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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큰 가르침

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 釋迦
요약 테이블
출생 BC 563
사망 BC 483
본명 고타마 싯다르타(悉達多 喬達摩)
국적 인도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悉達多喬達摩)로 인도 카필라바스타의 왕자로 태어났다. 인간의 괴로움의 근원을 깨닫고 구원의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했다. 귀족 계급 중심으로 이어지던 인도 종교와 달리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였고 신을 부정하였으며(無神論) 누구라도 수행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해 하층민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온갖 부귀영화를 약속받았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보리수 밑에서 세상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어 창시한 불교(佛敎)는 당시 인도 사회를 지배하던 브라만교나 힌두교와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누구나 수행만 하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 '계급은 중요하지 않고 값진 제물도 바칠 필요가 없다'는 불교의 특성은 카스트 제도라는 엄격한 신분제도하에서 고통을 겪던 인도 하층민들에게 새로운 탈출구로 여겨졌을 것이다.

석가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그는 기원전 563년 인도 북쪽 네팔 국경 근처에 있던 카필라바스타에서 슈도다나 왕과 마야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에게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다. 그러다 마야 부인이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꾼 후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출산이 임박하자 마야 부인은 당시 풍습에 따라 고향으로 향했으나 고향에 도착하기 전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산기가 와서 아들을 낳게 되었다. 이는 아소카 왕이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하며 세웠던 석주가 1896년에 발견되며 증명되었다.

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태어나자 하늘에 오색구름과 무지개가 피었으며 가릉빈가가 왕자의 탄생을 축하했다고 한다. 석가모니 왕자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어가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고 왼손은 땅을 향한 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尊貴)하도다. 삼계(三界(가 모두 고통스러우니 내가 마땅히 이를 평안히 하리라"라는 뜻이다.

아마라바티의 불전 부조

초기 불교미술의 예. 중앙의 빈대좌는 석가모니를 뜻한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태어난 지 이레 만에 마야 부인이 산후병으로 세상을 뜨고, 어린 싯다르타는 이모의 손에서 자라며 왕족에게 필요한 학문과 기예를 배웠다. 당시 풍습에 따라 16세에 동갑인 사촌 야쇼다라와 혼인하여 아들 라훌라를 얻었다. 이렇게 평온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석가모니는 인생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괴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사문출유(四門出遊), 또는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 알려져 있는 이 일화에서 석가모니는 성에 있는 4개의 문으로 나갔다가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모습, 사람들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소카 왕의 석주

뉴델리 피로즈 샤 코트라의 이슬람 건축물 폐허에 서 있는 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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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그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그물 속에서 살아 있는 동안 끝없는 고뇌와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이며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허무한 인생보다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진정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그는 29세에 가족과 지위를 모두 버리고 출가한다.

그는 남쪽으로 내려가 마가다국에서 알라라칼라마와 우다카 라마푸타라는 두 명의 선인을 차례로 찾아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선정(禪定)을 배웠다. 그것은 정신통일을 통해 하늘에 이르는 방법이었으나 석가모니는 이런 방법으로는 생사의 괴로움을 해탈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다음에는 산으로 들어가 당시 출가자의 풍습이었던 고행에 전념했다. 하루에 쌀 한 톨, 물 한 모금 정도만 먹으며 수행을 하였지만 극단적인 절식과 금욕생활은 싯다르타에게 육체적인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안겨주지 못했다.

갖은 고통을 겪은 후 싯다르타는 당시 사람들이 믿어온 금욕생활은 결코 구원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좌선을 통해 구원의 방법을 찾기로 결심하고 보리수 밑에 앉아 참선에 들어갔다. 그렇게 49일 만에 이 세상에서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터득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깨달은 사람, 곧 불타佛陀가 되었으며 '타타가타(진리에 도달한 자)', 혹은 '석가모니'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석가(釋迦)'는 그가 속한 '샤키아(sakya)'라는 민족의 이름이며, '모니(牟尼)'는 성자라는 의미의 '무늬(muni)'의 음사로 '석가 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그 후 45년간 전국을 돌며 교화를 계속한 석가모니는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숲에서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제자들에게 "슬퍼하지 마라. 내가 언제나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하는 모든 것은 곧 헤어지지 않으면 아니되느니라. 제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제행(諸行)은 필히 멸하여 없어지는 무상법(無常法)이니라. 그대들은 중단 없이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니라"라고 말한 후 눈을 감았다. 이것이 기원전 483년의 일이다.

석가모니의 사후 그의 유해는 다비(茶毘, 화장)되고, 유골은 중부 인도의 여덟 부족에게 분배되어 사리탑에 분장되었다. 이 사리탑은 중요한 예배 대상이 되어 후에 불탑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석가는 인도의 전통적인 종교관인 윤회와 업(業)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근본 가르침은 사성체설(四聖諦說)에 있다. 사성체란 이 세상은 괴로움으로 차 있다는 고체(苦諦), 괴로움의 원인은 욕망과 애착 때문이라는 집체(集諦), 괴로움을 떨침으로써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멸체(滅諦), 해탈된 상태를 얻기 위해서는 팔정도를 행해야 한다는 도체(道諦) 등을 말한다. 즉,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것의 원인은 욕망과 애착이며 팔정도를 통해 이를 떨침으로써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팔정도는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신념, 바른 좌선을 말한다.

석가모니 설법도

석가모니가 커다란 연꽃에 앉아 설법을 하고 보살, 공양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즉, 부처의 근본 가르침은 인간 고통의 근본 원인인 애착과 욕심을 떨쳐버리고 마음의 평정, 높은 지식의 상태로 나아가 열반(涅槃)에 이르라는 것이다.

석가는 또 인도의 고유 계급구조인 카스트 제도를 부정했다. 그리고 누구나 참선을 통해서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만민평등 사상을 펴나갔다. 값진 제물도 필요하지 않고, 오직 정진과 참선만이 유일한 득도의 길로 제시되었다.

또 힌두교는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신이 간여하는 것으로 믿었으나 불교는 신을 믿지 않았으며 운명은 전생의 죄업의 결과로 보았다. 무신론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죽은 후 불교는 점차 주변 국가들로 퍼져나가다가 기원전 3세기경에 이르러 아소카 왕이 불교로 개종한 후 전 인도에 급속하게 보급되었다. 그 후에는 동남아시아 전 지역과 아프리카, 중국과 한국, 일본에까지 전파되었으나 오히려 인도 본국에서는 그 세력이 쇠퇴하였다. 기원전 500년경부터 소멸되는 듯하더니 1200년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소멸되었고, 그 자리를 힌두교가 대신 차지했다.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인 불교는 이렇게 탄생하여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깨달음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한 왕자의 인생에 대한 물음과 고행, 참선을 통한 깨달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열반으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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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엽 집필자 소개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사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이야기 그리스로마사>, <로마제국과 곡물문제>, 논문으로는 「초기 프린키파투스 체제하에서 기사신분..펼쳐보기

김지원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화학생물공학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서로는 『렘브란트의 유산』 『나폴레옹의 영광』 『손 안에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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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 저자김상엽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역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진시황제, 카이사르, 다 빈치, 갈릴레오, 링컨, 간디, 체 게바라, 마더 테레사 등 고대 영웅부터 현대의 성녀까지 100인으로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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