였다. 하지만 현종은 당대 최고 권력가였던 환관 고력사를 시켜서 양귀비를 데려오게 하였고, 결국에는 아들에게서 빼앗아 자신의 귀비로 책봉했다. 745년, 당시 현종의 나이는 61세였다.
귀비였으나 황후가 없는 터라 양귀비는 황후의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현종은 죽은 양귀비의 아버지에게 대위제국 공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그녀의 숙부와 세 명의 친오빠에게도 높은 벼슬을 하사했다. 또한 양귀비의 세 명의 언니를 모두 국부인으로 책봉하여 그 세도가 매우 어마어마했다. 양귀비의 일가 친척 중에서 가장 세도를 누린 사람은 양귀비의 사촌 오빠 양검이다. 양검은 이융기의 총애를 받아 이융기에게 '국충(國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이임보가 죽자 양국충은 승상에까지 올라 국정을 전횡하였다.
양귀비는 후에 절도사 안녹산을 총애하여 수양아들로 삼았다. 안녹산의 세가 커져가는 것을 불안해했던 양국충은 현종에게 안녹산을 모함하였으나 매번 양귀비가 끼어들어 그를 구했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그녀의 죽음을 불러왔다.
안녹산은 755년 부하인 사사명과 함께 양국충을 타도하고자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으로 현종은 양귀비와 그 일가를 데리고 장안에서 피신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종이 양귀비에게 빠져 정사를 멀리한 탓이라고 생각했던 관군은 도망치던 도중 양귀비와 양국충 일가를 모두 죽일 것을 종용했다. 양국충이 놀라 허둥거리는 동안 군인들은 그를 끌어내 목을 베고 시체를 갈가리 찢었다.
현종은 양귀비만은 구하려고 관군을 설득하려 했으나 군인들은 뜻을 꺾지 않았다. 고력사마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자 현종은 눈물을 머금고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했다. 양귀비는 울면서 역관 옆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고, 군인들은 그녀가 죽었다는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현종 역시 말년에 양귀비를 그리워하다가 쓸쓸히 죽었다고 하니,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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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진시황제, 카이사르, 다 빈치, 갈릴레오, 링컨, 간디, 체 게바라, 마더 테레사 등 고대 영웅부터 현대의 성녀까지 100인으로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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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양귀비 –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김상엽,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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