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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런던 미술관
산책
조지프 라이트

〈대장간〉

An Iron Forge
조지프 라이트 〈대장간〉

1772, 캔버스에 유채, 121.3×132cm

〈대장간〉의 화가는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진공 펌프 실험〉을 그린 사람과 같은 인물이다. ‘더비의 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화가는 분명 남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듯싶다. 과학 실험을 주제로 한 〈진공 펌프 실험〉도 그렇거니와, 이 그림 역시 18세기 화가들이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평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배경은 작은 용광로가 있는 대장간이다. 용광로에서 나오는 불빛이 대장장이와 그의 가족, 즉 아내와 딸, 아들을 환하게 비춘다. 그림의 테크닉은 지극히 고전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장간’이라는 그림의 소재 자체는 꽤 현대적이지만, 라이트가 그림을 그린 방식은 오히려 고답적이라는 뜻이다. 팔짱을 낀 덩치 좋은 대장장이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처럼 전형적인 영웅의 포즈를 연상시키고,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평민이라기보다는 기품 있는 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끔 하니 말이다. 남자 앞에는 일꾼 하나가 몸을 수그린 채 풀무질에 열중하고 있다. 용광로의 빛이 그림의 한가운데를 비추고 있는 모습은 예수와 마리아를 그린 종교화를 연상하게끔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하고 많은 영국 화가들의 진부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그림의 소재 자체가 너무도 특이하기 때문이다. 1772년이면 한창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기운이 움트고 있을 때였다. 1769년에 글래스고의 기술자 제임스 와트가 본격적인 증기기관을 만들어 특허를 냈고, 이 증기기관을 이용해 영국 중부의 공장들에서 면직물을 대량 생산하면서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라이트가 살고 있었던 더비 지방 역시 면직물 공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라이트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보여 주려 했을까? 설마 ‘대장간 풍경을 그려 달라’고 청탁한 이가 18세기 당시에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는 순전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아마 그가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은 ‘노동의 신성함과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대장장이 남자의 만족스러운 표정과 가족의 모습은 이런 화가의 의도를 말해 준다. 물론 실제 영국의 대장간이 라이트의 그림처럼 말끔하고 아름답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당시의 귀족들은 당연하게도 이 그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그림은 런던의 신문들(18세기 초반부터 런던에서는 주간지가 인쇄되었다. 영국 최초의 일간지 『더 타임스』가 창간된 것은 1785년이다) 덕분에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대중은 귀족이나 왕족의 우아하고 세련된 포즈가 아닌, 자신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한 이 그림을 아주 좋아했다. 그 덕분에 라이트는 18세기 당시 영국의 서민들에게 꽤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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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 집필자 소개

언제부터인가 삶의 방향이 자꾸 영국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는 작가다. 연세 대학교와 런던 시티 대학교 대학원(예술경영 및 예술비평 전공)을 졸업하고 월간 『객석』 및 『주간동아』의 문화팀 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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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관 산책
런던 미술관 산책 | 저자전원경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내셔널 갤러리, 코톨드 개럴리, 국립 초상화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등 영국 런던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우리를 이끄는 런던 미술관 산책기다. 미술 작품들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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