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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는 한옥
여행

김기응가옥

은유의 공간을 들여다보다

요약 테이블
소재지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율원리 907-10(칠성로4길 20)
이용 시간 10:00 ~ 17:00
김기응가옥

ⓒ 시공아트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세월이 내려앉은 김기응가옥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전시장을 연상시키는 다채로운 담벼락들과 2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지어진 안채와 사랑채의 풍부한 공간의 변화들, 그리고 그 안에 숨은 옛사람들의 소망과 생각. 이 특별한 것들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로 다가온다. 한옥에 숨은 상징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김기응가옥이 있는 괴산은 산이 깊어 계곡이 많은 곳이다. 아홉 개의 절경이 있어 화양구곡으로 불리는 화양계곡에는 송시열 유적이 함께 있어 절경을 구경하는 재미에 더하여 정신적인 만족감도 누릴 수 있다.

담벼락, 화장을 하고 사람을 맞다

세상이 온통 물컹물컹해진 듯하다. 길가의 집들이 모두 축 늘어져 있다. 심드렁하기는 김기응가옥도 다르지 않아 손님을 맞는 태도가 시큰둥하다. 모두 늦은 봄 탓이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액체처럼 자꾸 밑으로 쏟아지려 한다. 그나마 화장을 하듯 화방을 한 행랑채의 모습에서 서울 아낙의 활기 같은 것이 조금은 느껴진다. 작은 생동감이지만 이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화방(벽)은 화재를 막기 위해 벽 위에 다시 쌓은 이중벽인데, 이곳의 화방은 돌과 기와로 장식을 하고 그 위에 붉은 벽돌까지 쌓아 올려 장식 효과가 제법이다. 늦봄의 노곤함까지 이겨 낸 이 멋스러운 가옥은 고종 때 공조참판을 지낸 김항묵(김기응의 조부)이 다른 사람의 건물을 매입하여 1910년 즈음 지은 건물이다. 행랑채, 사랑채, 중문채, 안채 그리고 곳간 두 채가 있는데, 건축 연대를 17세기까지 올려 보는 안채를 빼고는 모두 이때 지어진 것이다(안채가 지어진 시기를 17세기와 19세기로 보는 기록이 혼재한다. 가주의 의견에 따르면 17세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한때는 그 화려함이 마을에서 단연 돋보였을 테지만, 이제는 세월이 훑고 지나간 여인의 얼굴처럼 고즈넉하다. 그러나 자신이 꿈꾸었던 소망이며 생각들이 옅은 화장기로 남아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주는 커다란 집이다. 뭇 생명이 그의 품에서 안식을 얻는다. 우리가 곧잘 집을 우주에 비유하는 까닭이다. 우리 조상은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천지현황(天地玄黃). 검은 기와를 쓰고 누런 황토를 도포처럼 두른 한옥의 이미지를 잘 표현해 준다. 한옥을 이야기할 때면 늘 같이 따라다니는 풍수며 풍경이며 잡다한 이야기들은 모두 옆으로 밀어 두고, 이곳에서는 오롯이 한옥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옥을 짓기 위해 선택한 재료나 재료의 형태, 색깔 속에 우리 조상들이 어떤 소망과 마음을 숨겨 두었는지 그 의미의 세계를 따라가 보자. 김기응가옥은 집만을 구경해도 좋을 만큼 특별하다.

김기응가옥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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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지나 중문 안쪽에서 찍은 안채의 전경이다. 중문에 내외벽이 있는 것을 보면,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여인들은 아늑한 이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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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등지고 서면, 사랑채가 약간 왼쪽으로, 안채는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은 것처럼, 조선 시대에는 왼쪽을 오른쪽보다 높게 여겼는데, 이를 건축에 반영한 것이다. 또 안채는 위치상 사랑채의 뒤쪽, 그러니까 북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북쪽은 2세를 낳는 생식과 관계되므로 여인이 머무는 안채에 알맞은 자리다. 이런 배치는 대부분의 전통 한옥에 적용되므로 알아 두면 요긴한 정보다. 이제 본격적으로 김기응가옥을 구경하기로 하자. 참, 북쪽은 검은색을 뜻한다는 것도 기억하고 집 구경을 시작하자.

행랑채 위로 살짝 솟아오른 솟을대문이 거만하지 않아 좋다. 솟을대문이 사람을 압도하지 않아서인지 대문채 안의 소박한 대문이 정겹게 눈길을 받는다. 하나, 둘, 셋……. 대문을 만든 널을 헤아리니 대문 한 짝이 여섯 개의 널로 만들어졌다. 알고 보면 여섯은 우리에게 친근한 숫자다. 우리 주위에는 팔각정보다 육각정이 많다. 주역에서 '6'은 음(陰)의 큰 수로 무엇이든 낳을 수 있는 대지(大地)의 수다. 역사적으로는 신라와 가야가 모두 여섯 시조(始祖)로 그 역사를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동양에서는 우주 공간을 '전후좌우상하'의 여섯으로 표현하므로 '6'은 세상을 포괄하는 가장 큰 수이기도 하다. 대문 양쪽의 널을 더하면 이번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12지지가 된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마주하고 있는 이 소박한 솟을대문이 예사 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김기응가옥으로 들어가는 이 문은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문이 된다. 우연일까? 행랑채의 바깥을 장식한 화방 역시 제일 밑에서부터 돌, 기와, 벽돌의 순서로 모두 열두 줄을 쌓아 올렸다. 이 집에서 여섯과 열둘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여 솟을대문을 지난다는 것은 작은 우주로 들어서는 일이다.

우주로 들어가는 문을 상징하는 솟을대문과 도시에서 시집온 새색시처럼 화려하게 단장한 담벼락

대문을 구성하는 널이 좌우 각각 6개로, 6은 우주 공간을 의미한다. 담벼락은 수평선이 강조된 행랑채의 지붕 선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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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지키려는 자, 흙을 가져가려는 자

행랑채 외곽을 두른 화방에 쓰인 돌은 성역을 나타낸다. 산에 오르다 돌탑 위에 돌을 얹으며 무언가를 기원해 본 사람이라면, 돌이 가지는 성스러운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돌을 쌓아 서낭당을 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돌을 쌓는다는 것은 경계를 짓는 일이기도 하다. 돌은 어떤 지역을 신성하게 하여 경계를 짓는 것이니 한옥에서 담장을 쌓는다는 것은 경계를 짓는 일이며 또 집을 신성하게 하는 조치다. 중국에서는 벽돌집이 발달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집요하게 흙과 돌을 이용하여 집을 지었다. 여기에는 집이 단순히 몸뚱이를 담아 두는 건물이 아니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하면서 이런 전통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김기응가옥은 돌의 역사에서 벽돌의 역사로 넘어오는, 그러니까 집이 그 성스러움을 잃고 실용과 편의의 세계로 넘어오는 중간 지점에 자리한 셈이다.

화방의 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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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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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사랑채를 에두른 토담이 제일 먼저 시선을 잡는다. 흙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흙의 노란색은 임금의 색이기도 하다. 세상 무엇이 흙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세상 만물을 키워 내니 생식의 뜻이 있고, 재물이나 벼슬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황제의 색이니 풍수적으로도 그 의미가 으뜸이다.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 밤이면 부잣집이나 잘나가는 벼슬아치 집 대문을 건장한 하인들이 지키고는 했다. 집 안의 흙을 퍼 가는 도둑을 막기 위해서인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부잣집이나 벼슬아치 집의 흙을 파다가 자기네 부엌 아궁이에 바르면 그 흙이 있던 집의 돈과 벼슬 복이 옮겨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흙을 빼앗기면 복도 빼앗기므로 부잣집에서는 한사코 이를 막았다고 한다. 사랑채를 토담으로 두른 것은 토담의 담백한 맛과 함께 흙이 가진 영험한 힘에 기대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굳이 바깥담에 돌을 써서 화방을 쌓고 집 안의 채를 구분하는 담을 흙으로 쌓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김기응가옥의 벽과 담은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한다. 집에 들어서게 되면 화방벽이나 토담 말고도 여러 가지 모양의 담벼락이 곳곳을 지키고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막아선 샛담, 돌과 흙을 함께 쌓은 죽담, 바깥 사내들의 시선을 막아선 내외담, 곳간을 빈틈없이 두른 나무 판 벽, 그리고 기와나 돌을 이용하여 쌓은 멋들어진 담장까지. 김항묵은 이 집을 지으며 공간과 공간을 나누는 경계에 많은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누구나 어린 시절 무심코 밟은 문지방 때문에 혼난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아직도 남은 일상의 터부 중 하나다. 그만큼 경계를 무너뜨리는 짓은 위험하다. 때로는 신의 영역을 무너뜨려 스스로 위험에 빠질 수도 있고, 때로는 신분의 영역을 넘어섰다고 경을 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경계를 지켜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것은 동양의 가치인 예(禮)와 통한다. 김기응가옥은 경계의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를 막은 샛담

김기응가옥에는 곳곳에 샛담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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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을 구분하는 돌담

공간마다 적절한 재료를 써서 장소에 맞는 의미와 느낌을 창조해 낸다. 그 의미를 풀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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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기와로 담장을 장식해 꽃담을 만들기도 한다. 기와를 같이 쌓아 올려 연속되는 토담의 지루함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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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을 보관하던 곳간채에는 공기가 잘 통하도록 나무 판으로 벽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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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담벼락 중 으뜸은 사랑대청에 앉아서 보는 샛마당의 꽃담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를 막아서 작은 샛마당을 만들었는데, 이 마당이 없었다면 사랑대청은 운치 없는 마루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작은 마당은 사랑채를 건축적으로 살려 냈을 뿐만 아니라 집 전체의 상징성에도 생기를 불어넣는다. 집 전체의 상징적 의미가 샛마당에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 꽃담과 굴뚝이 된 것이다.

상징을 위해 건축 재료를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배치했는지, 범상치 않은 건축주의 눈썰미를 짚어 보자. 행랑채의 화방에서 부수적으로 쓰인 벽돌이 이곳에서는 주도적으로 쓰여 꽃담이 된다. 화려한 길상문은 운 좋은 사랑손님에게 훌륭한 볼거리였을 것이다. 부귀와 장수를 뜻하는 문자를 문양으로 그리고, 두 글자 사이에 연속무늬를 넣었다. 일정한 무늬가 반복되는 문양을 회(回)문양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또 그 결실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문양의 모서리에는 박쥐를 넣어 다산 다복을 빌었고, 그 옆으로 인동초를 그려 넣어 자손들이 성실하고 당차게 자라기를 기원했다. 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은 벽돌의 색으로도 표현되었다. 검은색은 기본적으로 지혜를 상징할 뿐 아니라 안채가 자리 잡은 북쪽의 색이어서 생식과 관계된다. 그러나 흑색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해서 위태롭고 위험할 수 있다. 흑색의 외곽을 붉은 벽돌로 감싼 이유다. 검은색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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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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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문양

작은 담벼락이지만 문양이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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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중심에 위치한 샛마당에는 가족의 은밀한 소망을 담은 화방벽이 있다. 꽃담을 닮은 벽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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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환과 소망이 함께 담긴 굴뚝 뒤로 여인들의 쉼터가 되었을 장독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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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작은 공간을 끊고 잇는 재주가 뛰어나다. 끊어진 공간에 만들어진 내밀한 문이 사랑채와 안채를 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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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마당의 꽃담과 굴뚝, 은유의 연쇄 고리

이 작은 마당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굴뚝이 우뚝 솟아 있다. 사랑채에 있는 세 개의 아궁이가 쏟아 내는 연기를 이 굴뚝 혼자서 감당한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에게 굴뚝은 남근이겠지만, 우리 전통 속의 굴뚝은 오히려 여근에 가깝다. 산모가 아이를 낳다 어려움에 빠지면 아기가 빨리 나오기를 기도하며 키로 굴뚝에 부채질을 하기도 했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모유빛이라고 해서 굴뚝을 유두에 비유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서양과 동양의 차이가 이런 곳에서도 드러난다. 형(形)을 중시하는 서양과 질(質)을 중시하는 동양의 차이다. 생식을 나타내는 검은색으로만 굴뚝을 쌓지 않은 것은 과유불급의 교훈을 일러 준다. 굴뚝을 모두 검은색으로 장식했다면, 이는 모자람만 못하다. 제아무리 필요한 물이라고 해도 많으면 홍수가 나는 이치와 같다. 역시 붉은색을 함께 써서 검은색이 좋은 의미로 쓰였음을 암시한다.

장식이 뛰어난 샛마당이지만 사방이 막혀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장소다. 아무나 접근하기 어려운 샛마당에 보물처럼 숨겨 둔 가족의 내밀한 소망이 얼마나 컸던가는 굴뚝의 높이와 크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은밀한 통로도 이곳에 있다. 사랑대청에 앉아 꽃담을 감상하는 손님이라도 이곳에 안채로 이어지는 쪽문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작은 공간을 나누는 데 능숙한 한옥의 장점을 잘 살려 냈다. 샛마당에 담긴 상징과 은유의 연쇄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 집을 지은 이의 상상력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용자창의 用자는 月과 日이 합해진 글자다. 대를 잇는 일이 중요한 안채에 안성맞춤인 문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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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나타내는 卍자와 화려한 亞(아)자 문양이 함께 느껴지는 사랑채 창호

사내들이 꿈꾸던 소망을 상징적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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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이 많은 만큼이나 마당도 많고, 그래서 공간의 변화도 심심치 않다. 공간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안채에 이른다. 사랑채보다 200여 년 앞서 지어진 안채는 분위기가 사랑채와 사뭇 다르다. 사랑채가 은유와 멋을 중요시한 반면 안채는 실용과 기능을 앞세웠다. 안마당과 뒷마당이 쉽게 연결되도록 부엌을 뒷마당까지 길게 빼서, 안방이 건물의 모서리를 부엌에게 내주고 대청 쪽으로 나앉았다. 보통 안방이 모서리를 차지하는 여느 한옥과 다른 모습이다. 안방이 가지는 중심성보다 안팎으로 오가며 일하는 부엌의 기능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안채로 들어와 느낀 공간의 변화감 때문인지 돌연 피로감이 몰려와 대청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친다. 굳이 피곤하지 않아도 대청에 잠깐 앉아 보는 것이 좋다. 한옥은 애초에 보는 집이 아니라 사는 집이어서 대청에 앉아서 보는 장면과 장면이 이어져 만드는 풍경이 훨씬 살갑다. 팍팍해진 다리를 쉬게 하면 마음도 그만큼 여유로워진다. 넉넉해진 마음으로 주변을 보자.

편하게 앉아서 돌아보면 안채에도 놓치기 아까운 은유의 고리들이 있다. 안채의 모든 방에는 용자살문을 쓰고 있는데, 用(용)자는 음양을 나타내는 月과 日이 합해진 글자다. 2세를 낳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안채에 그 의미가 크다. 용자살문을 쓰는 현실적인 이유는, 살이 적어 방 안으로 빛을 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창을 영창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사랑채에는 卍(만)자를 응용한 완자살문을 쓴다. 卍자는 영원을 나타낸다. 세상에 이름 석 자 남기는 것을 최고의 효로 알았던 조선 선비의 방에 적당하다. 한편 卍자가 가지는 종교적 의미를 생각하면 집은 성과 속을 아우르는 공간이 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집을 대하는 마음이 지금과 달랐던 것이다.

지붕이 만나 다양한 모습을 만들며 단조로움을 덜어 낸다. 새는 막 하늘로 날아오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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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 순간 눈에 잡힌 지붕의 용마루가 특별하다.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건물들이 화려한 몸체에 비해 지붕이 밋밋하다 싶었는데, 안채는 이와 대조적이다. 팔작지붕인 안채의 지붕은 용마루가 급경사를 이루며 힘 있게 하늘로 솟구친다. 김기응가옥 전체에서 가장 역동적이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막 날아오를 기세다. 실제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중문채 지붕에는 새 그림을 그려 넣은 기와가 숨어 있다(찾아 보시길!). 새가 사람을 하늘과 이어 주는 영물임을 생각하면, 안채에서 꾸던 꿈은 속된 출세의 욕망과는 다른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사내들은 자기 이상에 맞게 사랑채를 짓고 그 안에서 현실적인 출세를 갈망했지만, 적어도 이 집의 안주인은 그저 수수한 생활이 드러나는 안채에서 사내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상을 좇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학에 익숙한 사내들에게 세상 최고의 소망이라고 해야 고작 출세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었지만, 어디 여인에게 출세가 그런 것이겠는가? 당시 여인들이 어떤 이상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을지 쉽게 짐작할 수는 없지만, 집을 지은 김항묵이 200년이나 먼저 지어진 안채의 꿈을 소중히 여겼던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시기적으로는 나누어서 지어졌지만 건물 배치가 전체적으로 品(품)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데서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중용의 품위를 소중히 간직한 집, 그것이 중요민속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된 김기응가옥이다. 그 위로 여전히 세월이 내려앉고 있다. 세월은 또 다른 상징을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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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계곡의 풍광을 감상하다

김기응가옥에서 속리산 자락을 타고 삼십여 분 이동하면, 괴산의 자랑인 각연사에 다다른다. 각연사는 '연못 위에 세워진 절'이라는 창건 설화를 가지고 있다. 연못을 메운 자리에 세워진 건물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비로전이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1970년대 수리를 하면서 원형이 바뀌어 가치가 많이 훼손되었다. 비로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돌부처가 있는데, 연못을 메우기 전 발견되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각연사도 좋지만, 각연사로 가면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도 길을 나선 이에게 더없이 큰 기쁨을 준다. 괴산에는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청천리고가(靑川里古家)도 있다.

사적 제417호로 지정된 송시열 유적은 맑은 물과 경치로 이름난 화양계곡에 자리한다. 3.7km에 이르는 계곡에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으로 이어지는 아홉 개의 절경이 일 년 열두 달 사람을 기다린다.

김기응가옥 → (28분) → 각연사 비로전 → (1시간) → 송시열 유적(화양계곡)

김기응가옥 인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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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들어가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빠져들었다. 현재 한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활동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출처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 저자이상현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저마다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살림집 한옥 17곳과 성당, 절집, 서원 등 24곳의 개성 넘치는 전통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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