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런던 미술관
산책
르네 마그리트

〈꿈꾸는 사람〉

The Reckless Sleeper
르네 마그리트 〈꿈꾸는 사람〉

1928, 캔버스에 유채, 116×81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15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의 그림을 보는 일은 테이트 모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벨기에 출신의 이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는 늘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들을 나열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어렵거나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마그리트의 수수께끼 그림에서는 어딘지 모를 위트가 느껴진다. 마치 18세기에 처음 영국에 등장하기 시작한 풍자화가들처럼, 그의 그림에서는 대상을 슬쩍 비트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모든 이미지들이 지극히 깔끔하고 명료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도 마그리트 그림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큰 이유일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에 비하면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의 그림은 왠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지 않는가.

마그리트가 선명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즐겨 그렸던 것은 그의 전직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마그리트는 스물네 살에 어린 시절의 첫사랑과 결혼했는데, 전업 화가로 나서기 전까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포스터를 그렸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 늘 등장하는 선명하고 단순한 이미지들은 포스터를 그리면서 터득한 테크닉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처럼, 마그리트 또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꿈꾸는 사람〉은 마그리트가 프로이트에게서 받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 중 하나다. 그림을 보면, 마치 다락방처럼 생긴 윗부분에 한 남자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곤히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 밑의 공간에는 회색 바탕 아래 촛불, 리본, 비둘기, 거울, 모자 같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들이 가지런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이 그림에서 마그리트가 제시한 수수께끼는 비교적 쉽다. 그림 아래쪽의 사물들은 위쪽의 남자가 지금 꿈꾸고 있는 이미지들처럼 보이니 말이다.

여섯 개의 이미지 중에서 제일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물건은 촛불과 모자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촛불과 모자는 각각 남자와 여자의 성적 욕구를 표현하는 사물들로 흔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머지 사물들은 약간 모호하다. 예를 들면 비둘기나 거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대체 무엇일까?

마그리트가 이 그림에 숨겨 놓은 이미지는 정작 따로 있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래쪽에 배열되어 있는 이미지들의 수수께끼를 찾는 데 골몰한다. 그런데 이 이미지들이 박혀 있는 회색 바탕(?)의 형태를 한번 보자. 자세히 보면 이 회색 형체는 사람의 옆얼굴과 비슷하다. 비둘기와 촛불 사이에 있는 뾰족한 부분이 코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옆얼굴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들은 회색 사람의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는 생각의 모티프들인 것이다. 어떤 평론가들은 회색 형체를 무덤의 묘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림 위에서 잠들어 있는 남자는 커다란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인데, 이 상자가 관이고 밑에 배치된 회색 형체는 묘비라는 것이다.

사실 죽음은 마그리트의 머릿속에서, 특히 젊은 시절의 마그리트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심각하고도 중요한 문제였다. 마그리트의 어머니 레지나는 우울증을 앓다가 마그리트가 열세 살 때인 1912년에 집 근처의 강에서 투신자살했다. 집에서 입던 드레스를 그대로 입은 채 시체가 되어 강 위로 떠오른 어머니의 이미지는 마그리트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맞은 어머니의 죽음이 화가의 남은 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나는 유쾌한,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울한 느낌을 주는 마그리트의 그림들을 볼 때마다 이 화가가 어린 시절에 맞았던 비극이 그의 그림에 어떠한 영향으로 나타나고 있는지가 새삼 궁금해진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전원경 집필자 소개

언제부터인가 삶의 방향이 자꾸 영국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는 작가다. 연세 대학교와 런던 시티 대학교 대학원(예술경영 및 예술비평 전공)을 졸업하고 월간 『객석』 및 『주간동아』의 문화팀 기..펼쳐보기

출처

런던 미술관 산책
런던 미술관 산책 | 저자전원경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내셔널 갤러리, 코톨드 개럴리, 국립 초상화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등 영국 런던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우리를 이끄는 런던 미술관 산책기다. 미술 작품들 ..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Daum백과] 〈꿈꾸는 사람〉런던 미술관 산책, 전원경, 시공아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