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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런던 미술관
산책
안토니 반 다이크

〈말 탄 찰스 1세〉

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I
안토니 반 다이크 〈말 탄 찰스 1세〉

약 1637-1638, 캔버스에 유채, 367×292.1cm

1632년, 영국 왕 찰스 1세는, 루벤스의 제자로 안트베르펜에 있는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를 불렀다. 그에게 영국의 궁정화가 직위를 준다는 제안과 함께 말이다. 이미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등에서 뛰어난 초상화가로 명망이 높았던 반 다이크는 이 제의를 받아들여 런던으로 왔다. 예술 애호가였던 찰스 1세는 약속대로 그를 궁정화가로 임명한 것은 물론, 루벤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사 작위도 주었다. 반 다이크는 왕의 환대를 받으며 찰스 1세의 초상화는 물론, 스튜어트 왕가의 많은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런던에서 부유하게 살다 1641년, 42세의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떴다. 현재 내셔널 갤러리에는 20여 점에 이르는 반 다이크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반 다이크가 1641년에 때 이른 죽음을 맞은 것은 그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반 다이크가 죽은 후인 1642년부터 찰스 1세를 지지하는 왕당파와 이에 대항하는 의회파 사이의 내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9년에 걸친 이 영국 내전(English Civil War)은 결국 올리버 크롬웰이 지휘하는 의회파의 승리로 끝나고 포로가 된 찰스 1세는 영국 사상 전무후무하게 처형된 왕으로 기록된다. 대영박물관의 지하 수장고에는 1649년 1월 30일 찰스 1세가 처형될 당시 입었던 회색 겉옷이 보관되어 있다. BBC의 다큐멘터리에서 이 옷을 본 적이 있는데, 400년 이상 된 옷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완벽했다. 물론 어깨와 팔 군데군데에는 빛바랜 핏빛 얼룩들이 가득했다.

찰스 1세는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영국의 왕이 된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이자 잉글랜드 제임스 1세의 아들이다.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의 전형적인 신봉자였다. 그는 자신을 신이라 부르라고 명령했고, 아들인 찰스 1세는 작은 신이라고 불렀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찰스 1세가 왕권신수설의 강력한 옹호자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찰스 1세가 새로 지은 화이트홀 궁전에는 루벤스가 그린 천장화가 있는데, 이 천장화의 한 장면은 천사들에게 영국의 왕관을 받는 제임스 1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찰스 1세는 바로 이 방에서 망나니의 도끼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대개의 영국인들은 “그래도 왕이었는데, 처형까지는 좀 심했다”고 찰스 1세를 동정하는 분위기다. 찰스를 처형한 크롬웰의 인기가 예나 지금이나 바닥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찰스 1세에게 군주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 후로 쭉 지켜져 온 의회의 권한을 부정하고 멋대로 의회를 폐회하는가 하면, 버킹엄 공작이라는 남자와 동성애 관계로 지내기도 하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근검절약하면서 불려 놓은 국고를 사치스러운 생활로 탕진해 버렸다. 이 ‘사치스러운 생활’에는 예술 애호가였던 찰스 1세가 화가들에게 준 돈도 들어 있었으니 찰스 1세의 사후까지 반 다이크가 살아 있었다면 그 또한 험한 꼴을 당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반 다이크가 초상화를 그렸던 스튜어트 왕가의 인물들은 영국 내전 와중에 대부분 비명횡사했다.

반 다이크가 그린 실물 크기의 초상화에서 찰스 1세는 말을 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찰스 1세는 아버지 제임스 1세의 뒤를 이은 두 번째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합 왕국의 왕이었고, 이런 점을 이 초상화에서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기사도 군인도 아닌 찰스 1세를 굳이 말 탄 모습으로 그린 것도 군주의 권위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루벤스와 티치아노의 뒤를 이어 17세기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던 반 다이크가 그린 왕의 갑옷과 장식품들은 마치 진짜 햇살을 받은 것처럼 반짝거린다. 반 다이크는 레이스와 가죽, 갑옷, 실크 등 각종 옷감의 재질을 실물 뺨치게 그리는 테크닉을 과시하곤 했는데, 이 때문에 찰스 1세를 비롯한 스튜어트 왕족들은 그의 초상화를 참 좋아했다고 한다. 반 다이크의 초상화 기법은 조슈아 레이놀즈, 존 싱어 사전트 등 후대의 초상화가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정작 그림의 주인공인 찰스 1세의 얼굴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실제로 찰스 1세는 내성적이고 고독한 성격이었다. 어린 시절을 스코틀랜드에서 자란 찰스에게는 스코틀랜드 억양이 심하게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찰스는 늘 말을 더듬었으며 사람을 잘 사귀지 못했다. 스튜어트 왕가 특유의 긴 얼굴과 매부리코도 군주의 위엄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편협한 인상을 주었다. 이처럼 왕의 기본 자질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왕권신수설만 주장하며 의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고집쟁이 찰스는 자신의 나라와 전쟁을 하는, 왕으로서는 최악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1648년 왕당파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의회는 찰스 1세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아무리 왕이긴 하지만 자신의 나라와 전쟁한 것 역시 사실이니 찰스 입장에서도 변명할 말이 없었을 듯싶다.

이런 속사정과는 별개로, 반 다이크는 자신의 테크닉을 총동원해서 찰스 1세를 ‘위엄 있는 왕’으로 꾸며 놓고 있다. 그림 속의 찰스 1세는 실물 이상으로 커 보이는 말을 탄 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위엄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금색 체인의 목걸이를 걸고 모든 기사들의 수장임을 뜻하는 가터 기사 기장을 달았으며, 오른손에는 군 총사령관의 지휘봉을 들었다. 그런 왕의 배경으로는 영국의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작품을 가리켜 ‘으스대는 초상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반 다이크의 재능이 현란하게 펼쳐졌다 해도 이 그림의 주인공에게서는 참된 위엄을 발견할 길이 없다. 그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며 표정 역시 군주라기보다는 군주의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같기만 하다. 말을 탄 모습도 영 어색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전제군주의 이미지가 철철 넘치는 헨리 8세 같은 인물에 비하면, 찰스 1세는 자신이 원하는 전제군주의 모습과는 여러모로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너무도 뛰어난 초상화가였던 반 다이크의 그림에서는 이처럼 숨기고 싶은 진실, 즉 ‘왕답지 않은 왕’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찰스 1세는 과연 이 그림을 좋아했을까? 찰스 1세와 동시대의 왕이었던 에스파냐의 펠리페 4세는 벨라스케스를 몹시 총애했지만, 나이가 들자 더 이상 벨라스케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지 않았다. 화가의 뛰어난 필치 속에서 자신의 노쇠함이 그대로 보이는 게 싫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초상화를 받아 든 찰스 1세 역시 펠리페 4세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그림이 그려진 1637년은 찰스 1세가 의회를 일방적으로 폐지한 채 독단적인 정치를 한창 펼치던 해였다. 민심은 찰스 1세의 부당한 과세 때문에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고 마침내 1638년 선박세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영국 전역을 뒤덮었다. 이 전국적인 반란의 물결은 4년 후, 왕당파와 의회파의 전면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내전은 4세기가 지난 지금도 영국인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전쟁의 결과로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왕을 처형대에 세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으니 말이다. 현재 영국의 정치 구도가 2당제로 확립되어 있는 것 역시 이 내전의 왕당파-공화파의 대결에서 그 유래를 찾는 역사가가 있을 정도다.

반 다이크의 그림 속에서 묘사된 ‘크고 온순한 말’은 찰스 1세가 원했던 영국의 모습이었다. 덩치는 크지만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주인의 말을 듣는 길들여진 말 말이다. 그러나 17세기의 영국인들은 왕과 신을 동일시하는 중세의 무지몽매한 군중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능한 왕이 아닌, 의회를 통한 합리적인 판단과 제대로 된 정치를 원했고 찰스 1세는 끝까지 국민의 이런 바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 다이크의 그림 속에 그려진 찰스 1세의 우울한 표정은 이 근본적 차이, 즉 왕권은 신에게 받은 것이라 믿던 찰스 1세와 더 이상 절대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국민들 사이에 놓인 괴리감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때로 그림은 역사의 그늘 속에 숨겨진 수많은 진실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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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 집필자 소개

언제부터인가 삶의 방향이 자꾸 영국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는 작가다. 연세 대학교와 런던 시티 대학교 대학원(예술경영 및 예술비평 전공)을 졸업하고 월간 『객석』 및 『주간동아』의 문화팀 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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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관 산책 | 저자전원경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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