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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한양
의 기억을
걷다

석 달 사이에 충신에서 역적이 된 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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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소 동작나루

정약용이나 이덕무보다 한참 앞서 윤휴(尹鑴)의 《백호전서》 부록 5권 <연보> 편을 보면 저자 윤휴가 1680년(숙종 6년) 1월, 동작진의 강사(江舍)에 나와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대목이 나온다.

신의 애초의 뜻은 전하가 계시는 궁전의 뜰에 나아가 하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병을 앓고 난 나머지 걸음을 절뚝거려 궁전의 높은 계단과 넓은 뜰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이에 사가(私家)에서 곧바로 도성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숙종은 즉시 사관을 보내 들어오라는 뜻을 전했다. 도성에 들어가지 않고 한강 강가 여관에 묵으며 임금의 부름을 거둬달라고 청하는 이와 같은 상소는 산림의 영수들이 출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하기 위해 가끔 사용하던 방식이다.

그러나 1680년(경신년) 1월부터 정국은 조짐이 좋지 않았다. 허적의 아들 허견과 인평대군의 세 아들(복창군과 복평군, 복선군)이 역모를 기획했다고 하여, 흔히 삼복의 변이라 일컫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임금의 모후 명성대비와 그의 오빠 김석주는 남인 정권에 왕위가 위협받는다고 판단하고 남인을 제거할 시나리오를 짠다. 남인에 의지하고 있던 숙종도 어머니 명성대비의 뜻에 따라 경신환국을 기획해 남인 세력 대부분을 몰아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조정은 김석주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김석주가 무고죄로 구석에 몰리자, 임금의 어좌 뒤편에서 발을 치고 중신들과 임금 사이 회의를 듣고 있던 명성대비가 갑자기 곡소리를 내며 회의에 참여한다. 명성대비는 오빠인 김석주를 두둔하며 무고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결국 남인 당수 허적의 아들 허견이 역모자로 엮이고 남인 당파 전부가 죄를 얻어 귀양을 가거나 죽음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남인의 영수로 조정에 출사를 권유받던 윤휴로서는 1680년 1월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불과 3개월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동작진 여관에서 약 석 달 가까이 머물던 윤휴 역시 1680년 4월 2일 갑산으로 유배형을 받는다.

동작나루에서 사직서를 내고 배를 타고 고향 여주로 가려 한 그였지만 갑자기 죄인 신세가 돼 동작나루를 건너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충신과 역적이란 극과 극의 신분 변화를 불과 석 달 사이에 맛봐야 했다. 그리고 그 강을 건너는 길이 바로 죽음의 길이 될 거란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윤휴는 입궐하여 약 한 달 동안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러고는 죄인 신분으로 서대문을 나가 무악재 고개를 바라보며 유배지인 갑사로 떠났다. 그런데 갑자기 금오랑이 따라와 소리를 친다. 유배 가는 길에 금오랑과 마주치는 것은 대개 사약을 받으라는 뜻이다. 금오랑을 본 윤휴의 아들은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는다. 언제나 불길한 상상은 틀리지 않고 사약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윤휴는 금오랑에게 마지막 가는 길에 소주를 맛보게 해달라 사정했다. 평소 소주를 좋아했던 그다. 법에 금지된 일이지만 어렵사리 허락을 얻은 윤휴는 소주 서너 잔을 마신 뒤 마치 보약을 마시듯 사약을 먹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죽은 곳은 무악재 아래 어느 여염집이라 한다. 그날이 1680년 5월 2일이니 동작나루를 건넌 지 딱 한 달 만에 윤휴는 죽은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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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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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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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석 달 사이에 충신에서 역적이 된 윤휴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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