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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n과 high noon은 어떻게 다른가?

하이눈

high noon

noon(정오)은 숫자 9를 뜻하는 라틴어 nona에서 나온 말이다. 고대 로마 시대의 시간 계산법에서 9번째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리켰지만, noon이 교회 예배 시간에 쓰이면서 예배 후 식사를 염두에 둔 탓인지 정오를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원래의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 스페인어의 siesta(낮잠)다. siesta는 6번째 시간, 즉 정오를 가리키는 라틴어 sexta에서 나온 말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의 풍경을 전하는 「마가복음(Mark)」 15장 33절에서 말하는 ‘제9시’는 정오를 가리키는 걸로 해석되고 있다. “At the sixth hour darkness came over the whole land until the ninth hour(제6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시까지 계속하더니).”

high noon은 “정오, 한낮, 한창때, 전성기, 절정”을 뜻한다. noon과 high noon의 차이는 무엇인가? noon은 낮 12시에서 플러스마이너스 10~15분가량이 허용되지만, high noon은 정확히 낮 12시를 말한다. 오차 한도는 1분 이내여야 한다. 프레드 진네먼(Fred Zinnemann, 1907~1997)이 감독하고 게리 쿠퍼(Gary Cooper, 1901~1961)와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1929~1982)가 주연을 맡았던 1952년의 서부극 〈High Noon〉으로 익숙해진 말이다.

영화 〈하이 눈〉의 줄거리는 이렇다. 뉴멕시코주 해들리빌(Hadleyville)의 보안관 윌 케인(Will Kane(게리 쿠퍼 분))은 젊은 아내 에이미 파울러(Amy Fowler(그레이스 켈리 분))와의 결혼식을 막 끝내고 신혼 생활을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5년 전에 체포해 사형 판결을 받게 했던 살인범 프랭크 밀러(Frank Miller)가 사면으로 주립 교도소에서 풀려나 부하 3명과 함께 자신에게 복수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프랭크 밀러가 탄 열차가 역에 도착하는 시각이 바로 ‘하이 눈’이었다.

후임 보안관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케인은 다시 배지를 달고 밀러와 싸우려 하지만 결혼식에 참가한 하객들은 “신부를 생각해서 얼른 떠나라”고 하며 그를 마을 밖으로 내보낸다. 그러나 일단 마을을 떠났던 케인은 도망치기를 거부하고 다시 돌아와 밀러와의 대결을 결심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케인을 도와 밀러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

결국 케인은 마을 사람들이 외면한 가운데 인적 없는 거리에서 홀로 밀러 일당과 대결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도운 것은 단 한 사람, 마을로 돌아가는 걸 반대했던 그의 아내였다. 거리를 누비며 벌어진 치열한 싸움이 케인의 승리로 끝나자, 주민들은 그제야 거리로 몰려나온다. 지치고 환멸을 느낀 케인은 보안관 배지를 땅바닥에 던지고 아내와 같이 마을을 떠난다.

이 영화는 처음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의 나이 차이(28년)가 많이 난다든가 추격이나 활극 장면이 없다는 것도 비판 대상이었지만, 핵심적인 비판은 이 영화가 정통 서부극에서 일탈했다는 것이다. 쿠퍼가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같이 싸워줄 것을 요청하고 막판에 아내의 도움에 의해 살아나는 것 등은 정통 서부 사나이의 체면을 크게 구긴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오늘날 ‘서부영화 걸작 10’에 들어가는 명작으로 추앙받는다. 이 영화의 열혈 팬인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는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에서 수시로 이 영화를 보았으며,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 1946~)은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에서만 이 영화를 17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미국 제40대 대통령이며 영화배우 시절 ‘공산주의자 영화인’을 고발하거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을 했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 1911~2004)은 이 영화는 공산주의자를 무찌르는 애국자를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악당들은 매카시스트(McCarthyist, 공산주의자 사냥꾼)이며 마을 사람들은 상황을 알면서도 몸소 나서지 못하고 침묵하는 여러 예술인이나 언론인, 지식인들을 말한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J. F. 리처드(J. F. Richard)는 2001년 『국제경제법저널(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 Law)』에 발표한 「하이 눈: 세계적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에게는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도 빨리(High Noon: We Need New Approaches to Global Problem-Solving, Fast)」라는 논문에서 “세계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 제시되는 방법들은 별 효과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여기서 ‘하이 눈’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절정’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영화 〈하이 눈〉의 극적인 대결 장면이 연상되지 않는가?

하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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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Webster’s New Explorer Dictionary of Word Origins』(Springfield, MA: Federal Street Press, 2004), pp.320~321.
  • ・ William Morris & Mary Morris, 『Morris Dictionary of Word and Phrase Origins』, 2nd ed.(New York: Harper & Row, 1971), p.563.
  • ・ 「High Noon」, 『Wikipedia』.
  • ・ 찰스 슈바이크(Charles M. Schweik), 「과학 공유자원 구축을 위한 프리 ·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 샬럿 헤스(Charlotte Hess) 편저, 김민주 · 송희령 옮김, 『지식의 공유: 폐쇄성을 넘어 ‘자원으로서의 지식’을 나누다』(타임북스, 2007/2010), 271~272쪽.

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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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1
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1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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