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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어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 직무거부 등에 빠지는 현상이다. 탈진 증후군이나 소진 증후군, 연소 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우수하거나 근면 성실한 사람일수록 일을 마다하지 않는 바람에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기 쉽다. 또한, 서비스직 같은 감정 노동자들이나 윤리적 책임감이 높은 사회 복지사 등이 정서적 소진으로 인해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기 쉬운 직종에 속한다.
2014년 6월 30일 방송된 MBC 다큐스페셜 〈오늘도 피로한 당신, 번아웃〉이 번아웃에 대한 적잖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번아웃(burnout)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극도의 피로, (로켓의) 연료 소진"이란 뜻인데, 심리학적 유행어가 되면서 이른바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이 이처럼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번아웃 신드롬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 빠진 사람이 피로를 호소하며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거부 등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탈진 증후군', '소진 증후군', '연소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2013년 12월 『매경이코노미』가 마크로밀엠브레인과 함께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 862명이 번아웃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심리학적 개념으로서 '번아웃'은 1974년 독일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 1926~1999)가 만든 말인데,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1904~1991)의 1960년 소설인 『번아웃 케이스(A Burnt-Out Case)』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2 번아웃은 독일에서 국민 질병이 되었을 정도로 독일적 현상이며, 그래서 이 분야의 전문 연구도 독일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동양에선 독일과 가장 닮은 나라인 일본에서도 번아웃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일본 심리학자 사이토 이사무(齋藤勇)는 "이것은 근면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현상의 하나"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앞에 높은 목표가 있어 그것을 정복하기 위해 끝없이 전진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어 계속 달리기만 하면 몸도 마음도 전부 연소되고 만다. 비즈니스 사회에서는 장시간 잔업을 하거나 휴일에 쉬지 못하고 계속 출근을 해 '완전연소 증후군'에 빠져버린 사람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때론 자신을 너무 옭아매지 말고 '될 대로 되겠지'라며 여유를 가지는 것이 인생을 편하게 보내는 비결이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은 『스스로 살아가는 힘』에서 '번아웃 증후군' 환자가 모든 직업군에서 크게 늘었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자신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마치 계기판에 연료 부족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져 있는데도 계속 달리다가 멈춰 선 자동차와 같다."
회사에선 A급 인재들이 번아웃 신드롬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상사는 과도하게 업무를 주고, 우수 인재는 마다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합쳐지니 일은 해도 해도 줄지 않고, 집에선 부인과 자녀의 불만이 늘어나 결국 체력적·정신적인 한계에 부딪혀 나동그라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IGM 교수 김용성은 A급 인재를 관리할 때 놓치기 쉬운 사실들을 기반으로 다음 3가지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첫째, 리더는 A급 인재에게 업무를 맡길 때 그가 이미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았는지 항상 확인해야 한다. 둘째, A급 인재에게는 학습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A급 인재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휴식을 계획하도록 권해야 한다.
번아웃이 과도한 업무 때문만에 발생하는 건 아니다. 여성으로 야후의 CEO에 오른 머리사 메이어(Marissa Mayer)는 번아웃이 과로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중요한 일을 포기해야 할 때 느끼는 분노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일에 대한 통제력 부족도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원인으로는 불충분한 보상, 공동체 내의 부조화, 불공정, 가치관의 대립 등을 들 수 있다.
김진국은 번아웃 신드롬을 예방하기 위해 '슈퍼맨(슈퍼우먼) 콤플렉스'를 벗어던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불꽃같은 삶'을 우상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구국의 소녀 잔다르크나 유관순이 아니다. 이순신과 안중근도 아니다. 불꽃이 화려할수록 그림자도 짙다. 사그라지고 나면 재만 남는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하루하루의 구체적인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실존적인 존재다."
공부와 연구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김대식은 영재교육은 번아웃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영재교육을 받은 애들 대부분 실패합니다. 30대가 되면 다들 무대에서 사라져요. 두뇌를 너무 일찍 태워먹은 거예요. 그게 바로 번아웃입니다. 20대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30대에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사람들은 그렇게 번아웃되는 경우가 없어요.……10대 청소년들을 쥐어짜는 게 아니라 30대 학자들을 쥐어짜야 과학이 발전합니다.……과학고 학생들이야말로 대표적으로 번아웃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고 학생들보다는 일반고 학생들이 순수과학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그런 '두뇌 번아웃'도 있지만,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감정 번아웃'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크리스티나 마슬라흐(Christina Maslach)는 아예 번아웃을 "사람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들, 즉 친밀한 접촉에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는 정서적 고갈 상태와 냉소주의의 증후"라고 정의한다.
사회복지사들은 감정노동과 사회적 약자를 상대한다는 윤리적 책무까지 더해져 번아웃 신드롬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11월 사회복지 공무원의 잇따른 자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내 사회복지사 2,6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발표한 '사회복지사 인권 상황 실태 조사'에서 이들의 인권 보장 수준은 10점 만점에 평균 5.6점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건강을 지킬 건강권, 폭력에 맞서거나 회피할 방어권 등이 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복지 대상자들의 인권이 강조되면서 문제가 생길 경우 사회복지사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물음으로써 이들을 정서적으로 소진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지영은 "소진(번아웃)은 자살만큼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소진을 단순히 자살의 원인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소진 자체가 갖는 위험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 교수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우울증에 자주 선행하여 나타나는 소진(Burnout)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힘이 빠져가는 주권적 개인의 증상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인 자기 착취의 병리학적 결과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성을 확장하고 변형하고 새로 발명해야 한다는 명령이 그 이면에서 우울증을 초래하는데, 그러한 명령의 원천은 정체성과 관련된 상품이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자주 바꾸면 바꿀수록 생산은 더욱 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산업적 규율사회가 변함없는 정체성에 의존했다면, 성과주의적 후산업사회는 생산의 증대를 위해 유연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자발적인 자기착취일지라도 그 자발성은 결국 외부의 압력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연료 부족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계속 달림으로써 번아웃에 빠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병철의 주장은 이른바 '사회적 가면'의 문제를 제기한 셈인데, 이는 나중에 「왜 페이스북의 투명성은 위험한가?: 단일 정체성」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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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김헌주, 「[번아웃된 한국인] 직장인 1000명 설문조사 해보니…보상 없는 과로가 번아웃 불러」, 『매경이코노미』, 제1737호(2013년 12월 18일).
- ・ 「Burnout(psychology)」, 『Wikipedia』.
- ・ 콘스탄체 뢰플러(Constanza Löffler)·베아테 바그너(Beate Wagner)·만프레트 볼퍼스도르프(Manfred Wolfersdorf), 유영미 옮김,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시공사, 2012/2013),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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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요한, 『스스로 살아가는 힘: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인생법』(더난출판, 2014), 28~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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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릭 슈밋(Eric Schmidt) 외, 박병화 옮김,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김영사, 2014), 86쪽.
- ・ 김진국,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일은 많은데 적게 먹는다? 얼마 안 남았군"」, 『한경비즈니스』, 제938호(2013년 11월 18일).
- ・ 김대식·김두식, 『공부 논쟁』(창비, 2014), 210~211쪽. 228~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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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은주, 「장갑도 못 끼고 장애인 대소변 닦다 옴까지 옮아」, 『한겨레』, 2013년 11월 21일.
- ・ 남은주, 「자살 복지공무원 심리 부검해보니 "반복된 좌절과 무력감이 비극 불러"」, 『한겨레』, 2013년 11월 21일.
- ・ 한병철,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0/2012), 98~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