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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런던 미술관
산책
존 컨스터블

〈건초 수레〉

The Hay Wain
존 컨스터블 〈건초 수레〉

1821, 캔버스에 유채, 130.2×185.4cm

동시대 화가였던 터너의 활달하고 대담한 그림에 비하면,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의 풍경화들은 너무 심심하고 밋밋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스터블의 〈건초 수레〉는 늘 ‘영국 전원을 가장 정확하고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그림’으로 손꼽힌다. 영국에서는 이 그림을 새겨 넣은 티포트 덮개나 테이블보, 손수건 등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건초 수레〉는 영국의 특성을 담은 대표적인 그림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왜 영국인들은 이 그림을 이토록 좋아할까? 그것은 아마도 뿌리 깊은 영국인들의 ‘전원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런던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 중 하나인 동시에,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다. 1800년대 중반에 이미 런던에서는 지하철이 달리고 있었고, 여러 종의 신문이 발행되고 있었다. 비단 런던뿐이 아니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현대적 도시가 발달한 나라다. 17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시의 공장에서는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하게끔 되었고, 농민들은 경작지를 버리고 도시로 가 공장 노동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산업혁명과 함께 영국의 농촌은 거의 붕괴하고 만다. 영국 요리가 유럽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으로 꼽히는 이유도 영국의 농촌 가정이 일찍이 붕괴하면서 전통적인 ‘홈메이드’ 요리가 발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도시가 발달한 나라에 사는 영국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골 마을에 대한 향수를 늘 가지고 있다. 영국인들에게 이상적인 고향은 파란 잔디가 완만한 언덕 위에 펼쳐지고 자연스레 숲이 우거진, 그리고 그 위에 작은 오두막(Cottage)이 있는 잉글랜드 남부의 풍경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잉글랜드 남쪽의 콘월이나 코츠월드가 영국인들이 꿈꾸는 고향의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정작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런던이나 맨체스터, 버밍엄 같은 큰 도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가지만 말이다. 런던에 하이드 파크를 비롯해 커다란 공원들이 여러 곳에 있는 것도 영국인들이 전원에 대해 워낙 강한 향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컨스터블의 〈건초 수레〉는 바로 이 같은 영국인들의 꿈, 즉 ‘언젠가는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라는 열망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배경은 영국 동남부인 서퍽의 스투어(Stour) 강변으로, 컨스터블의 고향이기도 했다. 〈건초 수레〉를 그리기 위해 화가는 직접 강변에 나가 풍경을 스케치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상파 화가들처럼 물감과 붓, 캔버스를 가져가 자연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 컨스터블은 작은 스케치를 완성한 후 런던 작업실로 돌아왔고, 작업실에서 자신의 스케치를 참고해 〈건초 수레〉를 완성했다. 컨스터블 당시에는 그림을 야외에서 그리는 화가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풍경 스케치를 야외에서 하는 화가조차 거의 없었다.

그림의 주제인 건초 수레는 원래 말이 끄는 수레다. 그림 속에서 말이 끄는 건초 수레는 얕은 강물 위를 막 건너가고 있는 참이다. 그림 오른편으로는 건초를 말리는 데 열중하고 있는 일꾼들이 멀리 보인다. 지금 건초 수레는 이 일꾼들이 말려 놓은 건초를 싣기 위해 강을 건너가는 중인 것이다. 그림 왼편에 서 있는 아담한 오두막(영국인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오두막!) 앞에서는 한 아낙네가 물을 긷고 있고, 그 옆으로는 물고기를 잡으며 장난치는 아이도 보인다.

서퍽에서 태어나고 자란 컨스터블에게 이같이 조촐한 농촌 풍경은 너무도 낯익은 것이었다. 물론 당시의 농촌 풍경이 그저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서퍽의 풍경이 나를 화가로 만들었다”고 말할 만큼 고향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컨스터블은 고향의 실제 풍경 위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을 덧입혀 이 한 장의 그림을 완성했다.

〈건초 수레〉에는 두드러지는 ‘주인공’이 없다. 제목은 ‘건초 수레’로 되어 있지만 수레가 눈에 띄게 배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 속 농부와 아낙네, 강가에 있는 개 등도 하나의 배경에 불과하다. 결국 컨스터블이 그리려고 했던 것은 어떤 특정한 주제가 아닌 ‘고향의 자연 그 자체’였다. 그러나 두드러지는 주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모든 배치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지극히 편안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즉 지극히 목가적인 평화로움을 담고 있다는 점 때문에 영국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건초 수레〉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영국식 정원이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것처럼 말이다. 무언가 자극적이거나, 강렬하거나, 화려한 그림은 영국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다.

〈건초 수레〉는 1821년 영국 로열 아카데미에 전시되었지만 그리 큰 반향을 끌지는 못했다. 이 풍경화가 첫 전시에서 팔리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초창기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그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1824년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되었을 때의 반응이 더 좋았다고 한다. 〈건초 수레〉로 컨스터블은 파리 《살롱전》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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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 집필자 소개

언제부터인가 삶의 방향이 자꾸 영국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는 작가다. 연세 대학교와 런던 시티 대학교 대학원(예술경영 및 예술비평 전공)을 졸업하고 월간 『객석』 및 『주간동아』의 문화팀 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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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관 산책
런던 미술관 산책 | 저자전원경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내셔널 갤러리, 코톨드 개럴리, 국립 초상화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등 영국 런던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우리를 이끄는 런던 미술관 산책기다. 미술 작품들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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