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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4호, 七長寺

마당에서 깨달음을 얻다

요약 테이블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이용 시간 09:00~17:00

ⓒ 농민신문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찰이 바뀌고 있다. 현대 건축의 실용성이 파고든 까닭이다. 그래도 여전히 사찰은 가장 대표적인 전통 건축물이며 전통 건축이 가지는 상징성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사찰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나들이로 다녀올 만하다. 임꺽정이 드나들었다는 칠장사 역시 빼어난 자연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운무까지 사찰을 감싸는 날에는 마음까지 아득해진다. 그 아득함을 이어 갈 수 있는 곳이 칠장사 근처에 있다. 그곳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사람을 또 한번 감동시키는데, 영화감독 김기덕은 그곳을 '섬'이라고 이름 붙였다. 바로 고삼호수다.

마음 따로 몸 따로

이따금 감지되는 봄기운이 연녹색 감정을 고양시킨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안성 두메저수지를 지나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어느새 물안개가 되어 산자락 사이로 피어오른다. 물의 윤회 속에 녹아든 풍경이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길게 이어져, 흡사 화첩(畵帖)이라도 넘기는 것 같다.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듯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 경기도치고는 산이 깊다. 관헌에 쫓기던 임꺽정이 칠장사에 드나들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하다. 멀리 기와집 한 채가 슬며시 화첩 속에 자리 잡는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우리는 건축을 하나의 상징체계로 여기며 살아왔다. 작은 살림집 하나를 지어도 집을 신(神)으로 생각하여 여러 번의 고사를 지내 정성을 보이고, 아주 작은 창살 하나에도 뜻을 담아 소중히 여겼다. 감각 있는 부부라면, 집 담장에 소나무를 그려 넣기도 했다. 잎이 쌍으로 된 소나무는 부부의 사랑을 뜻한다. 일상 속에 있던 상징이 사라지면서, 오늘날 건축에서 상징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아파트를 생각하면 그 의미가 쉽게 와 닿는다. 아파트 어디에도 상징이 들어설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상징이 사라진 시대! 상징의 보고인 사찰 기행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칠장사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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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현산에 기댄 칠장사는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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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에 다다르자 낮게 가라앉은 독경 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칠현산(七賢山)에 안긴 칠장사(七長寺)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다. 사찰은 수미산(불교의 세계관에 나오는 상상의 산)을 생각하며 지은 종교 건축이다. 그리하여 건물 하나하나는 물론이고 건축 전체가 큰 상징체계를 이룬다. 절로 들어가면서 지나는 문이며 건물이 모두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의미 속으로 녹아든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걸으며 그 공간과 하나가 되고, 거기에서 느끼는 작은 체험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건물 하나하나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전체를 하나의 묶음으로 보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칠장사는 600년대 자장(慈藏, 590~658)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정확하지 않다. 칠장사가 가장 번성한 것은 혜소국사(慧炤國師, 972~1054)가 살던 고려 문종 때다. 혜소가 국사의 칭호를 받은 시기도 이때다. 이후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다 조선 숙종 때인 1704년,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이 들어섰다. 이마저도 화재로 몇 개의 건물이 소실되고, 일부는 자리를 옮겨 다시 지어지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따라서 현재 남은 건물과 건물의 배치는 숙종 때와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게 앞 주차장에 생뚱맞게 서 있는 일주문도 원래는 없었던 것이다.

사천왕문 안에 들어서면 불국정토를 지키는 사천왕이 우리를 기다린다. 맞배지붕에서 진중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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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번뇌를 털어 내는 사이 우락부락한 사천왕의 모습에 놀란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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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을 통과하며 세속의 때를 벗겨 내고 대웅전으로 가는 것이 사찰 순례의 기본이지만 칠장사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엉뚱한 곳에 만들어진 주차장 때문에 사천왕문을 통해 대웅전으로 가려면 차에서 내려 한참을 돌아가야 하니 따로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마음을 추스를 짬도 없이 건물과 차가 뒤엉켜 어수선한 계단을 통해 대웅전으로 향해야 한다. 현대 건축의 실용성이 전통 사찰에 파고든 까닭이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이 산문(山門, 절의 바깥문)으로서의 상징성을 잃고 용도 불명의 건물이 되고 말았다. 급할 것 없는 마음이어서 사천왕문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마당에서 원효의 깨달음을 얻다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사천왕문은 수미산 중턱을 차지하고 호령하는 사천왕의 자리로 안성맞춤이다. 극락정토에 이르기 위해 좁은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불자에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여차하면 달려들 듯 포즈를 취한 사천왕상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불국정토를 지키는 문지기다. 태권도의 기마 자세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다른 사천왕상과 달리 이곳의 사천왕상은 흙으로 빚어 피부의 질감이 생생하다. 이곳에서 불자는 사천왕의 눈에 비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속 번뇌를 털어 낸다. 그래야만 불국토로 입장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사천왕문을 지나면, 이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인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칠장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격도 제일 높아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경건한 맞배지붕(책을 펴서 엎어 놓은 모양의 지붕) 위에서 고랑을 만들며 이어지는 기왓골은 우리의 삶이 결코 일회적이 아니며 끊임없는 윤회로 이어지는 무엇임을 감지하게 한다. 대웅전은 앞에서 보면 세 칸으로 된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기둥 사이에까지 포를 두어 지은 다포 건물이다. 포는 지붕 아래 비쭉비쭉 나온 부재 덩어리인데, 지붕을 받쳐 줄 뿐 아니라 건물을 아름답게 치장한다. 자칫 지나치게 화려할 수 있는 것이 단청이지만, 대웅전을 감싼 단청은 세월의 가르침을 받아 수도승처럼 수수하고 차분하다. 스님 한 분이 대웅전으로 들어서자 얼마 지나지 않아 독경 소리가 흘러나온다. 독경 소리에 밀리듯 뒤꼍으로 돌아드니 꽃살문이 시선을 잡는다. 꽃살 문양은 연꽃인데, 조각이 단순하지 않다. 꽃망울이 맺혔다가 연꽃으로 활짝 피는 과정을 묘사했다. 깨달음의 과정을 연꽃의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문이 사찰에서 가지는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그 의미가 묵직하다. 불자인가? 산 쪽에서 내려온 사람이 마당을 가로질러 종무소(절의 사무소) 쪽으로 걸어간다.

대웅전 처마는 다포 양식으로 사찰의 장엄함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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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대웅전

맞배지붕의 대웅전은 절제된 모습이 빛바랜 단청과 함께 기품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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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뒤쪽에 달린 꽃무늬 문살에는 꽃이 피는 과정이 보인다. 활짝 핀 꽃이 깨달음을 나타낸다면 이 문살에는 깨달음의 과정이 모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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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부처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마당, 선방, 그리고 그 너머 속세. 구름이 걷혀 해와 인연이 되면 물로 돌아갈 마당의 녹다 남은 눈이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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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 건축만의 특유한 공간이다. 잠깐 설명을 하자면, 마당은 살림집인 한옥에서 출발했다. 한옥은 구들방이 있어서 한겨울에도 스물네 시간 따뜻하다.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와도 언 몸을 녹일 수 있다. 건물 안에 중정(건물로 둘러싸인 집 안의 마당)을 만들어 겨울에는 집 안에서만 일을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는 건물 외부에 마당이라는 활동 공간을 발전시켰다. 조선 시대가 되면 구들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마당도 보급되는데, 전통 건축물의 외부 공간은 중정과 마당이 뒤섞이며 우리만의 독특한 건축 공간을 창조해 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사찰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려 시대까지 남아 있던 불당 앞의 탑과 회랑(回廊, 지붕이 있는 외부 통로)이 점차 사라지고, 마당을 중심으로 불당과 요사를 짓는 패턴이 나타났다. 스님들이 생활하는 살림집인 요사에 부엌을 들여 건물 앞뒤의 소통이 원활해진 것도 이 시기다.

칠장사 역시 마당을 중심으로 한 사찰이다. 마당은 공간을 신축적으로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다. 주변 공간을 마당에 하나로 담아내고, 그 공간을 다시 주변으로 무한히 확장시킨다. 칠장사의 건물 배치는 입구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일주문, 천왕문을 거쳐 대웅전까지 오고, 대웅전 마당에서 사찰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산문으로 난 길을 따라 대웅전으로 향하고, 이곳에서 부처를 만나 깨달음을 얻어 주변의 전각을 돌아보면서 보살이 행한 실천을 배운다는 이야기 틀을 함께 가진다. 부처는 깨달음을, 보살은 중생을 위한 헌신을 상징한다.

대웅전과 함께 월대 위에 자리 잡은 원통전은 기둥에만 포를 넣은 주심포 건물로, 대웅전보다 격을 낮추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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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은 월대에서 내려와 마당의 낮은 자리를 차지했다. 낮은 곳으로 임하려던 지장의 뜻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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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건축에서 가장 낮은 곳인 마당은 어디로든 통한다. 스스로를 낮추어 살던 원효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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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옆의 원통전은 천 개의 눈과 손으로 중생을 보살피는 관음보살을 모신 곳이다. 원통전은 기단을 조금 낮게 해서 대웅전보다 격을 낮추었다.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부처가 되기를 미루기로 한 보살인데, 이를 모신 곳이 명부전이다. 명부전은 아예 대웅전이 앉은 월대(이중으로 된 넓은 기단) 아래로 내려 지어, 낮은 곳으로 임하려는 지장의 마음을 건축에 담았다. 이때 마당은 보살행을 배우도록 하는 소통의 공간이 된다. 원효가 저잣거리로 간 속 깊은 깨달음도 마당에 숨어 있는 셈이다. 마당 가운데 자리한 석탑은 다른 곳에 있던 것을 가져다 놓은 것으로, 사찰의 전체 배치를 고려하지 않은 듯해서 어중간하다. 원통전과 명부전을 돌아보며 보살행까지 배웠다면, 꼭 들러야 하는 칠장사의 명물이 있다.

나한이 된 일곱 도적 이야기

대웅전 마당을 벗어나 언덕길을 감아 돌면,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한 한 칸짜리 작은 건물을 만나게 된다. 건물 밖으로 새시를 달아서 조악해 보이지만, 그 안으로 나한전이 숨어 있다. 고려 말 나옹 선사가 심었다는 소나무를 우산처럼 쓰고 있어, 비가 오는 날이면 비가 오는 대로 운치가 있다. 칠장사에는 나한전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내려온다.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고 있을 때 주변에 일곱 명의 도적 무리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갈증을 이기지 못해 칠장사의 샘을 찾아왔는데, 물을 마시고 보니 방금 물을 담아 마신 바가지가 금으로 된 값진 물건이었다. 옳거니 하고 이를 옷 속에 숨겨 갔음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 일곱 명의 도둑이 시간차를 두고 모두 같은 방식으로 물을 마시러 왔다가 금 바가지 하나씩을 챙겨 돌아갔다. 잠을 청한다고 잠이 올 리 없었고 다른 일도 손에 잡힐 리 없었다. 서로가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결국 각자 숨어서 옷 속을 뒤지니 바가지가 온데간데없었다. 하도 이상한 일이어서 입이 가벼운 도둑 하나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때서야 그들은 모두 같은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하던 도적들은 이 모든 것이 혜소국사의 법력임을 깨닫고 국사에게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일곱 명의 도둑은 모두 깨달음을 얻어 현인이 되었고, 그 현인이 나한이 되어 지금의 나한전에 모셔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산 이름이 아미산에서 칠현산(七賢山)으로 바뀌고, 절의 이름도 漆長寺(칠장사)에서 七長寺(칠장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세도가에 의해 불타 버린 칠장사의 재건을 시작한 숙종 때의 탄명 스님은 바위 위에서 눈비를 맞고 있던 나한상이 안타까워 나한전을 세워 그 안에 나한들을 모셨다고 한다. 도둑을 나한으로 만든 샘물은 여전히 그곳에서 물을 뿜어 올리고 있다.

나한상이 어찌 생겼을까 궁금해 나한전에 들어서는데, 여인 하나가 경건한 표정으로 건물을 나선다. 작은 방에 둘러앉은 일곱 나한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별생각 없이 혼자 웃다 보니 문득 방금 나간 여인의 경건한 표정이 떠오른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서 사찰을 다니러 올 때마다 늘 미진한 부분이 경건함이다. 굳이 나한이나 부처가 아니어도 자연에서 만나는 풀 한 포기, 다람쥐 한 마리,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에 경건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우리를 벅차게 하지 않는 것이 없을 텐데…….

나한전에서 내려다보는 사찰 전경이 그만이다. 주변에 저수지가 많아서인지 건물 주변을 에워싼 물안개는 걷힐 듯하다 다시 피어오르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운무에 묻힌 사찰 건물들의 어우러짐이 그윽하여 쉽게 발길을 뗄 수가 없다. 마음을 크게 먹고 언덕을 내려서니 발이 움직일 때마다 안개 속에서 출렁이는 대웅전의 지붕 선이 감성을 자극한다. 움직이는 지붕 선을 눈으로 잡고 조심조심 언덕을 내려선다.

나한전은 600여 년 된 소나무를 우산처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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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전에 들어서면 아이처럼 티 없는 일곱 나한이 사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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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을 나한으로 만든 영험한 약수다.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바가지를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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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에는 일곱 나한상의 이야기 말고 임꺽정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는데, 그 이야기도 흥미롭다. 홍명희가 쓴 소설 『임꺽정』은 이를 배경에 두고 있다. 임꺽정의 스승으로 알려진 병해대사는 갖바치(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던 사람)여서 갖바치대사로도 불렸고, 개혁주의자인 조광조와도 친분이 있던 당시의 명사다. 임꺽정은 이곳을 드나들며 병해대사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병해대사는 이따금 그곳으로 숨어드는 임꺽정과 그 수하들이 깨달음을 얻어 또 한번 일곱 나한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 듯하다. 그러나 전설은 반복되지 않는 법. 병해대사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꺽정은 스승 병해대사가 세상과의 연을 놓고 입적하자 부처를 만들어 공양하는 것으로, 나한이 되기를 바라던 스승의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이것이 '꺽정불'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꺽정불은 종무소 옆 홍제관에 모셔졌는데, 홍제관은 꺽정불뿐 아니라 보물급 문화재 다수가 보관된 칠장사의 보물 창고다. 한때 칠장사는 선조의 계비(繼妃, 왕이 다시 결혼하여 부인이 된 왕비)였던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친정아버지 김제남을 위해 기도하던 원찰(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사찰)이기도 했다. 그가 쓴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七言詩)」가 보물 제1627호로 지정되어 이곳에 모셔져 있다. 영창대군과 친정아버지를 잃고 자신조차 위태로운 처지가 되어 칠장사에 머물며 쓴 것으로 추정된다. 삶이 가지는 고단함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조차 모두 부질없이 느껴진다. 칠언시를 옮겨 적는다.

老牛用力已多年(노우용력이다년)
늙은 소 힘쓰기는 이미 여러 해 되어
領破皮穿只愛眠(영파피천지애면)
상처 난 몸뚱이는 그저 쉬고 싶을 뿐인데
犁耙已休春雨足(려파이휴춘우족)
밭 고르기 끝나고 봄비도 풍족한데
主人何苦又加鞭(주인하고우가편)
어찌해 주인께선 채찍질 또 해 대시나!

홍제관은 칠장사의 보물 창고다. 꺽정불은 물론이고,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 국보인 괘불탱 등이 모두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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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산을 숨기고, 물이 물을 숨긴 곳

이른 아침 이곳에 물안개가 피어나면, 사람들은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 자신이 세상과 격리되어 고립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든다. 산이 산을 숨기고 물이 물을 숨기는 끊임없는 번뇌의 사슬. 영화감독 김기덕은 이곳을 '섬'이라 이름 지었다. 기이하게 슬프고 아팠던 영화 <섬>을 찍은 고삼호수다. 영화의 무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실제 고삼호수는 290만 제곱미터가 넘는다. 차를 몰고 물을 따르고 길을 따르면 호수는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은밀한 세계의 얼굴들을 보여 준다. 굳이 드라이브일 필요도 없다. 한곳에 머물며 24시간 물안개가 피고 지는 풍경에 몰입하는 것도 좋다. 영화에서처럼 좌대를 펴고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감정을 낚아 올릴 수 있다. 고삼호수에서 먼저 하루를 묵고, 칠장사로 가는 것도 괜찮다. 고삼호수에는 머물 곳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하루 쉬어 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칠장사가 기댄 칠현산은 그리 높지 않아서 잠깐의 산행에도 적당하다.

칠장사 → (42분) → 고삼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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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들어가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빠져들었다. 현재 한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활동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출처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 저자이상현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저마다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살림집 한옥 17곳과 성당, 절집, 서원 등 24곳의 개성 넘치는 전통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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