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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한양
의 기억을
걷다

한양의 설계자 정도전의 허망한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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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소 경복궁

조선 시대에 광화문 거리는 육조 거리였다. 좌우에 이·호·예·병·형·공조의 육조 관아가 배치되었는데 오늘날 시민열린마당 자리에는 의정부(議政俯)가 있었다. 의정부는 백관을 거느리고 서정을 총리하던 최고행정기관으로 국가 정책의 큰 줄기를 결정하던 곳이다. 도당(都堂) 또는 황각(黃閣)이라고도 한다. 의정부에는 정1품인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삼정승이 있었고, 삼정승을 보좌하던 종1품 좌·우찬성과 정2품 좌·우참찬이라는 고관이 있었다.

의정부 남쪽 종로구청 일대는 수진방(壽進坊)이라 불렸다. 정도전이 한양의 지명을 정할 때 집을 짓고 장수한다는 뜻으로 지었다는 수진방은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로서 오늘날 수송동(壽松洞)과 청진동(淸進洞) 일부에 해당한다.

이 부근에는 궁중에서 사용되는 말을 기르고 궁중의 가마, 외양간, 목장 등을 맡아 보던 사복시(司僕寺)가 있었다. 사복시는 내사복시와 외사복시가 있는데 내사복시는 경복궁 영추문 안과 창경궁 홍문관 남쪽에 있었고, 외사복시는 수송동 146번지에 두었다.

19세기 말 광화문앞 육조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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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경 광화문 앞 해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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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동은 수동(壽洞)과 송현(松峴)의 첫 자를 합성한 데서 유래했는데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집터가 이곳에 있었다. 1398년 8월 26일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정도전은 남은의 애첩 집이 있던 송현의 소동(小洞)에서 남은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날 밤 이경(밤 9시에서 11시 사이)에 이곳에 이른 이방원 일파는 집에 불을 지르고 정도전, 남은, 심효생을 참살한다. 이날 실록의 기록을 요약하면 이렇다.

경복궁을 도성의 서북쪽에서 바라본 모습(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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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등이 밤낮으로 송현에 있는 남은의 첩의 집에 모여서 서로 비밀히 모의하니 정안군 이방원의 부인이 여종 소근을 불러 빨리 대궐에서 집으로 오라 했다. 정도전 일파의 흉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미 대군들의 사병을 혁파한 뒤지만 부인이 몰래 숨겨둔 무기가 있어 정안군을 따르는 자들을 소집했다. 이숙번과 익안군, 상당군, 회안군 부자도 또한 말을 타고 따랐으며 이거이, 조영무, 신극례, 서익, 문익, 심귀령 등도 함께했다.

그때 정도전과 남은 등은 송현에서 등불을 밝히고 모여 앉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화살 세 발을 신호로 소근이 불을 지르고 이웃집 세 곳도 함께 불을 질렀다. 이에 정도전은 도망하여 숨었으나, 심효생, 이근, 장지화 등은 모두 참살당했다.

이웃집 민부라는 전판사가 정도전이 자기 집으로 들어왔다고 고하자 정안군이 그를 잡아오게 했다. 정도전은 자그마한 칼을 쥐고 걸음을 걷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나왔다. 소근 등이 꾸짖어 칼을 버리게 하니, 도전이 칼을 던지고 문밖에 나왔다. 정도전은 "공이 나를 살린 적이 있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주오"라고 사정했지만 정안군은 그를 목 베게 했다.

정도전에게는 아들 네 명이 있었는데, 정유와 정영은 변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 급함을 구원하러 가다가 유병(遊兵)에게 살해되고, 정담은 자기 집에서 목을 찔러 죽었다.
종로구청 앞 정도전 집터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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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죽으면서 다음과 같은 절명시(絶命詩)를 남겼다고 한다. 글쎄 그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이런 시가 나왔을까?

조심하고 조심하여 공력을 다해 살면서 책 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저버리지 않았네.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놓은 사업 송현방 정자 한잔 술에 그만 허사가 되었네. - 정도전, <자조(自嘲)>

종로구청 위로는 제용감(濟用監)이 있었다. 제용감은 궁중에 필요한 모시, 마포, 가죽, 인삼 등을 진헌하고 사여되는 옷감과 의복의 염색, 직조 등을 담당하던 관아다. 태복사(太僕司)라 불리기도 했다. 고려의 제도를 따라 제용고(濟用庫)로 설치하였다가 바뀐 것으로 1461년(세조 7년)에 염색을 담당하던 도염서(都染署)를 병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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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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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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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한양의 설계자 정도전의 허망한 최후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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