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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한양
의 기억을
걷다

무악재에 출몰하던 호랑이

요약 테이블
관련 장소 안산

연세대 북문과 동문 사이에 있는 봉원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떡고개라 불렀다. 북한산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밖으로 뛰쳐나온 형상이므로 어미 산인 모악 남쪽의 고개를 떡고개라 하여 어미가 떡으로 아이를 달래서 달아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떡고개는 벌고개(벌현, 罰峴)라 부르기도 했다. 벌고개란 이름은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 묘소 수경원이 있어서 붙은 것이다. 사람들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영빈 이씨가 깊이 관여했다고 보고 자식을 죽게 한 어미라며 그 무덤을 밟고 다녔는데, 이에 격분한 영조가 이 길로 다니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한 것이 벌고개란 지명으로 굳었다. 수경원은 1974년 연세대에서 서오릉으로 옮겨져 지금은 정자각만 남았다.

현재 정자각만 남은 수경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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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개는 호랑이가 다니던 길목이어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세조는 병조판서 김질에게 명하여 호랑이를 잡게 하였는데, 호랑이가 별안간 포위망을 뚫고 도망가자 세조가 친히 봉우리에 올라서서 장수들을 지휘해 호랑이를 잡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떡고개뿐만 아니라 인왕산과 안산 사이를 잇는 무악재에도 호랑이들이 자주 출몰했다. 인왕산 남쪽 끝자락에는 호랑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이름을 범바위라 불렀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인왕산 중턱에 호랑이 한 쌍이 있어 무악재를 넘나들었는데, 사람에게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이가 무악재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그를 사납게 노려보며 포효했는데 그 기세에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도망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왕산에 산불이 나 먹을 것이 없어진 암컷 호랑이가 민가로 내려왔는데 마침 강원도에서 온 포수 한 사람이 이를 발견하고는 총을 쏴서 잡았다. 암컷을 잃은 수컷 호랑이는 암컷을 찾아 사방천지를 헤매며 울부짖다가 그만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죽고 말았다.

그날 이후 이 바위는 해가 뜰 때마다 햇빛이 반사돼 빛났다고 한다. 그 빛깔이 마치 호랑이 눈에서 나는 광채 같았다. 나중에 암컷을 쏘아 죽인 포수는 이 빛에 두 눈이 멀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도성에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기록은 실록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태종 때는 호랑이가 경복궁 담을 넘어들어와서 근정전 근처에서 어슬렁거렸고, 세조 때는 궁궐 뒤의 북악산에도 나타났다. 중종 때는 임금이 인왕산과 북악산의 호랑이를 퇴치하기 위해 직접 나서려고 할 정도로 한양은 호환(虎患)으로 몸살을 앓았다. "호랑이치고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는 없다"는 속담은 여기서 나왔다.

선조 4년 8월에는 경기 지방에 호랑이 피해가 극심하자 군사를 일으켜서 잡으라는 명을 내릴 정도였다. 그런데 당시 사졸들이 민가에 들어가서 끼친 민폐가 호랑이보다 더 심했다고 한다. 영조 대에도 한 해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 숫자가 수백 명에 달해 호환을 당한 사례를 보고한 바 있고, 정조도 도성 주변에 호랑이들이 자주 출몰하자 특별히 그 주변 나무들을 베게 했다.

이처럼 호환이 기승을 부리자 민간에는 호랑이가 먹고 남은 시신을 모아서 장례를 치르는 호식장(虎食葬)이 퍼졌고, 그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피해를 막기 위한 범굿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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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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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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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마음 따라 1. 광나루 2. 잠실나루 3. 뚝섬과 두모포 4. 동작나루와 노들나루 5. 마포 6. 양화나루와 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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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무악재에 출몰하던 호랑이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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