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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은 섬이면서도 섬이 아니었다. 장마 때 큰비가 오면 섬이 됐고 건기에 비가 적으면 육지와 연결됐다. 뚝섬은 한강과 중랑천에서 흘러내린 모래와 진흙이 쌓여 형성된 곳이다. 땅이 기름져 대궐에 바치는 곡물과 채소류가 재배되기도 했던 이곳이 오늘날처럼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은 1908년 최초로 상수도 수원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그 뒤로 한도십영 중 하나인 전교심방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땅이 평탄하면서도 기름져 풀들이 무성해 정도(定都) 직후부터 말 목장이 들어섰고 자연스레 군대의 훈련장이 되었다. 때로는 임금의 사냥터로 활용되기도 했다. 뚝섬의 한자음 독도(纛島)의 '독(纛)'은 큰 깃발을 뜻하는 단어다.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을 꽂고 사냥을 한 곳이라는 의미다. 실록의 기록에는 대개 전곶(箭串) 목장으로 표기돼 있다.

1959년 뚝섬 한강 나루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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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년(세종 2년)부터 이곳은 넓은 목장으로 사용돼왔다. 1546년 5월 28일자 실록을 보면 "요즈음 큰비가 열흘 동안 내려 살곶이에서는 물이 불어서 많은 말이 떠내려갔고, 화양정(華陽亭) 주변 사람들은 배로 통행했다. 도성 동산에 풀어놓은 말들이 많이 익사했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임금이 "말만 죽었는가? 사람도 많이 죽었다"라고 말한 기록도 보인다. 목장 울타리를 쌓고 말을 사육했지만 여름이면 큰비로 둑이 무너지고 말이 산지사방으로 도망을 다녀 민가에 피해가 속출함을 임금에게 보고하는 글도 종종 눈에 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물놀이를 즐겼을 만큼 물 맑고 모래가 유난히도 고왔던 장안 제일의 유원지 뚝섬. 1989년 8월까지만 해도 뚝섬에 말들이 갈기를 치켜세운 채 모래벌판을 질주하던 경마장이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 지금의 뚝섬 일대에는 강가의 버드나무를 비롯해 갖가지 활엽수가 우거져 산짐승들이 들끓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옛 문헌을 보면 고려 현종 때만 해도 뚝섬 일대 숲 속에 호랑이들이 들끓자 나라에서는 이름난 장수들을 보내 호랑이를 사냥토록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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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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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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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마음 따라 1. 광나루 2. 잠실나루 3. 뚝섬과 두모포 4. 동작나루와 노들나루 5. 마포 6. 양화나루와 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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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비만 오면 잠기는 뚝섬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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