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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는 한옥
여행

김동수가옥

중요민속자료 제26호, 金東洙家屋

공간의 향연에 빠지다

요약 테이블
소재지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814(공동길 72-10)
이용 시간 09:00~18:00

겉모습을 중시하는 다른 나라 건물과 달리 한옥은 사는 사람을 중시한다. 때문에 한옥을 제대로 보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 집에 사는 사람처럼 대청에 올라 먼산바라기도 하고, 방에 앉아 머름(문턱보다 높은 창턱)에 팔을 얹고 마당도 내다봐야 한다. 일반인이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한옥을 이처럼 스스럼없이 감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직까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 김동수가옥은 호남의 대표적인 전통 한옥으로, 정읍 9경으로 꼽힐 만큼 건축적으로 빼어나다. 고창 선운사로 이어지는 건축 기행과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유적을 돌아 판소리의 흥을 따라가는 역사 기행이 만족할 만하다.

절대로 집을 팔지 말라!

부안의 해변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된다. 점점이 박힌 드라마 촬영지를 들르는 재미도 있다. <다모>,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 <프라하의 연인>…….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가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안IC에 내려 정읍으로 들어가는 30번 국도를 놓치고 말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남도 답사 일 번지로 강진을 꼽으면서 부안도 염두에 두고 고민했다고 고백한다. 어디 답사 유적지뿐이겠는가? 당장 부안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다 길을 놓치지 않았는가. 길을 찾기 위해 잠깐 주변을 도는 동안 동학혁명 기념비가 자주 눈에 띈다. 국도를 찾아 길을 잡으며 새삼 동학혁명의 중심지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조선 양민의 피가 논두렁을 따라 흐르던 곳, 이곳의 아흔아홉 칸 한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여러 결의 생각 끝에 도착한 곳은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814번지 김동수가옥이다.

김동수가옥 배치도

ⓒ 시공아트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산 밑에 낮게 가라앉은 김동수가옥은 사람에게 보이는 집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으로 지어졌다. 그리하여 집의 어느 부분도 사람을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집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마음까지 안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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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가옥은 산자락에 숨은 듯 앉아 있다. 그래서 김동수가옥을 코앞에 두고 또 엉뚱한 곳으로 차를 모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길눈이 어두운 탓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집을 건축한 이의 의도에 말려든 꼴이다. 이 집에는 유난히 지네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집이 앉은 오공리의 '오공(蜈蚣)'이 바로 지네를 뜻한다. 집의 그루터기 구실을 하는 창하산 역시 모양이 지네를 닮았다고 해서 지네산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다 베이고 기록 속에만 남은 숲이지만, 집 앞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것도 사람들 눈에 띄기 싫어하는 지네의 습성을 배려한 것이다. 게다가 집 앞으로 동진강이 흐르니 습한 곳을 좋아하는 지네에게는 더없이 맞춤인 안식처다. 평야 지대에 지은 집임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까닭이다. 집 자체가 커다란 은유가 되어 세인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버린 것이다. 지네가 다산 다복을 뜻하는 것을 보면, 자자손손 집이 복덩어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숨어 있다. 이 집을 지은 김명관은 이곳이 12대가 복을 누릴 만한 곳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집을 팔지 말라는 뜻을 후손에게 남겼다고 한다. 그런 까닭일까? 이 집의 관리는 정부에서 하고 있지만 주인은 여전히 그의 7대손인 김용선이다. 1784년에 지어져 현재 중요민속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이 집은 안채, 사랑채, 안사랑채, 행랑채, 안행랑채 등 아흔아홉 칸 규모의 집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호남 지역의 한옥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순례지다.

집을 지은 김명관의 뛰어난 건축적 재능은 대문간에서부터 보인다. 탁 트인 마을을 지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작은 담장이 시야를 가로막아 선다. 한 평 남짓한 대문마당이어서 답답할 만도 하지만, 실제 집에 들어서면 전혀 답답하지 않다. 넓은 곳에서 막다른 곳으로 들어서며 느끼는 극적인 공간 변화를 대문마당의 아늑함이 잘 흡수하기 때문이다. 시선을 막아선 담장은 안채로 가는 눈길을 차단하는 내외담 구실도 한다. 애초에 내외담과 대문마당을 하나로 기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문마당에서 일각문(문기둥이 좌우에 하나인 작은 문)을 지나 사랑마당에 들어서면, 홑처마에 네모기둥으로 지은 단출한 사랑채가 나타난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어서 실망할 수 있겠지만, 사랑대청에 올라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이곳 대청은 여느 집의 그저 평범한 대청마루가 아니다. 외관상 대청마루라고는 하지만, 주변의 창호를 열어젖히면 대청은 어느새 탁 트인 누마루로 변신하여 주변의 경치를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담장이 막아서지만, 시선이 이동할 공간이 많아 답답하지 않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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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가옥의 사랑채

벽으로 집을 칭칭 동여맨 여느 나라의 집과 달리 김동수가옥에서는 벽 찾기가 힘들다. 오히려 벽을 뻥뻥 뚫어서 햇살이며 바람이며 자유롭게 드나들게 했다. 한옥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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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과 창호틀이 만드는 풍경화

"한옥은 다 비슷비슷해." 대청마루에 올라 독특한 공간 활용에 적잖이 감동하는 동안 누군가 사랑채를 기웃거리다 툭 말을 던지고 사라진다. 그를 대청으로 불러올려 이 특별한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청하지도 않은 일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대청의 두 면에는 들어열개문(분합문, 여름에 문을 통째로 들어서 천장이나 처마에 걸어 놓게 만든 문)을 설치하여 개방감을 극대화시키고, 다른 두 면에는 벽을 세우고 벽 사이사이에 창호를 달았다. 이런 배치는 공간에 변화를 주어 사랑대청에 앉은 이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변화 많은 지붕 선과 지붕을 덮은 하얀 구름 떼, 담장과 어우러진 화초, 세월을 담아내는 정원수, 다른 채의 다채로운 벽과 창호가 문틀이라는 액자에 담겨 그림이 된다. 어떤 누마루 못지않은 장면을 연출한다.

사방이 모두 들어열개문이었다면, 오히려 개방감이 지나쳐 단조롭지 않았을까? 들어열개문과 함께 벽을 세워 개방감을 조절하고, 공간에 변화를 주어 이것으로 마음에 선율을 들인다. 자연을 빌려 와 마당을 채우는 차경(借景), 집 스스로 풍경이 되는 자경(自景), 집 자체가 무대가 되어 버리는 장경(場景). 이곳에서는 한옥의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 풍경은 때로 기둥 사이로 들어오고, 때로 문틀 안에 채워진다. 때로는 문과 기둥이 겹쳐지며 만든 프레임 속에 걸린다. 대청 툇마루에는 보잘것없는 나무 막대기를 걸어 난간을 대신했지만, 그마저도 율동감에 녹아들어 남루해 보이지 않는다. 난간은 아마도 이곳이 누마루라는 암시이기도 할 것이다. 대충 건너지른 난간이지만, 여기에도 계산된 의도가 숨어 있음을 기단석이 보여 준다. 납작한 기단이어서 신경 쓰지 않았을 듯하지만, 모퉁이의 작은 기단석을 ㄱ자로 정성껏 깎아 마무리했다. 굳이 그런 부분을 살펴보지 않는다고 해도 이 집을 짓기 위해 10년을 공을 들였다고 하니 그 정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개방감과 폐쇄감을 적절하게 사용한 사랑대청

오른쪽의 개방감은 기둥이, 왼쪽의 폐쇄감은 창호가 완화시켜 조화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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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덕스럽게 대청을 두른 난간은 이곳이 풍류를 즐기는 누마루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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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지방의 민가(民家)는 대청을 마루방으로 만들어 건물 끝에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마리'라고 부른다. 곡창 지대인 호남에서 이 마루방은 안채에 딸려 있는데, 보통 곡식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인다. 알곡이 생명인 농경 지대이므로 이곳은 의식(儀式)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이다. 김동수가옥의 사랑대청은 바로 민가의 마리를 닮았다. 건축적으로 시선의 중심점이라는 점에서 사랑대청 역시 중요한 공간이다. 양반가이지만, 민가 안채의 구조를 빌려 사랑채를 짓는 열린 태도가 이런 창의적인 공간 구성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동학혁명의 중심지답다는 생각이 든다. 대청뿐 아니라 기단도 민가의 그것처럼 아주 낮다. 기단이 낮은 이유는 밖에서 건물이 눈에 띄지 않게 노력한 흔적이기도 하다. 부잣집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누마루를 짓는 대신 대청을 누마루로 활용한 태도는 집을 낮추려는 일관된 노력의 일환이다. 이 집을 지은 김명관은 굳이 세상에 나서기를 애쓰지 않던 인물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자신의 삶의 태도를 집에 구현한 것이다. 이런 태도가 아랫사람에게는 너그러움으로 나타났을까? 사랑채 앞 행랑채에도 꽤 넓은 대청이 마련되어 있다. 보를 두 개나 받쳐 댄 특별한 모습이다. 하인들도 그들만의 누마루에 앉아 주변에서 다가서는 풍경을 즐겼으리라.

김명관은 세상에 결코 나설 생각이 없었는지 밖에서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낮은 집을 지었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만든 기단에서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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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공간에 숨은 유년의 추억

행랑채에까지 대청을 만들고 사랑마당을 아랫사람과 함께 나누어 쓰던 김명관은 아마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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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는 대문마당을 거쳐 사랑마당을 지나 다시 안채의 중문채를 지나야 들어설 수 있다. 가장 깊은 자리에 앉은 안채는 고립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고사하고 사랑에 누가 들고 나는지조차 짐작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옥은 안채의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김동수가옥은 안채의 고립감을 해소하는 방법이 독특하다. ⊓모양으로 엄격하게 좌우 대칭으로 지어진 안채를 안채보다 더 큰 ⊔모양의 안행랑채가 감싸고 있어 안채에서 느끼는 마당의 확장감이 굉장히 크다. 따라서 안채 대청에 앉았을 때 그다지 답답하지 않다. 솟을대문에서 대문마당에 들어설 때의 답답함을 해소한 건축적 재능이 이곳에서도 빛을 발한다. 건물 뒤로는 넓은 채마밭과 마당이 창하산으로 시원하게 내달리고 있어 안채의 확장감이 오히려 사랑채보다 낫다. 한여름에 문들이 이어지면서 만들어 내는 소실점 효과와 액자 효과는 확장감을 변화무쌍하게 만든다. 또 솟을대문 쪽에서는 담장이 가리고 있어 안채를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안채의 대청에서는 솟을대문으로 들고 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솟을대문과 대청의 시선 높이를 이용한 공간 관리 방법이 기발하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안채를 엄격한 좌우 대칭으로 지었지만, 안채에 머무는 사람들이 답답하지 않게 고민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건물의 좌우가 정확하게 대칭인 안채

한옥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모습이다. 엄격하게 좌우 대칭으로 지어진 안채를 안채보다 더 큰 안행랑채가 감싸고 있다. 낮은 기단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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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문이 만드는 무수한 장면 전환은 김동수가옥의 돋보이는 장점 중 하나다. 문이 문으로 연결되고 문 속에 문이 나오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락으로 연결된다. 툇마루, 벽장, 보꾹(서까래와 천장 사이의 공간)이 공간을 풍성하게 하면서 추억을 만들어 낸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 한옥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추억을 들추다 보면 으레 작은 공간이 하나씩 등장한다. 그것이 다락방이 되었든, 장독대가 되었든, 아니면 작은 부엌간이 되었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혼자만의 공간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 건축이라면 만나기 힘든 이런 공간이 김동수가옥에는 널려 있다. 아파트 생활이라면 어머니에게 혼난 아이가 마땅히 혼자 숨을 곳이 없다. 그래서 삭지 않은 감정을 털어 내지도 못한 채 아이와 엄마가 서로 어색한 감정으로 마주하기 십상이지만, 옛날 한옥이라면 슬며시 자리를 피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못다 운 울음을 토해 내고, 그러다 눈에 잡히는 물건들을 살피기도 하고, 그러면서 차츰 자기를 돌아볼 시간도 가진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요즘은 자기 방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도 하겠지만, 일상생활 공간인 방은 기분을 바꾸는 임시 공간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제 방에 들어가 있으면 틀어박혀 있다고 혼나기 십상이다. 집이 바뀌면서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앉아서 생활하는 한옥에는 이처럼 낮은 벽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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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와 사랑채에는 천장의 공간을 살린 보꾹 다락이 있다. 유년의 기억이 공존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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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가옥을 돌아보며 정말 좋았던 것은 다른 문화재들과 달리, 방문객 위주로 고택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대청과 안대청에 누구나 올라가 한옥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도록 배려한다. 집 자체도 안채와 사랑채가 답답하게 모인 여느 한옥과 달리 넓은 대지에 개성 있는 건물들이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어 한옥을 감상하는 이들이 넉넉한 공간감을 가지고 고택을 감상할 수 있다. 오랜만에 관리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함께한 일행과 대청에 앉아 도란거리는 사이에 벌써 하루해가 제 갈 길을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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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 가 본 적이 있나요?

보물 제289호인 피향정이 정읍에 있다. 호남 제일이라는 자부심이 서린 정자다. 이곳에서 잠깐 해를 피했다가 서둘러 갈 곳이 있다. 서정주가 쓴 시에 송창식이 곡을 붙인 노래 <선운사>의 주인공인 '선운사'가 멀지 않다. 사찰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과 참당암의 대웅전을 돌아보는 건축 기행도 빼놓을 수 없다. 선운사로 떠나기 전 정읍의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들러 이튿날 고창으로 이어질 역사 기행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고창의 고인돌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인돌 유적지의 규모가 상당하다. 고인돌박물관까지 함께 있어 고인돌에 관한 모든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 고인돌군을 돌아보며 역사의 숨결을 느꼈다면, 그 흐름을 판소리로 이어가자. 판소리의 고장답게 고창에서는 판소리 문화만으로 하루 여행이 가능하다. 판소리에 관심이 있다면, 신재효고택과 김소희생가 등을 찾아보자. 물론 역사를 찾아 고창으로 가는 대신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방향을 잡아도 결코 밑지지 않는 여정이다.

김동수가옥 → (20분) → 피향정 → (24분)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 (46분) → 선운사 → (23분) → 고창고인돌박물관 → (11분) → 고창판소리박물관

김동수가옥 인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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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들어가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빠져들었다. 현재 한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활동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출처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 저자이상현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저마다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살림집 한옥 17곳과 성당, 절집, 서원 등 24곳의 개성 넘치는 전통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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