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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학의 태두

공자

孔子
요약 테이블
출생 BC 551
사망 BC 479
본명 공구(孔丘)
국적 중국

본명은 공구(孔丘),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사상가이자 정치가. 일찍 학문에 눈을 떠 많은 제자들을 길렀으며, 50세 때 잠시 관직에 있다가 그만두고 천하를 주유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향에 돌아와 후학 양성과 고전 정리 작업에 힘썼으며 BC 479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말을 모아 제자들이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그중 유명한 것으로는 《논어(論語)》,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춘추(春秋)》 등이 있다.

중국 2,500년 역사를 일관되게 지배해온 이념이 있다면 아마도 유학(儒學)일 것이다. 진시황제 시절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의 얼마 간을 제외하면 모든 중국인들의 정치, 교육, 사상을 지배한 이념이 바로 유교이다.

한 사람의 사상이 2,500년간 수많은 군주들과 정치가, 사상가와 교육가, 일반 민중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때문에 유교를 종교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공자라는 인물을 석가모니나 예수와 함께 인류의 4대 성인으로 분류하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유교의 역사가 공자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석가모니와 예수는 각기 한 종교의 창시자라 할 수 있지만, 유교의 창시자는 공자가 아니다. 그는 제사, 천제(天祭), 장례 등의 의식이 수 세기 동안 존속해온 이유를 알아내려 하다가 옛것에 애착을 느꼈고, 이러한 의식이 주는 소속감과 일체감이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그는 '옛것을 살려 새로운 것을 알게 하는(溫故而知新)' 일을 자신의 의무로 삼았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지금의 산둥 성으로 추정되는 노나라 창평에서 태어났다. 노나라는 주의 건국 공신인 주공 단(旦)의 아들이 개국한 나라였다. 공자가 음력 8월 27일에 태어났다는 통설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가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양력 9월 28일은 동아시아에서 공자의 탄신일로 여겨지고, 타이완에서는 이 날을 '스승의 날'이라 하여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의 〈공자세가〉 편에는 공자의 출생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다. "공자의 선조는 송나라 공방숙이다. 방숙은 백하를 낳고 백하는 숙량흘(叔梁紇)을 낳았다. 숙량흘은 안씨의 딸과 몰래 통정하여 공자를 낳았다. 출생하면서 머리 위가 볼록하다 하여 구(丘)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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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에 근거하여 해석하면 공자는 이른바 사생아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집안은 송나라 왕실에서 연유된 명문가였으나 몰락하여 시골에 와서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부장이었으나 공자가 세 살 때 사망하여 그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궁핍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는 마을의 늙은 선생 아래서 열심히 공부를 했고, 어려서부터 종교의례, 제도, 관습 등에 밝았다.

춘추전국시대 전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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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에 공자는 창고를 관리하는 위리(委吏), 나라의 가축을 기르는 승전리(乘田吏) 등의 말단 관직에 올라 일을 보면서 노나라의 대학에서 《시경》을 배웠고, 함께 일하던 관리에게서 예법과 음악도 배웠다. 공자는 《시경》의 저자인 주공(주를 창건한 무왕의 동생으로 주의 행정조직을 확립했다)을 흠모하여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주공 시대처럼 예의가 바르고 평화로운 세상이 공자의 이상이었다.

공자의 나이 36세에 노나라 환공의 후예인 삼환씨(三桓氏), 즉 계손(季孫), 숙손(叔孫), 맹손(孟孫) 세 권세가가 난을 일으켜 노나라 왕인 소공이 쫓겨나고 나라가 세 조각으로 분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자는 소공을 따라 기원전 517년 제나라로 가서 제나라의 왕과 신하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예(禮), 악(樂), 사(射, 활쏘기), 어(御, 마차술), 서(書, 서예), 수(數, 수학)의 육례(六藝)에 능통하고 고전에도 밝았던 그는 곧 훌륭한 스승으로 주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제나라에서 정명주의적 정치 이상에 대해 가르치고 예법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제나라 왕 경공은 그를 고문으로 세우려 했으나 예절의 번잡함과 비현실적인 면을 들어 대부 안영이 반대하자 뜻을 꺾고 말았다. 이에 실망한 공자는 2년 만에 귀국했고, 노나라 정공의 눈에 들어 다시금 지위가 오르게 되었다.

당시 여전히 혼란했던 노나라에서는 계손씨 밑에 있던 양호(陽虎)라는 자가 세력을 모아 정권을 얻기 위해 삼환씨에 대항하여 난을 일으켰다. 삼환씨는 총력을 기울여 양호의 세력을 격파하였고, 당시 노정공의 신임을 얻고 있던 공자 역시 양호의 난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결국 양호는 거사에 실패하고 제나라로 도망치게 되었다. 양호의 난을 진압할 때 큰 역할을 했던 공자를 시기하여 권신 소정묘가 숙손첩과 함께 힘을 모아 공자에게 도전하려 했으나 공자의 서슬 퍼런 불호령을 듣고 결국 목이 잘렸다는 일화도 있다.

그 이후 노정공과 삼환씨는 공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지침을 따르게 되었다. 52세에는 노나라의 최고 직책인 대사구(大司寇)라는 지위까지 올라 노나라와 제나라의 강화회의에 참석하여 제나라가 빼앗아 간 노나라 땅을 돌려주도록 하였고,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치고 염치를 알게 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이미 삼환씨의 횡포로 노나라는 재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가 노정공마저 사치와 도락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공자는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 결국 자신의 큰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을 깨달은 공자는 벼슬을 사직하고 삼환씨의 압박을 피해 노나라를 떠났다.

이때부터 공자의 끝없는 유랑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위, 송, 조, 정, 진, 태 등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자신의 뜻을 펼 만한 이상적인 나라를 찾았으나 어느 나라에서도 공자를 반기지 않았다. 당시 각 나라의 왕들은 예의를 숭상하고 백성들을 위하기보다는 부국강병할 수 있는 빠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때문에 엄격한 도덕과 예를 설파하는 공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공자는 자신의 뜻이 현재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교육에 힘을 쏟게 되었다.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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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외유를 마치고 다시 노나라로 돌아왔을 때 공자의 나이는 이미 68세였다. 노나라에 돌아온 후 그는 후학양성에 온 힘을 기울였으며, 이전 시대의 고전을 집대성하는 저술활동에 몰두했다.

그의 말을 모아 제자들이 남긴 저서에는 《논어(論語)》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춘추(春秋)》 등이 있다. 《논어》는 공자의 언행을 문하생들이 모아서 엮어놓은 일종의 언행록이며, 《시경》은 고대 여러 나라의 구전가요를 제자들이 모아서 편찬한 것이다. 《서경》은 고대 중국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며, 《주역》과 《춘추》는 역사서이다.

아들인 백어가 죽고, 아끼던 제자 안회와 자로도 잇달아 세상을 떠나며 공자는 만년을 불행하게 지내다가 기원전 479년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공자의 유교 사상은 진나라 시황제 때 많은 탄압을 받았다. 법가 사상을 숭상하였던 시황제는 유학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반발하자 공자의 저서를 불태우고 유교를 논하거나 배우는 행위 일체를 금지했다. 그러나 진이 무너지고 한나라가 들어서면서 유교는 국가 이념으로 숭앙받았으며 나라의 인재를 뽑는 각종 과거시험에도 채택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기 전까지 유교는 전 중국민을 지배하는 기본 이념이 되었고, 일본과 한국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공자의 기본 사상은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주나라 때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며, 그 방법으로는 '정명(正名)'을 들고 있다. 정명주의는 "명분이 바르면 말이 순하고, 말이 순하면 일이 이루어지며, 일이 이루어지면 예악이 흥하고, 예악이 흥하면 백성이 손발을 가지런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명분이 바르게 되고 명분이 바르면 민심과 사회가 안정된다는 의미이다.

그는 전통의식인 친족윤리, 즉 효(孝)와 제(悌) 사상을 통해 모든 정치·사회규범을 도출해내고자 했으며, 법률과 형벌에 의한 통치를 반대하고 인(仁)에 바탕을 둔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주장했다.

그가 이룬 주요한 업적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육 개방이다. 공자 이전까지는 귀족 가문에서 가정교사를 고용하여 필요한 학문을 가르치고, 상급 관리가 하급 관리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모든 사람이 자기수양을 통해 덕을 닦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미래의 지도자들을 위한 인문과목 교육도 처음으로 실시했다. 그는 배움이란 지식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인격의 도야까지 포함한다고 정의했고, 배움의 목적은 자기발전과 자기실현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공직에 나아가 사회를 변모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볼 때 현대 교육의 기틀을 세운 것이 바로 공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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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이르러 중국 경제발전의 낙후성을 유교에서 찾으려는 학자들도 있고, 공자의 가르침이 현실성이 없는 이상주의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중국 공산정부 수립 후 그런 움직임은 더욱 거세져 공자의 사상을 봉건 시대의 구습(舊習) 정도로 치부해 타파하려는 정치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공자의 유교 사상은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사상이며, 현대에 이르러 서양에서도 주목을 받으며 아시아 전역에서 다시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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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엽 집필자 소개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사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이야기 그리스로마사>, <로마제국과 곡물문제>, 논문으로는 「초기 프린키파투스 체제하에서 기사신분..펼쳐보기

김지원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화학생물공학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서로는 『렘브란트의 유산』 『나폴레옹의 영광』 『손 안에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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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 저자김상엽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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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공자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김상엽,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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