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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한양
의 기억을
걷다

고향의 대나무를 그리워하는 척화신 김상헌

요약 테이블
관련 장소 인왕산

당시 장동 일대의 경치는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에 남아있다. 당대 유명했던 장동의 빼어난 경치는 취미대(翠微臺), 대은암(大隱巖), 독락정(獨樂亭), 청송당(聽松堂), 창의문(彰義門), 백운동(白雲洞), 청휘각(晴暉閣), 청풍계 이렇게 여덟 곳이었다.

이종묵의 고전 산문 번역집인 《누워서 노니는 산수》에 소개된 <인왕산에서 본 서울 도성(幽西山記)>을 보면 1614년 가을 김상헌이 눈병을 앓던 어머니를 위해 안질에 좋다는 샘물을 얻기 위해 인왕산에 오르는 내용이 나온다.

늘 누워서 눈길을 보낼 뿐 한 번도 골짜기 안으로 왕래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날을 잡아 형 김상용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인왕산 밑 필동에 청심당(淸心堂)이라는 서재를 짓고 당대 문장가들과 교류하던 소세양의 옛집을 지났다. 깎아지르는 절벽과 날리는 샘물, 푸른 풀과 파란 언덕 곳곳이 멋진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돌길이고 비뚤비뚤하여 말을 버리고 갔다.

약수터에 도착한 김상헌이 가늘게 나오는 샘물을 받으며 인왕산 정상을 바라보니 샘물 옆에는 지전들이 마구 붙어 있었다. 무당이 굿을 한 흔적이었다. 그는 정상을 향해 계속 산을 오른다.

전쟁(임진왜란)이 끝난 지 23년, 태어나는 아이들 나날이 늘어나고 집들도 이처럼 많은데 …… 나라 힘은 더욱 약해지고 백성들은 더욱 사나워지며 변방이 소란해져 …… 경복궁 빈 정원에 있던 성은 무너지고 용과 봉을 새긴 전각들은 모두 무성한 잡초로 묻혔다. 경회루 앞 연못에 있는 연꽃만이 바람에 흔들리며 석양에 어른거리린다.

김상헌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보던 인왕산을 이제 와서 처음 올라보니 천지가 여관 같다며 각별한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이제 남은 인생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조카들과 함께 어머니와 형을 모시고 다시 한 번 산을 유람하고 싶다며 글을 끝맺는다. 하지만 김상헌의 이런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났다. 이 뒤로도 그의 인생은 너무도 파란만장해 오히려 그 이전 인생이 조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늘 조선의 불행한 역사와 함께했다. 인왕산 산행이 있은 지 9년이 지나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밀려났던 서인 세력들이 조정을 장악한다. 하지만 김상헌은 반정 세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집권 세력에 대해 비판적 지지 입장을 견지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상헌은 주자의 나라 조선이 청나라 오랑캐에 항복하면 안 된다며 결사 항전을 주장했다. 하지만 인조는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고 만다. 김상헌은 와신상담해서 치욕을 씻고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다 청에 위험인물로 지목돼 결국 청나라 선양까지 끌려가 고된 심문을 받았다.

근심 많아 소식 막혀 있었던 차에 편지 한 통 써 평안하단 소식 전한다. 무속헌의 앞 뜨락에 있는 대나무는 의연하게 겨울 추위 겪고 있으리.

《청음집》에 있는 김상헌의 시다. 이 시를 쓸 무렵 그는 청나라에서 그리운 고향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무속헌(김상헌의 집) 뜰에 울울창창한 그 대나무의 의연함을 끊임없이 머리에 새기며 고국에 돌아갈 날을 기다렸을 그다. 김상헌은 청에 볼모로 간 지 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좌의정에 제수돼 북벌의 사상적 지주가 된다.

석실서원묘정비(石室書院廟庭碑)

병자호란 때의 대표적인 척화신 김상용·김상헌 부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석실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기 전까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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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젊은 나이 임진왜란을 겪은 후로도 한 갑자(60년) 동안 조선의 험난한 역사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절의를 굽히지 않았던 그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은 석실서원(石室書院)이란 서원을 만들었다.

영조와 정조 연간에 위대한 학자를 여럿 키워낸 석실서원은 노론계 정치 성향이 강한 서원으로 발전했고, 조선 후기에는 홍대용이 수학하는 등 정통 주자학과는 또 다른 새로운 학문인 실학이 꿈틀대던 곳이기도 했다.

청음집(淸陰集)
김상헌(金尙憲)의 시문집. 40권 14책. 목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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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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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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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마음 따라 1. 광나루 2. 잠실나루 3. 뚝섬과 두모포 4. 동작나루와 노들나루 5. 마포 6. 양화나루와 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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